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성과 모레산 : (1) 죽은 아들을 돌려 받은 수넴 여인 / (2) 죽은 아들을 돌려 받은 나인성 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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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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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성과 모레산 : (1) 죽은 아들을 돌려 받은 수넴 여인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 시대에 주님은 엘리야를 통하여 갈멜산에서 자신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셨다. 그 후에 엘리야의 제자들은 갈멜 산에서 함께 모여 살았다. 엘리야가 떠난 후 그의 제자 엘리사는 갈멜산에 머물면서 사역을 하였다(왕하 2:25; 4:25). 엘리사는 원래 아벨-므홀라(Abel-mehola) 출신이다(왕상 19:16). 아벨므홀라는 벧산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요단강 서쪽 언덕에 있다. 그래서 엘리사는 이스르엘 평야의 서남쪽 길을 따라 갈멜과 아벨므홀라 사이를 자주 다녔다. 수넴은 바로 그 중간에 있었으므로 엘리사는 수넴에서 자주 쉬었을 것이다. 수넴은 모레 산의 남쪽 기슭 양지 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오늘 날은 아랍 동네로 “술람”이라고 부른다. 나는 “텔 수넴”을 찾아 갔지만 아무 것도 없고 빈 밭만 밟고 왔다. 그래도 수넴이 모레 산 아래 기슭에 있음을 볼 수있었다.

엘리사 당시 수넴에는 유력한 부인이 한 명 있었다. 그는 엘리사를 위하여 집 안에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가 있는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든다”(왕하 4:10). 엘리사는 그 여인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한다(13절). “배려하다”로 번역한 단어는 원어에서 “떨다”(charad)는 뜻이다.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두려워) 떨었다”(charad)와 동일한 동사이다. 수넴의 남쪽에 흐르는 “하롯”(Charod) 강과도 뿌리가 같은 단어이다. 여기서는 긍정적인 뜻으로 “당신은 이 모든 보살핌으로 주의 깊게 우리를 돌보았습니다”라는 뜻이다(NAS, you have been careful for us with all this care). “두려움”과 “떨림”에도 긍정과 부정이 함께 있다.
수넴 여인은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아들이 없었고 남편은 늙었다(14절). 그는 마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같다. 엘리사는 생명의 중보자였으므로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는 말씀을 준다(16절상). 여인은 “아닙니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라고 답하였다(16절하). 선지자의 말씀대로 한 해가 지나 여인은 아들을 낳았고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랐다(17-18절). 그렇지만 소년이 된 아들은 어느날 들판에서 지내다가 일사병에 걸려 갑자기 죽게 되었다. 수넴 여인은 갈멜산에 있는 엘리사를 찾아 달려가 그의 발을 붙들었다(27절). 엘리사는 여인의 고통을 느끼고 그냥 두었다. 엘리사는 여인과 함께 수넴으로 돌아와 죽은 “아들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여졌다”고 한다(34절). 선지자는 죽은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 시킨다. 엘리사는 자신의 숨결을 죽은 소년 속에 불어 넣는다. 그러자 죽었던 아들이 “일곱 번 재치기를 하며 눈을 떴다”(35절). 마치 하나님의 숨결이 아담에게 들어가자 아담이 산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이다(창 2:7). 엘리사는 되살아난 아들을 어머니 품에 돌려 준다(36절). 선지자는 예언의 능력으로 불임의 어머니에게 없던 아들을 선물로 주었고, 이제는 죽었던 아들을 되살려 다시 선물로 돌려준다. 어떤 선물이 어머니에게 더 컸을까? 그 때 수넴 여인은 땅에 엎드려 엘리사에게 절한다(37절). 수넴 여인은 히브리서 저자의 말대로 “믿음으로 죽었다가 부활한 가족을 다시 만났다”(히 11:35).
2017년 12월 23일 다볼 산 아래에서 輕舟 김정우
나인성과 모레산 : (2) 죽은 아들을 돌려 받은 나인성 과부
예수님은 첫 갈릴리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시고 나사렛으로 돌아오실 때 첫 기적을 행하신 가나를 통하여 바로 돌아오지 않고 다볼 산을 둘러 나인 성으로 돌아오는 길을 선택하셨다. 갈릴리 호수의 가버나움에서 나사렛으로 올라오는 길은 높은 산길을 따라 걸어야 하고 투란 계곡(Turan Valley)을 따라 가나를 거쳐 나사렛으로 가는 길도 산길이다. 그래서 아마도 오늘 날로 말하자면 “마흘렙 골라니”(Mahleb Golani) 사거리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이스르엘 평야 길을 따라 다볼 산을 거쳐 나인 성을 돌아오는 길을 선택하신 것 같다. 물론 예수님은 길이 편해서 이 길을 택하신 것만 같지는 않다. 아마도 예수님은 다볼 산을 참 사랑하셨을 것만 같다. 나인 성은 다볼 산을 조금 지나 모레 산 기슭에 북쪽에 있다. 모레 산 남쪽에는 수넴, 동쪽에는 엔돌이 있다. 나인 성은 성경에서 단 한번 나오는 곳이다. 만약 예수께서 이 성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나인은 수넴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동네가 되었다. 이곳에는 “과부의 아들 교회”가 있다. 벽에는 예수님이 과부의 아들을 살린 벽화가 있다고 한다.

누가는 “이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쌔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였다”는 말로 나인 성을 소개한다(눅 7:11). 예수님은 성문 가까이 갔을 때 한 과부의 아들이 죽어 매장지로 가는 행렬을 보게 되었다. 그 아들은 과부의 외아들이었으므로 그의 어머니는 하염 없이 울고 있었다. 이 세상에 죽음보다 더 절망적인 것이 없고 외아들의 죽음보다 더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관에 손을 데시며”(14절),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말씀하시자 그 죽었던 아들이 “일어나 앉고 말도 하였다”고 한다(15절). 어쩌면 그 청년은 관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서 “어머니 왜 우십니까?”라고 물었을 것만 같다. 그 때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고 고백을 하였다(16절). 동네 사람들은 엘리사 선지자가 바로 이웃 동네인 수넴 여인의 외아들을 살린 기적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큰 선지자가 일어났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과 동일시 되어 그를 살렸지만,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불쌍한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 내셨다. 예수님에게는 부활의 능력이 있고, 친히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나인 동네를 걸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부활하고,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에게 감추어져 있음을 묵상해 본다(골 3:1‐3).
2017년 12월 23일 다볼 산 아래에서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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