제 6권 1호 2012-봄 크리스챤 G. 라타 / The Canaanite Landscape during the Late Bronze Age...pp. 39-68
이 논문은 주로 이집트 문헌을 참고로 후기 청동기 시대의 가나안을 다룬다. 이 논문은 힉소스(Hyksos)의 추방부터, 제19대 왕조의 마지막 왕까지를 연대기적으로 다룬다. 이 시기에 가나안의 많은 주요 도시들이 작은 도시로 전락하고 구릉 지대에 사는 주민들이 흩어져 거주하는 등, 가나안 땅의 인구가 현저하게 감소했다. 힉소스 추방 이후 이집트는 주요 도로 주변을 중심으로 간헐적인 군사 원정 정책을 폈다.
므깃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집트에 대한 반란은 지방 군주들을 더 옭아매는 통제 정책으로 그 지역을 다스리는, 좀 더 공격적인 제국주의 정책을 구사하게 했다. LB IIA 시대(c. 1400-1300 B.C.E.)는 우리를 훨씬 더 정국이 불안한 아마르나 시대로 이끈다. 이 시기 동안 이집트인들은 가나안 일어나는 일에 덜 관심을 기울여 큰 비용을 들이게 되었다. 이 사실은 주요 도시가 군소 도시로 전락했다는 아마르나 편지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이집트의 확고한 영향력 아래 있던 지역에서 자유롭게 떠돌아 다니는 추방당한 방랑 민족 때문에 계속 위협에 직면했다는 기록에서도 이 사실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선 LBA 시대(c. 1550-1200 B.C.E.)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구릉 지대 정착민들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LB IIA 시대 동안 제19왕조는 가나안 땅에 다양한 관할 관청을 세워 이들을 훨씬 더 통제하는 등, 가나안 땅에서 훨씬 더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아무튼 후기 청동기 시대 말의 고고학적 증거들은 LBA 시대 끝 무렵 계속 멸망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때 가나안 구릉 지대에서는 이스라엘의 출현이 간파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