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절(一節)이 천리(千里)다: 모압으로 피난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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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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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절(一節)이 천리(千里)다: 모압으로 피난가다
오랫동안 부모님은 내 걱정으로, 나는 부모님 걱정으로 지내었다. 어느날 부모님과 형님들이 사울 왕의 감시망을 뚫고 아둘람으로 오셨다. 그 동안 사울 왕의 상태는 파국으로 치달아 부모님들은 생명이 위태로움을 느꼈다(삼상 22:6-7). 도망친 자식에게 도망쳐 오는 부모님의 심정은 착잡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오셨다. 조상대대로 베들레헴에서 일구어온 산업을 모두 버리고 오셨다. 사실상 난민이 되어 고향 땅에서 추방을 당한 것이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렇지만, 아버지는 꿋꿋하셨다. 어쩌면 사무엘 선지자가 내게 기름부으셨을 때, 아버지는 메시아가 거쳐야 할 수난을 예감하셨을 것이다(삼상 16:13). 결국 아버지는 나와 운명을 같이 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이새의 아들”로 불린다(룻 4:17; 삼상 22:7, 8, 13; 시 72:20; 행 13:22). 나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이며, 그의 뿌리에서 나온 한 가지”이다(사 11:1). 장차 오실 메시아도 아버지 “이새의 싹”으로 오실 것이다(사 11:2-5). 나는 사무엘 선지자의 가르침을 계승했으니(삼상 12:1-25) “사무엘의 아들”이기도 하다. 내가 아들로 불릴 수 있는 아버지와 스승의 이름이 내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며 유산인가.
나는 아둘람 동굴에서 연로하신 부모님을 계속 모실 수는 없었다. 결국 모압 땅으로 모시기로 하였다. 모압은 나의 증조 할머니요 아버지의 할머니였던 “룻”의 고향이니 우리 집안에서 늘 친숙하게 느낀 곳이다(룻 1:4, 22). “내가 아둘람을 떠나 모압으로 갔다”(삼상 22:3)는 것은 말은 쉽지만 천리 길이다. 사실 그곳으로 가는 길도 없다. 길도 없는 광야를 통과해야 한다. 물도 없고 샘도 없다. 어디로 빠질지도 모르는 계곡들을 넘고 넘어야 한다. 밟는 길마다 돌짝밭 길이다. 우리는 드고아를 통하여 목자들과 양떼들 만이 가끔 다니는 길 없는 광야 길을 따라 엔게디로 갔다. 엔게디의 정상에 도착한 후, 다시 가파른 계곡을 따라 사해로 내려갔다. 어디를 가던 경치는 장관이다. 사해에서 배를 타고 모압 땅으로 건너가 모압 왕에게 부모님을 부탁하였다. 모압 왕은 요새까지 나와서 우리를 영접해 주었다(4절). 갑자기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가끔 원인도 없는 은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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