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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우 교수 칼럼·설교

    기브아에서: 사울의 꿈 / 기브아에서: 다윗의 맹점(盲點, blind sp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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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Date 24-08-30 00:39

    본문

    기브아에서: 사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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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의 요지 기브아


         나는 아름다운 고향 기브아에서 꿈을 키웠다. 젊은 시절 나는 부모님 잘 모시고 부강한 나라를 세우고 싶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 에브라임 산지와 베냐민 온 땅을 두루 다니다가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 왕국(王國)을 찾았다. 내가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후 내 고향 기브아는 통일 이스라엘의 첫 수도가 되었다. 기브아는 말 그대로 높은 언덕이다. 온 세상을 내려다 본다. 동쪽으로는 와디 수에닛(Wadi Suwenit)을 통해 여리고와 길갈로 통하고, 서쪽으로는 벳호론 길을 통하여 욥바로 간다. 남쪽에 예루살렘이 10킬로미터 안에 있고 조금 더 가면 베들레헴이다. 북쪽으로는 사무엘의 동네인 라마와 그 위에 구국의 동산 미스바가 있고 조금 더 가면 벧엘이다. 내 고향은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걸어다닌 “족장길”에 있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조상 대대로 내려온 기업을 빛내고 싶었다(삼상 9:1).  


         나는 아름다운 고향 기브아에서 꿈을 키웠다. 젊은 시절 나는 부모님 잘 모시고 부강한 나라를 세우고 싶었다.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 에브라임 산지와 베냐민 온 땅을 두루 다니다가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 왕국(王國)을 찾았다. 내가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후 내 고향 기브아는 통일 이스라엘의 첫 수도가 되었다. 기브아는 말 그대로 높은 언덕이다. 온 세상을 내려다 본다. 동쪽으로는 와디 수에닛(Wadi Suwenit)을 통해 여리고와 길갈로 통하고, 서쪽으로는 벳호론 길을 통하여 욥바로 간다. 남쪽에 예루살렘이 10킬로미터 안에 있고 조금 더 가면 베들레헴이다. 북쪽으로는 사무엘의 동네인 라마와 그 위에 구국의 동산 미스바가 있고 조금 더 가면 벧엘이다. 내 고향은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걸어다닌 “족장길”에 있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조상 대대로 내려온 기업을 빛내고 싶었다(삼상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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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 산 꼭대기가 나비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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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바가 있는 라말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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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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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리고쪽



          내가 이스라엘의 첫 왕이 된 후 “전반전”은 잘 뛰었다. 그 때는 참 겸손하고 성실하였다. 역사에 길이남을 승리도 여러 번 하였다. 암몬의 나하스 왕이 길르앗 야베스를 쳤을 때 성령의 감동을 받은 군인들이 나서서 요단 동편 길르앗까지 가서 승리하였다(11:1-11). 강력한 블레셋 군대가 벧호론 길을 따라 올라와 “기브온-라마-믹마스”를 잇는 “게바”에 수비대를 둘 정도로 나라의 안보가 취약하였을 때(13:2), 내 아들 요나단이 “믿음으로 진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 때만 해도 나는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였다(14:18). 나는 아말렉을 소탕하며 역사의 숙원을 풀었다(15:1-33). 


