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권 2호 2011-가을 이진섭 / 바울과 율법-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바울의 율법 이해...pp. 81-122
‘바울’과 ‘율법’을 함께 다루는 것은 어렵지만 중요하다. 바울의 율법 이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일 뿐 아니라, 현 바울 신학계에 율법 논쟁이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국면을 염두에 두고 본고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바울의 율법 이해를 다룬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율법’(토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본다. 바울에 따르면 율법은 하나님의 규범이 무엇인지 알려주고(롬 2:6-11, 12-15), 그 규범에 스스로 이르지 못하는 인간을 정죄하며(롬 2:12-16; 3:19-20; 3:31; 4:15; 5:20; 7:7-12; 갈 3:10-11, 19), 결국 그 규범에 이르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그에게 인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롬 7:13-25; 갈 3:21-25). 율법이 가진 규범, 정죄, 지시·인도의 기능 모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실행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 것이다(롬 7:12-13). 율법에 대한 바울의 생각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당시 유대 율법주의(nomism)에 대한 바울의 생각은 부정적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이 생명을 가져다주고 이스라엘을 회복한다고 생각했으며 그 율법을 메시아의 자리에까지 놓으려고 했다. 이런 생각은 모세 언약을 배경으로 잉태되었지만 결국 율법에 대한 어긋난 열심으로까지 자라나 공덕 사상으로까지 번졌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끌고 가는 핵심 가치는 ‘살리는 율법’이란 신념이고(갈 3:21; 롬 5:20; 7:10; 10:5), 따라서 이 율법주의를 부르는 마땅한 이름은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나 ‘공로주의’(legalism)가 아니라 ‘살리는 율법주의’(constitutional nomism)이다. 바울은 이 ‘살리는 율법주의’를 반대하며 율법의 진정한 기능이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정죄)’이며, 율법을 높일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높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결국 바울에게 율법은 긍정적이지만, 유대 율법주의는 부정적이다. ‘살리는 율법주의’는 잘못되었지만, 하나님의 규범을 알려주고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율법은 선한 것이다. 잘못된 율법 이해는 위험하지만, 바른 율법 이해는 복음의 기초가 된다. 이것이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율법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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