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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우 교수 칼럼·설교

    성탄 절의 나사렛에서: 참말이 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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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Date 24-08-30 00:34

    본문

    성탄 절의 나사렛에서: 참말이 되신 예수님 


    나사렛_종합1.jpg


         구약 시대가 끝나고 오랫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 유대 왕 헤롯 때에 주님의 사자가 그 해 대제사장 직무를 맡은 사가랴에게 아들이 태어나 주님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 그 때 사가랴는 주의 “말씀을 믿지 못하였다.” 그래서 아들 세례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었다(눅 1:20, 개역). 제사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못 믿는 것은 아이러니이지만 인간의 일상적 경험이므로 인간적이다. 


         그 후 여섯 달 후에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 동네에 살고 있는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말씀을 주셨다(31절).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응답했을 때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받았다(37절). 그 때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며 순종하였다(38절). 한 명의 젊은 여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범상함을 넘어간다. 그 때 마리아는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의 일상을 넘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사렛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마리아가 그 때 샘물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리아 샘물 교회”를 수태고지 교회로 세웠다. 실제로 교회당 안에는 “마리아의 샘물”이 있다. 나는 그 때 마리아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어쩌면 마리아는 이사야 7:14을 읽으며 이 예언이 어떻게 성취될까 묵상하고 있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사이였기” 때문이다(눅 1:27). 어쨌던 마리아는 한갓 젊은 처녀의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  


    나사렛_종합2.jpg


         나는 올해 성탄절을 나사렛에서 맞으며 말씀을 믿는 마리아의 믿음을 계속 묵상해 본다. 그 동안 나의 인생에는 “빈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내게 “빈말”이 많았다는 것은 나에게 “진정한 말씀이 비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말씀 전하는 자 속에 말이 비었으면” 거의 사기에 가깝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다. 어떻게 나는 빈말의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가 민영진 박사님은 우리 말 “말씀”의 “씀”이라는 어미가 옛말의 “신”에서 나왔다고 하셨다. 즉 “말씀”은 “말”과 “신”이 합성한 것이므로 원래는 “신의 말”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 말의 “말씀”은 헬라어 “로고스”와 통한다. 히브리어로 “말씀”은 “다바르”이다. “다바르”는 “말”도 되고 “사건”도 된다. 사람의 “말”은 “사건”이 안되는 “빈 말”인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말씀”은 늘 참말이므로 “사건”이 된다. 그렇다면 히브리어의 “다바르” 안에도 신적인 영감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히브리어(브레쉬트 하야 다바르)를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다”(엔 아르헤 엔 호 로고스)는 헬라어로 바꾸었다(요 1:1). 


    나사렛_종합3.jpg


        올해 성탄절에 나는 나사렛에서 와서 참 말씀을 믿고 산 요셉과 마리아를 깊이 생각해 본다. 나에게 참말이 되신 예수님을 더욱 깊이 사모해 본다.


    2017년 12월 25일 나사렛에서 輕舟 김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