          나의 “후반전”은 몹시 힘들었고, 무능했고, 취약했고 결국 “자살골”로 끝났다. 인생에서는 전반전보다 후반전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늦었지만 하고 싶다. 내 인생에 나락으로 떨어진 터닝포인트가 있었다. 엘라 골짜기의 에베스 담밈에서 블레셋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치명적인 말을 들었다. 뭇 여인들이 춤추면서 개선장군인 나를 환영하는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노래를 하였다. 그 때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그리고 불안해졌다(삼상 18:8). 사실 나는 덩치는 크지만 내 속에는 근원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염려가 두려웠고(9:5), 왕직의 부름이 있었을 때에도 숨고 외면하며 회피하는 것으로 두려움을 드러내었다(10:22). 나는 백성이 두려워 아말렉의 왕도 처단하지 못하였다(15:24). 결국 그 두려움이 나를 삼켰다. 나는 다윗만 잡으면 모든 문제를 풀 것 같은 광적인 망상에 시달렸다. 사실 그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영적 상담을 받았어야 했다. 상담은 문제가 불거졌을 때 받는 것이 적기이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나를 바꾸라는 신호이기기 때문이다. 그 때 나의 불안은 다윗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직시했어야 했다. 나도 보통 사람처럼 두려움을 느낄 때, 직면하기보다 타조처럼 모래 사이에 머리를 쳐박고 문제를 안보는 버릇이 있음을 알았어야 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상담자인 사무엘 선지자까지 외면하였고, 급기야는 그를 감시하기까지 하였다(16:2). 


         결국 나의 죽음으로 나의 고향 기브아도 파괴되었다. 블레셋 군대는 나를 파괴한 후(삼상 31:8-10), 나의 도읍지까지 올라와서 보란듯이 철저하게 파괴하였다. 이스라엘의 영광이 또 다른 산 위에서 죽임을 당했다(삼하 1:19).

     


    2018년 2월 22일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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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르단 왕 후세인의 궁전터



    기브아에서: 다윗의 맹점(盲點, blind spot)


          내가 엘라골짜기에서 골리앗 앞에 나선 것은 내 야심 때문이었을까? 내 믿음 때문이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 나는 “왕의 상금”에 솔깃하였다. 내가 골리앗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왕의 상금에 대한 군인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골리앗만 잡으면 왕이 많은 재물과 공주를 주고 아버지 집에서 세금까지 면제해 준다고 한다(삼상 17:25). 나는 확인하고 싶어서 다른 군인에게 물었다. “저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이스라엘이 받는 치욕을 씻어내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준다구요?”(26절, 표준역).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내 말 중 첫마디이다.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노출해 주는 내레이터의 말이다. 동일한 대답을 들었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더 확인하였다(30절). 내가 얼마나 열심히 확인하였기에 사울 왕에게까지 보고가 되었을까?(31절). 나에게 야심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사실 나의 야심을 가장 잘 알아본 사람은 나의 맏형 엘리압이었다(28절). 물론 나는 ‘하나님의 군대’가 모욕을 당하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23, 26, 36, 45절). 물론 나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친히 싸워 주실 것에 대한 산 체험(lived experience)이 있었기 때문에 전장에 나아갔다(36절, 대하 20:15 참조). 그렇지만, 나는 젊은 날에는 나의 야망과 믿음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골리앗을 잡은 덕분에 나는 결국 사울의 궁궐 기브아에서 “천부장”이 되었다(삼상 18:13). 거의 벼락 출세에 가까웠다. 궁궐의 삶은 화려했고 나는 상당히 즐겼다. 사울 왕은 나를 사위로까지 삼고 싶어했다(17절). 그 때 나는 사울 왕이 자기 딸까지도 권력의 도구로 삼고 있음을 몰랐다(21절). 둘째 공주인 미갈은 나를 사랑하였다(29절). 나도 미갈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기보다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더 좋아서” 결혼을 한 셈이다(26절). 나도 나의 아내와 결혼을 도구로 삼았던 것을 그 때는 분별하지 못했다. 나는 기브아 궁궐에서 권력의 단맛을 보면서도 권력의 자리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직 몰랐다. 나는 한 마리의 도요새(翠鳥)였다. 아직 “맑고 밝은 달빛이 비치는 우람한 나무에 깃들어서(巢在三珠樹), 사람들의 새총도 못 보고(得無金丸懼), 좋은 옷 입은 것에 대한 사람들의 손가락질도(美服患人指), 높은 명성을 미워하는 신의 뜻도 몰랐다(高明逼神惡)”. (張九齡, 感遇其一).


    2018년 2월 22일 輕舟 김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