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기스 성
페이지 정보

작성일Date 24-08-30 00:22
본문
라기스 성
30년만에 라기스 성을 방문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 당시에만 해도 ‘텔 라기스’ 주위는 황폐한 벌판이었는데 이제 주위의 도로들이 잘 정비되어 접근이 쉬워졌다.

멀리서 보아도 성 전체가 위엄차다. 성 안에서는 멀리 헤브론, 베들레헴, 예루살렘을 이어가는 유다 산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역시 라기스이다. 30년 전에 라기스 성으로 들어갈 때는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라기스를 정복하기 위하여 쌓아둔 흙언덕으로 올라갔다. 그 둔덕을 따라 성 안으로 올라갈 때 한 지층에 검붉은 색갈의 흙을 보았다. 당시 고고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라기스 주민들이 산헤립 왕에게 전멸당할 때 흘린 피의 색갈이라고 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맷돌을 보았다. 여인이 성 위에서 적군을 향하여 마지막으로 던진 것이 맷돌이었다.

오늘은 텔 라기스로 들어갈 때 옛적 솔로몬이 만든 성 입구로 들어간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을 방어하기 위하여 북쪽에는 하솔, 중북부에는 므깃도, 중남부 지역에는 게제르를 국고성으로 만들었다(왕상 9:15). 이 당시 라기스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하솔, 므깃도, 라기스 성은 모두 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왼쪽으로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적군이 왼쪽 경사면을 따라 성을 공격하면 오른 편에 방패를 들고 왼편에 창칼을 들고 올라가야 한다. 대부분의 군인들은 왼 편에 방패를 들고 오른 편에 칼과 창을 들고 오기 때문에 공격이 몹시 힘들어진다. 현재 재현된 가설 램프는 정확하게 옛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미가 선지자는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라는 책망을 한다(미 1:13). 라기스는 병거성이요 국고성이었으므로 예루살렘을 지키는 성으로 자존심이 강했다. 라기스는 큰 성이요 마병들이 있는 곳이었다. 최근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따르면 라기스 성 안에는 우물도 있었다. 사실 라기스는 해변 도로(via Maris)에서 예루살렘과 헤브론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옛적에 여호수아도 가나안 정복 전쟁 중 중부 산악 전투를 할 때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 헤브론 왕 호함, 야르뭇 왕 비람, 라기스 왕 야비아, 에글론 왕 드빌”의 동맹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수 10:3). 라기스는 산악 지역으로 올라 올 때 전략적 요충지이다. 그래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이 이스라엘-유다를 공격할 때 라기스로만 올라오게 되어 있다. 앗시리아의 산헤립은 라기스를 먼저 정복하고 히스기야에게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었다(왕하 18:14-17).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모든 성을 정복할 때도 예루살렘 외에 마지막으로 남는 성은 ‘라기스와 아세가’ 뿐이었다(렘 34:7). 성과 도시도 부강하면 교만해지나 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우리의 자랑거리들 때문에 얼마나 교만해 있을까? 교만은 소외를 가져오고, 소외는 분쟁과 다툼을 가져온다. 교만에서 모든 싸움이 시작된다. 우리는 개인적 교만 뿐 아니라 우리 교회, 우리 집안, 우리 민족, 우리 나라, 그리고 우리의 성적, 인종적 우월감과 교만까지도 깊이 회개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살 길이다.
2017.10.03예루살렘에서 輕舟 김정우
- 이전글게제르에서: 실재가 된 이름 24.08.30
- 다음글고대 블레셋의 아스글론 성안을 거닐며 느낀 감흥 24.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