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권 1호 2020년 봄 양재훈 / <서평> 『인톨로런스』(Intolerance) D. W. 그리피스 (Griffith), 1916...pp. 235-243
인간은 왜 서로 미워하며 서로 용납하기 힘들어하는가? 앞에서 언급된 한국 기독교의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는 비록 사람들이 바라보는 교회의 현실일 수도 있지만, 정작 교회를 향해 던지려고 그렇게 돌을 움켜쥔 한국의 사회 역시 자신들이 비난하는 교회의 모습을 더 많이 담고 있지 않은가? 야당과 여당, 좌파와 우파,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 보수와 진보 등 오늘날 한국 사회는 교회 안이든 밖이든 상관없이 서로 갈라져서 나와 뜻을 함께하지 않는 반대파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저들을 처단해야만 우리가 살 수 있다.”고 하는 카트린느 왕비의 대사는 솔직히 말하면 오늘 우리가 늘 읊조리고 있는 대사가 아니던가? 계파를 나누고 분리하는 것은 이 영화의 네 이야기들이 보여주듯이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의 본능 속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는 고질병이다. 고린도 교인들도 게바파, 아볼로파, 심지어 그리스도파 까지 등장할 정도로 나뉘고 또 나뉘었던 것을 볼 때, 행여 이 고질병이 불치병은 아닐까 좌절감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희한한 것은, 그렇게 갈라져서 싸우면서도 왜 인간은 혼자 살지 않고 사회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려고 하는가라는 것이다. 편을 갈라서 미워하고 용납하지 못하고 담을 높이 쌓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사랑하고 용납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끈질기게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그러한 마음이 공동체 가운데서 오늘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그러하기에 사회적으로 갈등이 극에 치달은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를 보면서 한국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돌아보게 된다. 비록 세상으로부터 “의사야, 네 병이나 먼저 고쳐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병뿐만 아니라 네 병도 고치려는 몸부림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 한국 교회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어둠에 더 가까이 가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교회는 이런 악한 본성에 맞서 싸우려고 끊임없이 애를 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자신의 빛을 꺼버리고 이 “사랑의 투쟁”을 멈추는 순간, 우리 사회는 어둠에 잠겨버릴 것이다. 그러하기에 한국 사회의 희망은 교회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