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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우 교수 칼럼·설교

    십 광야에서 숨바꼭질 중 만난 나의 집우(執友) 요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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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Date 24-08-30 00:43

    본문

    십 광야에서 숨바꼭질 중 만난 나의 집우(執友) 요나단


         그일라를 떠난 우리는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삼상 23:13, 개역, ‘갈 수 있는 곳’) 발이 닿는 대로 유다 산지를 향해 떠났다. 우리는 그일라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간 후 남동쪽에 있는 십(Ziph) 광야 안으로 들어갔다(14절). 그곳에는 거대한 바위 산들이 있어서 그곳을 “요새” 삼아 지내기도 하였다(14절, ‘광야의 요새’). 때로는 “수풀”(개역의 ‘산골’)에 몸을 숨기기 하였다(수풀은 고유명사로서는 호레쉬[Horesh]라는 지명일 수 있다. RSV, ESV; 15, 16, 18절). 

     

         우리가 십 광야에 있을 때 사울 왕은 온 광야를 샅샅이 뒤지면서 나를 잡아보려고 하였다(삼상 23:15). 사실 우리가 그일라에 있을 때 사울 왕은 “하나님이 다윗을 내 손에 넘겼다”고 확신하였고(7절), 그일라 사람들도 나를 사울의 손에 넘기려고 하였다(12절). 나를 놓친 사울 왕의 좌절감은 분노로 증폭되어 십 광야를 날마다 수색하였지만 나는 늘 간발의 차이로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 때 마다 주님이 피할 길을 주셨다(14절).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숨막히는 숨바꼭질이지만 가끔 재미도 있었다.
    바로 그 때 또 하나의 대반전이 일어났다. 요나단이 내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이었다(15절). 요나단 만이 우리가 숨은 곳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 때 요나단은 “하나님의 이름으로”(TNK) 나를 축복하며 “나의 손을 굳세게 하였다”(16절, 개역,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다”). 사울만 생각하면 내 손에서 맥이 빠졌지만, 나의 친구 요나단은 위급한 상황에서 “나의 손을 굳세게 해주었다”. 나는 요나단을 만날 때마다 주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이 더욱 견고해졌다. 그는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파악하고 전해주었다(17절).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서로를 영원히 지켜줄 것이라는 언약을 맺으며 헤어졌다(18절). 참으로 고마운 나의 집우(執友)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우정과 헌신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2018년 3월 27일 輕舟 김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