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보아 산의 두 용사: (1) 어둔 밤에 횃불을 든 기드온 / (2) 영혼의 어둔 밤을 맞은 사울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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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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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보아 산의 두 용사: (1) 어둔 밤에 횃불을 든 기드온
이스라엘의 중앙 산지가 끝나고 넓고 비옥한 이스르엘 평야와 하롯 평야가 서로 접하여 펼쳐지는 지역에 길보아 산이 나온다(해발 545미터). 길보아 산 서북쪽 기슭에 “하롯 샘”의 원천이 있고 여기서 솟은 물은 하롯 계곡의 골짜기를 따라 벧산을 거쳐 요단강으로 흘러간다. 길보아 산은 서쪽으로는 갈멜산과 므깃도, 동쪽으로는 벧산을 잇는 요충지이다. 남쪽으로는 에브라임 산지가 있고 북쪽으로는 이스르엘 평야와 하롯 평야를 가운데 두고 갈릴리가 시작되는 곳에 있으므로 남북을 잇는 요충지이기도 하다.


원래 기드온의 고향은 “오브라”였다(삿 6:11). 학자들은 현대의 “아풀라”(Afula)로 추정한다. 이 지역은 원래 스불론(동북쪽), 잇사갈(서북쪽), 므낫세(남쪽) 세 지파가 서로 인접하는 곳이었다. 당시 납달리 지파는 스불론, 잇시갈 지파의 북쪽에 있는 상부 갈릴리 지역에 있었다. 따라서 기드온은 이 네 지파에 사자들을 보내어서 군대를 모았다(삿 6:35). 이후에는 아셀지파(삿 7:23)와 에브라임 지파까지 가세하였다(7:24-35). 즉, 기드온은 북 이스라엘 지파들을 모두 불러 전투를 준비한 셈이다. 그렇지만, 주님은 이스라엘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내가 나를 구원하였다”는 자력구원론(自力救援論)을 깨기 위하여 오직 300명의 용사로만 큰 승리를 거두게 하셨다(7:2). 이 300명은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물을 벌컥벌컥 마신 사람들”이 아니고, “두 손을 움켜서 물을 퍼서 마신 사람들”이다(7:6). 사실 “개처럼 마신 사람들”은 무릎 꿇고 엎어져서 마신 사람들인데, 두 손으로 물을 움켜 퍼서 마신 사람들이 “개처럼 핥아 마신 것”으로 묘사되어 해석이 어려워진다. 두 손으로 물을 움켜 퍼 마신 사람은 목마르고 힘들 때에도 사람다운 모습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사사”로서 기드온을 먼저 꼽는다(히 11:32).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을 통하여 믿음이 점점 자라고 단단해진다. 그는 처음 부름을 받을 때 두려움 가운데 살았다(삿 6:11). 자신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6:15). 그는 주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요구하였다(6:17). 그는 양털 시험을 통해서 두 번이나 임마누엘의 증거를 요구하였다(6:36-40). 기드온은 군대를 줄이고 또 줄이는 다운-사이징 전략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기드온은 시편기자의 말 대로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을 것이다(시 20:7).
2017년 12월 23일 다볼 산 아래에서 輕舟 김정우
길보아 산의 두 용사: (2) 영혼의 어둔 밤을 맞은 사울 왕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사울은 그의 마지막 전투를 길보아 산 기슭에서 준비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라”(삼상 28:4). 수넴은 모레 산 남쪽 기슭에 있으므로 옛적에 기드온과 미디안이 싸움을 한 상황과 정확하게 중첩이 된다. 두 번 다 이스라엘 군대는 길보아 산 기슭에, 적군은 모레 산 기슭에 진치고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사울은 기드온이 이곳에서 승리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블레셋 군대는 이스르엘 평원과 하롯 평야 전체를 손에 넣고 므깃도에서 벧산까지의 대로를 장악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남쪽 에브라임 산지와 북쪽의 갈릴리가 단절된 상황에 처한 셈이었다. 왜 이스라엘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사울은 어쩌면 그의 마지막 전투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가지고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사울은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었지만 내면 생활이 거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에게 영적인 훈련과 삶이 있었다면 자신의 인생과 나라를 이렇게까지 망가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겐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사무엘 선지자도 그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살았다. 다윗도 두 번이나 그를 울렸다. 그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였다. 그의 아들 요나단도 그의 길이 잘못되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지만 사울은 갈수록 깊은 어둠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의 영혼은 캄캄한 밤을 맞이 하였다.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았다. 광적인 편집증은 갈수록 깊어졌다.
전쟁 전날 밤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렸다”(삼상 28:5). “떨렸다”(charad)는 히브리어는 그가 진치고 있는 “하롯”(charod)과 동일한 어근을 갖고 있다. 결국 사울은 “엔돌에 있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다(5절). 엔돌은 바로 모레 산 북쪽에 있다.

사울은 모레 산 남쪽에 진치고 있는 블레셋 군대를 뚫고 북쪽에 있는 엔돌로 가고 있는 셈이다. 만약 사울이 옛날의 기드온을 기억하였다면, 그 밤에 소수의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가 나팔을 불고 횃불을 밝혔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울은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만나기 위하여 왕복을 벗고 “변장을 하였다”(8절). 옷은 사람의 분신인데, 사울은 스스로 왕복을 벗었으므로 왕권을 스스로 버린 것이다. 그는 다음 날 전쟁터에서 자신의 칼에 스스로 엎드려져서 생을 마감하였다(삼상 31:4). 왕으로서 전쟁터에서 변장하여 살아 보려다가 죽은 또 다른 사람은 아합이다(왕상 22:30). 사울과 아합은 스스로 왕이 아님을 자인한 셈이다. 지도자는 끝까지 자신의 옷을 잘 입고 있어야 한다.
오늘날 엔돌에는 키부츠 마을이 있다. 엔돌은 남쪽으로는 모레 언덕, 북쪽으로는 다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엔돌로 들어가는 길은 아름드리 유칼립투스들이 가로수로 서 있다. 멋진 동네이다. 현대의 이스라엘은 이런 식으로 성경의 역사를 숨쉬고 있다.
2017년 12월 23일 다볼 산 아래에서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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