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의 싸움터: (2) 아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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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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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의 싸움터: (2) 아세가
아세가가 성경에 처음 나오는 곳은 여호수아가 기브온과 평화 조약을 맺은 후, 위기를 느낀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이 연합군을 만들고 싸움을 걸어 왔을 때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세가까지 추격하였다”는 이야기에 나온다(수 10:10-11). 아세가는 가나안 정복 초기부터 유다 지파의 영토에 속하였다(수 15:20, 34-36). 그렇지만 사사시대를 거쳐 사울 시대에 이르자 블레셋은 아세가까지 진출하였다(삼상 17:1). 이후 르호보암은 남북이 나누어진 후 유다 산지를 지키기 위하여 소고와 아세가에 성을 쌓았다(대하 11:9).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유다를 치기 위하여 올라올 것에 대비하면서 예루살렘 뿐 아니라 아세가 성을 더욱 견고하게 하였다(대하 32:1 참조). 유다 왕국의 마지막 날에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은 유다의 모든 성들을 정복할 때(587년), 예레미야는 오직 “예루살렘과 라기스와 아세가만이 남았다”고 말한다(렘 34:7). 예레미야의 보고 이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아세가도 정복되었다. 그 당시 라기스의 장군이 예루살렘의 왕에게 쓴 편지를 보면, “아세가에는 봉화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라는 보고가 나온다. 예루살렘이 그해 여름에 함락된 것을 미루어 보면, 아세가의 봉화는 봄에 꺼졌을 것이다.

아세가는 오늘날 이스라엘의 국립 공원이므로 나는 쉽게 찾아갈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막상 아세가 안으로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아세가 공원이 너무나 컸다. 마침 장막절 연휴 중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아세가 공원에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텔 아세가의 위치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다. 아세가 공원 안의 몇 개의 봉우리들을 돌고 돌아 드디어 텔 아세가를 만난다. 언덕 위로 올라가서 멀리 소고와 엘라 골짜기와 아세가 맞은 편에 있는 언덕들을 바라본다. 다윗과 골리앗이 서로 붙었던 그 지점은 정말 어디쯤일까? 상상해 본다.
2017년 10월 5일 예루살렘에서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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