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기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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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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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기호인가?
드디어 중간 고사 날이다. 히브리대학에서는 65점을 받아야 패스를 한다. 그런데 65점을 받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문제 마다 점수를 배정해 두고 틀리면 마이너스를 한다. 채점이 엄격하다. 중간 고사인데도 3시간 동안 친다. 지난 몇일 동안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런데 한 페이지로 가득찬 첫 번째 질문의 지문이 해독이 되지 않는다. “SBT’ TMYD BBYT”이다. 모음을 붙여 읽자면 “Sabta’ tamid bebabit”이다. “싸브타가 늘 집에 있다”는 뜻인데, ‘싸브타’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핵심 단어를 모르니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길이 없다. 멍해졌다. 물론 교과서에 있는 지문이 아니다. 뉴욕 타임즈 같은 신문 사설에서 나오는 내용을 히브리로 번역하여 지문과 질문을 만든 것이다. 갑자기 공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일어났다. 그래도 읽고 또 읽어면서 모든 질문에 답을 만들어 제출하였다. 그렇지만 물론 마지막까지 ‘싸브타’가 무엇인지는 몰랐다.
나는 문맥(context)을 통하여 ‘싸바’(여성형)와 ‘싸브타’(남성형)가 보모인줄 알았다. 나중에 집에 와서 사전을 찾아보니 ‘할머니’(싸바)와 ‘할아버지’(싸브타)이다. ‘네헤드’(neched)는 손자, ‘네흐다’(nechda)는 손녀이다. 만약 내가 ‘싸브타’가 할아버지요, ‘네헤드’가 손자라는 것을 알았으면 나는 모든 문제를 너무나 잘 풀었을 것이다. 나는 땅을 쳤다. 성경 히브리어에서는 아버지가 할아버지도 되고 아들이 손자도 된다. 할아버지와 손자에 대한 명사가 없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와 손자에 대한 용어를 몰랐다. 책을 뒤져 보니 교재에서 배운 단어이다. 새 단어들을 머리로만 인식했기 때문에 몸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동일하여도 ‘할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은 언어마다 다르다. 결국 언어는 실체를 표현하는 기호가 아닌가? 기호를 모르면 해석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기호를 모르고 해석을 하는 것은 마치 교통 신호를 모르고 운전하는 것처럼 위험하게 느껴진다.
20170830 예루살렘에서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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