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의 스승 가말리엘을 기억하는 동네 야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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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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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의 스승 가말리엘을 기억하는 동네 야브네
신약성경에서 가말리엘은 유대인의 지도자들 가운데 균형 있고 혜안을 갖춘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영적 운동으로 국론이 양분되고 있을 때 가말리엘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한 연설을 직접 인용하고 있다. 누가는 가말리엘이 ‘토라의 교사’(moreh hatora)이며,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고 한다(행 5:34).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권력의 힘으로 새로운 영적 운동의 싹을 잘라버리자는 강경한 기류에 휩쓸리고 있을 때, 가말리엘은 일단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께서 펼쳐 가시는 역사에 맡겨 보도록 하자는 설득을 한다(35-40절). 위험을 무릅쓰고 시류를 거스리는 연설을 하는 가말리엘을 보면, 그는 분명히 토라의 스승이요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이다.
가말리엘은 유대 전승에서 유대 최고의 랍비인 힐렐의 증손자이며 ‘라반 가말리엘 1세’로 불린다(주후 52년 생몰). ‘라반’이라는 칭호는 ‘우리의 지도자’(our master)로서 존칭이다. 사도 바울은 이후 예수 운동 때문에 산헤드린에서 심문을 받았을 때, “나는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나서 이 도시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선생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의 율법의 엄격한 방식을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하였다(행 22:3, 표준역). 우리 말 성경의 ‘문하’는 원문에서 ‘발치에서’(at the feet of Gamaliel)이다. ‘발치’는 ‘가장 가까운 자리’를 뜻한다. 바울은 가말리엘 스승을 가까이에서 보고 배운 ‘(인턴) 랍비-제자’(talmid)였다. 바울이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할 때, 그는 이미 랍비로 인정받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은 야브네(Yavne)라는 동네에서 가말리엘을 기억하고 있다. 이곳에는 가말리엘을 기념하는 무덤이 회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말리엘의 회당은 유대인들에게 성지이다. 야브네는 예루살렘이 주후 70년에 로마에 멸망 당한 후 라반 요하난 벤 자카이(Yohanan ben Zakkai)가 로마의 허락을 받아 산헤드린과 토라 학교를 세운 곳이다. 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 1세의 후손인 가말리엘 2세(시몬 벤 가말리엘)는 벤 자카이를 계승하고 당대의 훌륭한 토라 학자들을 불러 모아 유대 사상의 새로운 터전을 만들었다. 가말리엘 2세를 이은 가말리엘 3세는 랍비 예후다 하나시(Yehuda HaNasi), 즉 ‘유다의 왕자’(Judah the Prince)로 불리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학맥을 이어갔다. 우리는 이 시대의 학자들을 ‘타나임’(Tannaim)이라고 부른다(주후 10-220년). 가말리엘 집안에는 여러 세대에 타나님 학자들이 나온 셈이다. 히브리어로 야브네는 영어로 잠니아(Jamnia)라고 한다. 이곳에서 바로 우리의 구약 성경 39권을 정경으로 인정하는 회의가 주후 90년에 열렸다. 잠니아의 토론과 결정에 가말리엘의 가문이 상당한 기여를 하였을 것 같다.
2,000년 전의 학자와 지도자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그들의 정신을 기리는 이 나라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참조: 정양모 선생은 오래 전에 야브네로 와서 그의 느낌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무어라고 썼을까 궁금하다. “성지를 찾아서-정양모 신부가 본 성경의 세계: 야브네 얌니야”,「생활성서」35 (생활성서사, 1986), 56-57.iktinos.org, datab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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