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셋의 도시 ‘에그론’(텔 미크네)을 찾아서: 보이지 않는 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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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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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의 도시 ‘에그론’(텔 미크네)을 찾아서: 보이지 않는 텔
어제 고대 블레셋의 도시인 ‘가드’를 찾지 못하여 다시 도전하기로 하였다. 오늘은 ‘가드’를 찾기 전에 그곳에서 가까운 에그론을 먼저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고대의 에그론은 오늘날에는 ‘텔 미크네’(Tel Miqne)라고 한다. 나보다 앞서 오래 전에 에그론을 찾아왔던 머피-오코너(Murphy-O’Connor)는 에그론을 가리켜 ‘보이지 않는 텔’(invisible Tel)이라고 말한다(The Holy Land, 451). 보이지는 않지만 텔이라니 흥미가 더 생긴다. 나는 늘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으니, 보이지 않는 텔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쏙 든다. 텔 에그론은 오랜 퇴적층으로 원래의 언덕이 다 덮여 버렸나 보다. 그럼 어떻게 찾아가는가? 머피-오코너는 “먼지 길을 따라 가다보면 의심스러울 때마다 표지가 나온다”고 말한다. 이 말도 너무나 멋있다. 고대의 유적지를 찾아가는 데 의심이 일어날 때마다 표지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블레셋의 다섯 도시 가운데 가드와 함께 이스라엘에 가장 가까웠던 에그론은 언약궤를 마지막으로 안치하였던 곳이다. 언약궤는 마지막으로 가드를 떠나 벳세메스로 올라 왔다(삼상 5:10; 6:16). 지형적으로 보면 에그론을 따라 유다 산지로 올라오면 바로 벳세메스이다. 이후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자, 사울의 군대는 블레셋 군대를 추격하여 에그론 성문까지 진격하였다(삼상 17:52). 앗시리아 제국 시대에 산헤립 대왕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남진하려 하자, 히스기야는 반-앗시리아 동맹을 주도하면서 그의 동맹을 반대하던 에그론의 왕 파디(Padi)를 예루살렘에 가두었다. 그렇지만, 산헤립은 파디를 히스기야에게 넘긴 에그론 지도자들을 죽이고 히스기야에게서 파디를 넘겨 받은 후에 다시 에그론의 왕으로 세웠다(Prism of Sennacherib). 덕분에 에그론은 앗시리아 시대에 번영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후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등장할 때는 반기를 들어 파괴되고 이후에는 다시는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였다.



고대의 에그론은 오늘날 텔 미크네(Tel Miqne)로 불린다. 이곳은 올브라잇 고고학연구소와 히브리 대학에서 공동으로 발굴하였다. 도단(Trude Dothan)과 기틴(Seymour Gitin) 두 교수의 지도를 따라 1981년부터 1996년까지 14회에 걸쳐 매년 발굴을 하였다. 

부푼 가슴을 안고 블레셋의 도시로 찾아간다. 그렇지만, 비포장 도로여서 먼지는 많이 나지만, 표지가 전혀 없다. 네비게이션도 길을 찾지 못한다. 동네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곳에 놀러온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찾아갔는데 텔 에그론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을 기리는 팻말 하나 밖에 없다. 또 뒤져서 올리브를 짜는 곳을 겨우 찾았다. 바로 그 때 갑자기 사람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몰려 온다. 여러 가족들과 친구들이 함께 온다. 그들의 가이드에게 이곳이 텔 미크네냐고 물었더니 바로 그곳이라고 한다. 왜 유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발굴도 돈이 많이 들지만 유지하는 것은 더 많이 들어서 다시 묻어 버렸다고 한다. 결국 나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왔는가? 머피-오코너의 말이 맞다. 이곳은 ‘보이지 않는 텔’이다. 그렇다! 보이는 텔보다 보이지 않는 텔이 더 멋있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텔과 세상은 상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텔 미크네를 찾아 가는 길의 빈들이 멋있었다. 목화 농사를 첨단으로 하고 있는 현대 이스라엘의 농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석류 밭의 석류가 너무나 잘 익었다. 명절 휴일이라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텅빈 유적지를 찾아와 야성을 기르는 유대인 부모들의 모습이 부러워 보인다. 아무 것도 본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왔다. 그래서 기뻐한다.
2017.10.13 예루살렘에서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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