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 터널을 걷다: 기혼 샘에서부터 실로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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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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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터널을 걷다: 기혼 샘에서부터 실로암까지

다윗은 솔로몬을 후계자로 세울 때 기혼 샘에서 기름부음을 받게 한다(왕상 1:33). 성경에서 처음으로 이곳을 ‘기혼 샘’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참. 창 2:13). 기혼은 ‘세차게 흐르다’(gushing)라는 뜻을 가진 의성어이다. 우리 말로는 ‘펑펑’이 될까? 이 샘물은 천천히 흐르며 매일 2,500여명이 마실 수 있는 물을 공급한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을 확장하기 위하여 이 물길을 기드론 계곡 끝까지 연장하는 공사를 하였고 그 아래에 ‘왕의 정원’을 만들었다(왕하 25:4).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나라가 부강하였으므로 외적의 침범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 기혼 샘 물이 성밖으로 흐르도록 두었다. 솔로몬은 기혼 샘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으므로 샘의 물길을 따라 온갖 나무들과 꽃들을 심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었을 것이다.
히스기야 왕 재위 기간(715-686년)에 예루살렘은 앗시리아 산헤립 대왕의 공격을 직접 받게 되었다(705-701년). 이 때 히스기야와 그의 신하들은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상황을 가정하여 기혼 샘의 물이 성밖으로 흐르지 않고 성안으로 흐르도록 새로운 수로를 만들었다. “어찌하여 앗시리아 왕이 물을 얻게 할까?”(대하 32:2-4). 열왕기자는 히스기야의 터널을 그의 대표적인 치적으로 꼽는다.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권력과 못과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중으로 인도하여 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왕하 20:20).이 당시 토목공사를 맡았던 기술자는 터널이 완성되기 직전의 감격을 비문에 담아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는 이것을 “실로암 비문”이라고 부른다. 이 비문은 히스기야가 직접 쓴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왕의 이름과 왕의 인장이 찍혀 있었을 것이다. 이 비문은 터널 안쪽 약 6미터 지점에 부착되어 있다. 원본은 이스탄불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옛날 드랍시 대학에서 비문학을 공부할 때 이 본문을 주전 8세기의 필체로 읽었다.

“터널이 뚤리게 될 때, 이렇게 뚤리게 되었다. [갱부가] 여전히 도끼(들)로 [돌을 깨고 있을] 때, 서로가 서로를 향하고 있을 때, 여전히 3규빗(약 1.5미터)을 파내어야 했을 때, 한 사람이 그의 동료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바위의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갱부들은 각자 서로를 향하고, 도끼가 도끼를 향하자 물이 흘렀다. 샘물에서 저수지까지 1200규빗을 흘렀다. 갱부의 머리 위에 있는 바위의 높이는 100규빗이었다”.
오늘 이 물길을 따라 걷는다. 30년만에 다시 걷는다. 옛날에도 지금에도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라는 찬송이 절로 나온다. 가끔 낮아서 머리를 부딪히고, 좁아서 어깨가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슬리퍼를 신고 갔는데 한 번은 왼쪽 새끼 발가락이 바위를 찼다. 그래도 기쁨이 밀려온다. 모처럼 환하게 웃는다. 내 속에서 내 존재가 변함을 느낀다. 내 찌끼가 물결에 다 씻겨간 느낌이다. 밖으로 나오니 유대인들이 실로암 샘에서 옷을 훌렁 다 벗고 몸을 씻으며 대속죄일을 준비하기 위한 결례를 행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몸을 씻고 통곡의 벽에 가서 기도할 것이다.

2017.09.29 예루살렘에서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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