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경계를 넘나들다: 블레셋의 가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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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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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경계를 넘나들다: 블레셋의 가드에서
꿈인가, 생시인가? 몇 년 전 개선장군으로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삼상 18:7)는 여인들의 노래와 춤으로 축하받던 길을 이제는 도망자가 되어 돌아간다. 그 때는 엘라 골짜기를 내려갈 때나 올라올 때에나, 작거나 크거나 “사명”(mission)이 있었다. 이제는 “망명”(亡命)이다. 사람에게 “명”(命)이 없으면 사는 것인가, 죽은 것인가? 내가 적국 블레셋으로 피신 가기로 한 것은 잘 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가드 왕 아기스는 나를 받아줄 것인가? 죽일 것인가? 왜 나는 사무엘 선지자에게나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물어보지 않았을까? 나도 선지자나 제사장을 필요에 따라 이용해 먹는 “이기주의자”(egoist)인가? 주님은 나의 길에 함께 하실까? 나라가 달라지면 종교도 달라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나는 나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몽롱하다.
엘라 골짜기 끝자락에 아기스 왕의 가드가 그 위용을 드러낸다. 넓은 구릉지대(쉐펠라)에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언덕이 우뚝 서있다. 산의 한 기슭은 백색토 지역이다. 저 흙에서 가드의 독특한 토기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정상의 봉우리로 올라가자 동쪽으로는 유다 산지와 서쪽으로는 지중해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넓은 평원이 펼쳐지고 “에그론”이 가까이 보인다. 가드의 아기스는 블레셋의 한 방백(seren)이 아니라(삼상 5:8), 진정한 왕(melek)이다(삼상 21:11). 블레셋의 빼어난 물질 문화가 도로와 집들, 성벽과 궁궐, 옷과 음식, 군인들과 농부들의 모습에서 구석마다 드러난다. 참 부강한 나라이다.
나는 아기스 왕에게 나아가 골리앗의 칼을 진상하며 왕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기를 소원한다고 아뢰었다. 그 때 갑자기 나의 귀에 익숙한 노래 가락이 들렸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11절). 아기스의 신하들은 “폐하, 이 노래의 주인공이 바로 이 사람이 아닌지요?”라고 물었다. 즉시 왕의 군인들이 나를 체포하려고 하였다(시 56편 표제). 나는 “그들의 손에”(in their hands) 붙들렸다(삼상 21:13). 순간 나는 너무나 두려웠다(12절). 나의 온 몸은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졌고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바로 그때 나도 믿을 수 없는 나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는 위축되기보다 오히려 광기가 폭발하였다. 내 입에서는 거품이 일어나고 끈적끈적한 침물과 가래가 내 수염을 타고 흘러내려 경호원들의 손을 적셨다(13절). 아기스 왕은 내게 토할 것 같은 혐오감을 느꼈다. 그는 미쳐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미친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즉시 나를 쫓아내라고 하였다(14-15절).
사실 그 때 나는 아기스 왕이 말한 “미친 놈”이 아니었다. 나는 “미친체 하였을 뿐이다”. 나는 나의 통제력을 상실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보였다. 나는 단지 살아 남기 위하여 광기와 정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건국 왕의 이야기에서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매력적이던 젊은 영웅 다윗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오디세우스가 거지로 변장한 것보다 더 낮춘다. 살아남기 위하여 미친체 하는 다윗은 정말 미쳐서 왕국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사울과 대조를 이룬다”(Alter, David, 134).
우리에게 오신 메시아는 가족들과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미친사람으로 취급받았다(막 3:21; 요 10:20).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대낮에 술취한 사람으로 비친다(행 2:13). 학문도 너무 깊으면 “미쳤다”라는 소리를 듣는다(행 26:24). 광인(狂人)과 정상인 사이에 경계가 있는가?(전 2:12).

가드 전경

가드 언덕

초입

발굴터

정상

서남쪽 평야지대 (2017년 10월)

유대 산지 (2017년 10월)

백색토의 언덕
2018년 3월 1일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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