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타기 인생: 기브아 궁궐에서 라마 나욧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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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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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타기 인생: 기브아 궁궐에서 라마 나욧까지

믹마스 골짜기에서 바라본 게바(아랫동네), 라마(윗동네)- 골짜기 끝에 있는 두 동네 (현, 팔레스타인 지역)
하루 아침 사이에 내 인생은 외줄타기가 되었다. 한 때 나는 이스라엘의 아이돌이었다(삼상 18:7). 나는 왕자 요나단의 절친한 친구(1-4절), 왕의 궁중 악사(10절), 군대의 천부장(13절), 왕의 사위(27절)가 되었다. 나는 젊은 나이에 “너무 쉽게 성공했고”, 나의 자아(ego)는 “한없이 크게 팽창하였다”.
그러나 나를 향한 사울 왕의 “악한 눈”은 더욱 거칠어졌다(18:8). 옛날에도 사울은 악령에 사로잡혀 그를 위해 수금타고 찬양하던 나에게 손에 든 창을 던졌는데(10-11절), 이젠 사위가 된 나에게 다시 한번 더 던졌다(19:10). 그 기세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의 창이 벽에 박힐 정도였다. 나는 간발의 차이로 죽음을 묘면했다. 나는 몹시 “위축되었다”.
나는 요즈음도 가끔 스스로 물어본다. 나는 누구인가?(삼하 7:18) “팽창한 내가 나인가?”, “위축된 내가 나인가?” 사람들은 흔히 팽창할 때 “은혜가 있다”, 위축될 때 “은혜가 없다”고 말하지만 은혜란 원래 어려울 때 받는 것이 아닌가?
나는 사실 파산하였고 매장되었다. 이 절망스러운 자리에서 빠져 나갈 길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내 아내 미갈이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나를 도왔다. 우리의 집은 기브아 궁궐의 성벽 위에 있었으므로 미갈은 “창문에 줄을 달아 내가 피하여 도망치게 하였다”(삼상 19:12; 참조, 수 2:15; 행 9:25). 그리고 군사들과 아버지까지 속여 내가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었다. 그날 밤 이후로 내 인생은 실제적으로 “외줄타기”가 되었다.
나는 선지자 사무엘이 계신 “라마 나욧”으로 급히 도망을 쳤다(삼상 19:18). “나욧”은 지명이 아니라 “목초지”(pasturage)요 “벌판”이다(BDB, “descriptive noun”). 그 당시 사무엘의 제자들은 라마의 “벌판”에서 함께 수련을 하고 있었다. 사무엘 선지자는 힘들어 하는 나에게 “외줄타기 인생이니 깨어 기도할 수 있다”는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 사울 왕은 나를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세 번이나 암살자들을 보내었지만 다 실패하자, 직접 칼을 들고 왔다. 그는 라마의 “세구”(Secu) 동네에 있는 “큰 우물”에서 사무엘 선지자가 어디 있는지 사람들에게 물었다(19:22). 사실 사울의 기브아와 사무엘의 라마는 10리도 채 않되지만, 그들은 평생 서로 보지 않는 불편한 사이였다(삼상 15:35). 자신을 왕으로 세워준 사무엘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사울이 나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서 찾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비수를 꼽기 위해 직접 나서는 것 또한 인생이리라.
그렇지만 그 우물 가에서부터 성령이 “그에게도” 임하셨다(19:23). “그에게도”라는 말은 성령께서 선지자 공동체와 다윗에게도 임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선지자의 감동은 시공을 초월하여 임한다(민 11:26). 그렇지만, 성령이 임했을 때 사울은 “하루 밤낮을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 있었다”(삼상 19:24). 그는 그의 원수 앞에서 벌거벗은 채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원래 성령은 우리를 입히신다. 성령은 “기드온을 옷입혔다”(삿 6:34; ESV, JPS, “the Spirit of the LORD clothed Gideon”). 성직자들이 가운을 입는 것은 성령이 그들을 옷입혔음을 상징한다(롬 13:14; 갈 3:27). 성직자가 성령을 옷입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들을 옷입히는 것이 맞다. 그런데 사울은 완전히 벗는다. 이것은 그의 영혼의 두려움과 시기심이 바닥까지 노출되었음을 보여준다. 사울이 정말 두려워 하는 것은 그의 수치가 드러나는 것이었다(삼상 20:30). 사울의 벗은 몸은 그의 어두운 미래를 상징해 준다(삼상 31:9-10).
나는 바로 그 하루 동안 “라마 나욧에서 도망쳐” 기브아에 있는 “요나단”에게 가서 사울 왕의 진의를 물을 수 있었다(삼상 20:1).
2018년 2월 24일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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