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권 1호 2015 봄 왕대일 / 해방과 추방, 구약신학적 검토...pp. 5-34
구속사 신학의 양 축은 해방과 추방이다. 구속사 신학의 얼개는 약속에서 성취로 가는 여정이다. 출애굽기의 구속사는 창세기 15장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는 현장이다. 문제는 창세기 15장이 전하는 구속사가 해방을 추방으로, 추방을 해방으로 제시하고 있다는데 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사백 년 동안 살던 고장에서 나와서 아브라함이 살던 곳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그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고향이란 과연 어디일까? 구속사가 말하는 ‘돌아옴’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조신앙에서 추방은 심판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에덴의 동쪽으로 내쫓으셨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다. 구속사 신학은 이 추방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처방이다. 에덴으로는 돌아갈 수 없지만 하나님의 품으로는 돌아가는 길을 구속사로 개척하셨다. 그 구속사가 신명기 신학에서는 약속에서 정복으로 가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신명기 7장은 해방과 추방을 이중주로 연주한다. 이스라엘에게는 해방을,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에게는 추방을 안긴다. 가나안의 원주민들이 정의롭지 못해서 추방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신앙의 올무가 되기 때문이다. 신명기사가(왕하 17, 25장)는 이 추방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적용시켰다. 해방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추방되는 당사자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주전 6세기 초 남왕국 유다 백성들은 해방의 하나님을 붙들고자 했다. 이스라엘을 추방시키려는 하나님의 의도에 맞서 하나님을 해방의 주님으로 단정하였다.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대결은 추방과 해방의 갈등을 신학적으로 전개한 경우이다. 추방이 끝은 아니다. 추방은 역설적이게도 새 해방이다. 예레미야는 추방된 자리에서 소수자로 생존하는 삶을 선포한다. 에스겔은 고향의 의미를 땅에서 찾지 않고 하나님의 현존이 있는 곳에서 찾았다. 추방은 하나님의 현존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거기에 디아스포라의 신학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