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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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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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여호수아서에서 아이 성의 위치는 벧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오고 있다. 아이 성은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다” (7:2). 아이와 벧엘의 거리는 상당히 가까웠고 아이는 벧엘의 동쪽에 있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을 공격할 때 약 5천명의 군인을 “아이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시켰다”(8:9). 그렇다면 벧엘과 아이 사이에는 깊은 계곡이 있어야 한다. 당시 여호수아는 아이 성의 동쪽에 있는 여리고에 진치고 있으므로 매복군들이 아이 동쪽으로 넘어가려면 깊은 밤을 이용하였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전군을 아이성 북쪽에 배치하였고 그 자신은 밤에 골짜기 가운데서 지내었다(13절). 다음 날 아침 여호수아의 주력 부대가 아이 성을 공격하면서 패배하는 척 하고 여리고 쪽 비탈길로 도망칠 때 아이 성의 왕과 그의 군대는 흥분한 나머지 성을 비우고 추격한다. 여호수아는 결정적인 순간에 손에 들고 있던 단창을 번쩍 들자(8:18) 매복한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성으로 들어가 불을 지른다. 여호수아는 단창을 들어야 하던 그 결정적인 순간을 어떻게 알았을까? 지도자가 손을 들자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 움직인 군대의 헌신도 멋져 보인다. 성경을 좀 더 자세히 보면, 당시 여호수아는 아이 성 사람들 뿐 아니라 벧엘 사람과도 싸웠다(17절). 즉, 서로 가까이에 있던 아이와 벧엘의 왕들이 연합전선을 펼친 것이다. 만약에 여호수아의 복병들이 벧엘 군인들에게 발견되었더라면, 전쟁 상황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을 “영원한 돌무더기로 만들었고, 아이성은 오늘날까지 황폐하였다”고 말한다(28절).
여호수아의 전투 장면을 지리적으로 좀 더 생생하게 느끼기 위하여 오늘은 벧엘과 아이 성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성경의 ‘벧엘’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베이틴’에 있다고 한다. 네비게이션도 되지 않는 베이틴을 찾아 가는데 들어가는 입구부터 현대의 도시 같지 않다. 베이틴에 있는 유일한 유적지는 옛날 십자군의 성터이다.

이곳은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베이틴 동쪽으로 골짜기가 깊이 파여 있고, 골짜기 넘어 보이는 언덕이 옛적 아이 성터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 성이 있는 곳으로 갔다. 마주 보는 아이 성터는 생각보다 너무 컸다. 이곳은 전체가 완전히 거대한 돌무더기이다. 물론 고대의 성터와 주택지들이 가지런히 파져 있어서 옛 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볼 수도 있다. 성벽은 철기 시대의 것처럼 제대로 지어진 것 같지 않고, 손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아이성 북쪽에는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높은 언덕이 있다. 여호수아의 주력부대가 저 언덕에 있었을까? 서쪽에는 벧엘 언덕이 있고, 동서를 가르는 계곡을 따라 여리고로 내려가는 계곡이 보인다. 비로소 여호수아서의 전투 장면이 이해가 된다.
아무래도 현대의 벧엘을 보아야 할 것 같아 다시 베이틴을 지나 벧엘로 들어가는데, 벧엘 근처에 바로 팔레스타인의 수도인 라말라가 있다. 현대 벧엘의 전략적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삿 4:5 참조). 벧엘 안에서 구약시대의 벧엘을 기념하는 곳은 “야곱의 돌”(Rock of Jacob)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에 있다. 정말 야곱이 돌배게 배고 잔 터처럼 넓은 바위 판이 있다. 이 언덕에 올라와 보니 벧엘은 정말 높은 곳이다. 옛적에 아브라함은 이곳 벧엘에 와서 처음 장막을 치고 주님을 예배하였다(창 12:8). 그리고 이후에 롯과의 분쟁이 바로 이곳에서 생겼을 때(13:3),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는 말씀을 주셨다(13:14). 이 말씀처럼 벧엘은 이스라엘의 동서남북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졌을 때, 여로보암은 이곳 벧엘에 단을 세워서 북쪽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갈 필요가 없도록 만들었다(왕상 12:29). 벧엘은 완전히 독립된 산지의 공간이므로 여로보암은 유다의 왕들이 북쪽으로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벧엘에 성을 쌓았을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남북 분열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터를 찾아서 일부 복원을 하였다.

구약시대의 벧엘이 현재 이스라엘 영토 안에 있는 벧엘인지 아니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베이틴인지 잘 알 수 없으나, 벧엘이 베이틴보다 구약 시대의 스토리들을 복합적으로 더 잘 살려 내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나라조차도 스토리를 통하여 존재의 정당성을 만들어가는 가보다.
2017년 11월 14일 예루살렘에서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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