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급전을 수용하다: 기브아의 들에서 놉의 성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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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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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급전을 수용하다: 기브아의 들에서 놉의 성막까지
나는 기브아의 들에서 지난 3일 동안 침묵 속에 기도하고 기도 속에 침묵했다. “나의 갑작스러운 운명 전환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 거부하고 저항할 것인가? 받아들이고 내 팔을 벌릴 것인가(요 21:18)?”
사실 인생은 신비롭기도 하다. 나에게 “죽음의 사신”으로 오싹하게 엄습해는 사울 왕과 “영혼의 섬광”으로 따뜻하게 감싸주는 요나단은 결국 같은 피, 같은 골수를 가진 사람이 아닌가? 나의 길은 두려움과 적개심으로 떨고 있는 사울의 길인가, 희생과 사랑으로 녹는 요나단의 길이 될 것인가? 사울의 길을 따라 가면 나는 사울이 될 것이요, 요나단의 길을 따라 가면 요나단이 될 것이다. 나는 내 운명 급전을 수용하고 도망치기로 하였다.
그럼, 어디로 갈 것인가? 일단 “놉”(Nob)으로 가기로 하였다. 놉은 기브아에서 멀지 않았고 족장들의 길에서는 벗어나 있었으며 또한 성막이 있었다(삼상 21:1). 성막의 동쪽으로는 유대 광야가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기드론 골짜기 너머 여부스 족속의 예루살렘이 있었다. 옛적에 실로가 블레셋 군대에 의하여 파괴된 후 엘리의 손자인 아히멜렉이 살아남아 이곳에 새로운 성소의 터전을 만들었다. 나는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구했더니 “진설병”만 있지만, 정결법만 지키고 있다면 줄 수 있다고 하였다(4절). 비록 거룩한 떡이라 할지라도 허기진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먹여야 한다는 대제사장의 분별력이 고마웠다. 사람이 종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사람을 위해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막 2:25-28).
마침 그 자리에 “사울의 목자장”인 “에돔 사람 도엑”이 있었다(삼하 21:7). 사울 왕은 이미 그의 첩자를 성소에 심어 두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최대한 에둘러 말해야 했다. 나는 먼저 나에게는 “창이나 칼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히멜렉은 내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칼보다는 “골리앗의 칼이 있다”고 대답했다(9절).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9절하). 왜냐하면, 나는 이스라엘 땅에서는 더 이상 살 길이 없으므로 블레셋의 땅으로 망명(亡命) 가기로 이미 기브아의 벌판에서 마음을 굳혔었기 때문이다.
*참조.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앗시리아 군대가 “놉에 진을 치고 시온 산, 예루살렘 언덕을 향하여 주먹을 휘두를 것이다”(사 10:32 공동역 참조)고 말한다. 놉은 산헤립의 군대가 히스기야의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주먹을 쥐고 흔들면서 “너희들은 이제 죽었다”고 말한 곳이므로, 학자들은 현재 히브리대학이 있는 “스코푸스 산의 한 언덕”으로 본다(라스 엘-메샤리프, Ras el-Mesharif). 느혜미야는 “놉”이 “아나돗”과 가까운 베냐민 지파 지역에 있다고 말한다(느 11:32). 오늘 히브리 대학 캠퍼스에서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사진을 찍었다. 
히브리대에서 본 예루살렘

히브리대에서 본 유대광야

히브리대에서 본 감람산의 러시아 수도원

정문

대학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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