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성 안의 옛 수갱 안으로 들어가다
페이지 정보

작성일Date 24-08-30 00:20
본문
다윗 성 안의 옛 수갱 안으로 들어가다
이집트의 한 비문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은 여부스 족속이 주전 2천년대부터 살아온 곳이다(창 14:17-20 참조). 이 성에는 오랜 세월 동안 아모리인들과 힛타이트 사람들이 높은 문화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겔 16:3 참조).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여호수아가 여부스 족속의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승리를 거두었을 때 이 성에는 아직까지 성벽이 없었다고 한다. 여호수아는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에게 승리를 거두긴 하였지만(수 10:1-29) 결국 유다 지파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했다(수 15:63). 다윗 시대에 여부스 족속은 오늘날 우리가 ‘다윗 성’으로 알고 있는 시온 산의 낮은 터에 성을 쌓고 살았다. 그들은 진흙과 돌로 벽을 쌓아서 성벽과 집을 지으면서 도시를 세웠다(casemate). 그들이 이곳에 터전을 세운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성에서 가까운 곳에 많은 물의 원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곳을 기혼 샘이라고 부른다.

다윗은 주전 997년에 예루살렘 성을 차지하면서 이곳을 이스라엘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다윗이 처음 세운 성은 현재 예루살렘 성벽 안에서 볼 때 낮은 지역에 있어서 보잘 것 없는 언덕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원래 예루살렘은 두 개의 깊은 계곡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언덕 위의 도시였다. 다윗 성의 서쪽으로는 타이로피안 계곡(Tyropeaon), 동쪽으로는 기드론 계곡이 깊이 파여 있다. 이곳이 현재 별로 높은 언덕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기드론 계곡 속에 수많은 퇴적층이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윗이 여부스 성을 손쉽게 차지한 것은 역사적으로 오랫 동안 수수께끼였다. 그러다가 영국의 고고학자 찰스 워렌(C. Warren, 1840–1927)은 1867년에 여부스인들이 적군이 성을 포위할 때를 대비하여 기혼 샘에서 흘러오는 물을 긷기 위하여 성벽을 쌓았고 수직 터널을 만든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워렌 수갱’(Warren shaft, 竪坑)이라고 부른다. 우리 말로는 ‘수구’(개역), 혹은 ‘물을 길어 올리는 바위벽’(표준)이라고 하고, 히브리어로는 ‘찌노르’라고 한다. 요압은 이 수갱을 통하여 성 안으로 몰래 잠입하여 성을 차지하였다(삼하 5:8; 대상 11:6). 여부스인들은 수갱은 수직 터널, 수평 터널, 14미터의 높은 수직 갱도, 그리고 급수 터널로 구성되었다고 한다(google, “Warren shaft”).
다윗이 여부스인과 싸울 때 그들에게서 모욕적인 조롱을 받았다.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삼하 5:6). 다윗은 화가나서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미워하고 시온 성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삼하 5:8-9). 그렇지만, 이후에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리를 절었지만(삼하 4:4), 그의 궁궐에서 왕자로 돌보아 주었다(삼하 4:4; 9:6-13). 우리들도 혈기 왕성한 시절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온갖 편견을 갖고 살 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편견과 아집의 껍질을 벗고 연약한 사람들을 감싸는 아량과 도량을 갖기를 소원해 본다.
2017.09.29 예루살렘에서 輕舟 김정우
- 이전글대속죄일을 맞이하는 나라의 사람들 24.08.30
- 다음글히스기야 터널을 걷다: 기혼 샘에서부터 실로암까지 24.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