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로만 히브리어를 가리키는 교육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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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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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로만 히브리어를 가리키는 교육 방식

옛날 내가 미국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첫 학기 수업을 들을 때이다(1982년 봄). 나는 고(故) 레이몬드 딜라스 교수에게 아카드어를 수강하였다. 그 때는 영어로 된 아카드어 교재가 없었다. 그래서 웅나드-마투쉬(Ugnad-Matush)가 쓴 아카드어 문법책으로 공부를 하였다. 그 책은 독일어로 쓰여졌다. 영어로 공부하는 첫 수업에 낯선 아카드어를 선택하고 그것도 독일어로 된 문법책으로 공부한 셈이다. 하루는 함무라비 법전을 읽는데 내가 집에서 공부해온 노트를 보고 음역을 하면서 칠판에 적었더니 딜라드 선생님은 거의 화를 내시면서 아카드어로 된 원문을 직접 보고 음역하고 해석을 하라셨다. 내 인생에서 잊혀지지 않는 경험이었다. 서양 교육은 뭔가 절대적 기준을 붙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작년에 은퇴를 하고 올 여름에 히브리대학교의 울판 과정에 결국 등록하였다. 미국, 독일, 불란스, 영국, 중국, 예루살렘 출신의 아랍 청년들이 한 반을 이루었다. 대부분은 유대인들이거나 아랍인들이다. 20여명의 반에 선생님은 두 분이다. 두 분 선생님이 하루 5시간을 거의 반씩 나누어 가르친다. 첫 시간부터 히브리어로만 말하게 한다. 나에겐 현대 히브리어가 문장채로 들리지 않았다. 많은 순간 ‘등신’이 된 기분이다. 이 나이에 살아 있는 언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이 거의 무모하기조차 하다. 그래도 자존심을 접어두고 4주를 마치고 나니 많은 진보를 느낀다. 히브리어를 히브리어로만 가르치는 것은 일차적으로 히브리어에 대한 자존심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렇지만, 외국어는 외국어로만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임상적 경험과 토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히브리어 대학에서는 히브리어를 히브리어로만 가르치는 것이 거의 절대 기준이다. 서양 교육은 뭔가 절대적 기준을 붙들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설렁설렁 살았던 것을 반성하게 된다.
20170829 예루살렘에서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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