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산(Beth-Shan): 6,000년의 유적을 간직한 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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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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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산(Beth-Shan): 6,000년의 유적을 간직한 텔
이스라엘에서 로마와 비잔틴 시대의 찬란한 유적이 가장 온전하면서도 풍부하게 남아 있는 곳이 바로 벧산이다. 우리에게는 사울 왕과 요나단 왕자의 장렬한 죽음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사울은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 군대와의 최후의 일전에서 패배한 후 벧산의 높은 언덕 위의 성벽에 못 박힌다(삼상 31:10). 요단 동편의 길르앗 야베스의 용사들은 사울의 은혜를 기억하고 목숨을 걸고 밤중에 성벽까지 쳐들어 올라가서 사울과 요나단의 시체를 빼앗아 그들의 동네에 매장하였다(12절). 다윗은 이 슬픈 소식을 듣고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며 아름다운 조가(弔歌)를 지었다.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삼하 1:19, 26).
순례객들은 벧산에 올 때 대부분 텔 아래에 있는 로마-비잔틴 유적지를 돌아보고 간다. 그 유적지만 해도 충분히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벧산 텔 위로 올라가 보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평지에서 가파르게 80여미터 높이에 치솟아 있는 텔에는 6,000여년 동안 여러 민족과 나라들이 15개의 지층에 도시를 세운 흔적들이 보인다.

텔 꼭대기로 올라가면 동쪽으로는 거대한 요르단 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서쪽으로는 에브라임 산지의 길보아 산이 서 있고 서북쪽으로는 넓은 이스르엘 평야가 펼쳐진다. 이곳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한 곳이며, 서쪽 지중해 해안에서 동쪽 요르단으로 가는 길들 중에서 가장 완만한 곳이다. 바로 곁에 있는 하롯 강에는 사시사철 물이 철철 넘친다. 어떤 왕이 이곳을 탐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벧산 텔 꼭대기에는 주전 15세기에 이집트의 바로 투트모스 3세(1504-1450)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여기까지 와서 자신의 군사 기지를 세운 터가 발굴되었다(주전 1482년, Carta Bible Atla, 2002). 그 후 이집트는 300년 동안 이곳에서 이 지역 전체를 다스렸다. 사울의 죽음 전후로는 블레셋이 이곳을 다스렸고, 솔로몬은 이곳에 관리를 두었다(왕상 4:12=대상 7:29에서는 ‘벧스안’으로 부름, 삿 1:27 참조). 주전 3세기에 벧산은 스키소폴리스(Scythopois)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며, 이때로부터 사람들은 텔 아래의 평지에 도시를 세웠다.
로마는 팔레스타인-요르단 지역 전체에 10개의 로마 도시를 세우고 데가볼리(데카 폴리스)로 불렀다. 벧산은 팔레스타인 중북부의 대표적인 도시였다. 벧산으로 들어가자 마자 우리는 로마의 원형 극장을 만난다.


벧산 안에서는 교회당의 터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벧산 주위에 많은 교회당들이 있었다. 그 중 한 곳인 마리아 수도원(Monastry of Lady Mary)에서는 로마 시대의 달력이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다. 두 개의 원으로 그려진 이 달력의 중앙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사람이 있고, 1월에서 12월까지 달마다 농부들이 농사짓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라틴 달력이지만 헬라어로 표기하고 있다. 이 수도원을 꼭 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문이 완전히 닫혔다고 한다. 하나의 텔에서 6,000년 문명사를 훌터 보았다.
2017년 11월 28일 예루살렘에서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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