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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우 교수 칼럼·설교

    엘라 골짜기를 따라 에베스 담밈으로 가는 길(삼상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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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Date 24-08-30 00:38

    본문

    엘라 골짜기를 따라 에베스 담밈으로 가는 길(삼상 17:1)



         유대 산지 베들레헴에서 서쪽의 지중해로 내려 가는 길에는 길고도 깊이 파인 엘라 골짜기가 놓여있다. 엘라 골짜기의 끝부분으로 가면 여물통 모양의 넓은 평야가 나온다. 이 평야의 가운데로 ‘나할 엘라’라는 강이 흐른다. 30년 전만해도 이 강변에 자갈도 많았지만 지금은 키부츠의 개간으로 개울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베들레헴을 떠나 “텔 소고”를 지나서 “아세가”로 가는 길로 잠깐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텔 키르베트 카야파”(Khirbet Qeiyafa)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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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입(初入)에서 본 아세가 


           키르베트 카야파는 사울의 군대가 진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지난 몇일간 내린 비로 진흙탕 길을 힘들게 건너간다. 그래도 비가 와서 온 들판이 푸르고 비옥하다. 베들레헴에서 내려 오는 길에서 보면 소고와 아세가는 남쪽에 있고, “키르베트 카야파”는 북쪽에 있다. 다윗은 엘라 골짜기의 북쪽 능선을 따라 사울의 진지까지 안전하게 내려 왔을 것이다. 오늘 날에는 이 길에 “골리앗의 무덤”이라고 하는 곳이 있으며 바로 그 옆에는 비잔틴 시대의 교회 터가 있다.  


    골리앗2 copy.jpg

    비잔틴 교회터


          블레셋 군대가 소고와 아세가 사이에 있는 “에베스 담밈”에 진친 것은 자연스럽다(삼상 17:1). 에베스 담밈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가면 블레셋의 왕도 중 가장 강력했던 “가드”가 있기 때문이다. 사울의 군대는 “키르베트 카야파” 언덕에 진쳤을 것이다. 이 언덕에 올라가 보면, 서쪽 정면에 아세가가 있고, 남동쪽으로 소고가 있다. 블레셋은 이미 소고와 아세가까지 장악하였다. 사울은 결사적으로 “키르베트 카야파”에서 블레셋의 진격을 막고 있었다. 만약 이 전선이 뚤린다면 다음은 “벳세메스”이며, 벳세메스 이후에는 “기럇여아림”이 되기 때문이다.  


    골리앗9 copy.jpg

    북쪽 산성벽과 그 너머 오늘날 벧세메스


            오늘 다시 찾아온 “키르베트 카야파” 혹은 “엘라 산성”은 주전 11-10세기의 “단일 텔”로 증거되고 있다. 그 이후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곳의 발굴을 2007-2013년 사이에 지도한 히브리대학의 가핑클(Yosef Garfinkel) 교수는 이곳이 주전 14세기부터 유대인들이 도시를 이루면서 살았던 곳이며 초기 통일왕국 시대에 “계획된 산성 도시”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산성은 주전 10세기 경에 이미 이스라엘에는 강력한 왕권을 가진 나라가 있었음을 증거해준다. 성에는 두 개의 성문이 있었다. 첫 성문은 아세가를 바라보고, 둘째 성문은 소고를 바라본다. 각 성문은 세 개의 쌍곽 방으로 지켜지고 있었다. 현재까지 약 200미터의 성벽을 발굴하였는데 동남쪽 성벽은 거의 온전하게 보존되어 당시의 영광을 드러내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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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 이야기”가 담긴 성터가 이렇게 온전하게 보존되어 오늘 나에게까지 전해진다. 엘라2.jpg


    ** 참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터: (3) 사아라임 (2017년 10월 24일 글) 


    2018년 2월 19일 輕舟 김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