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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우 교수 칼럼·설교

    제네바를 지킨 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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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Date 24-08-2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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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네바를 지킨 베자

        데오도르 베자(Theodore Beza)는 원래 프랑스의 명문가 자제로 태어났다. 오를레앙 대학을 다닐 때 요한 칼뱅의 스승이었던 볼마르(M. Wolmar)에게서 배움을 받았다. 베자는 “그 때가 나의 두 번째 생일이 되었고 그 당시 내가 받은 것과 장차 나의 미래에 받을 모든 좋은 것들의 시작이었다”고 회고하였다. 베자에겐 세상의 모든 축복이 주어졌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29살에 죽을 병이 걸렸다가 나은 후 제네바로 가서 칼뱅을 만났고 이후 평생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종교개혁에 헌신하였다. 프랑스에서 바시(Vassy) 대학살이 일어났을 때(1562.03.01), 베자는 찰스 9세와 왕비를 알현하고 “전하, 타격을 받고 가해를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많은 망치들을 닳아 해지게 한 모루(anvil)임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조언하였다. 
        칼뱅이 죽은 후(1564년 5월) 베자는 제네바에서 칼뱅의 종교개혁을 계승하였다. 어느 날 교황청에서 베자가 로마교회로 돌아오도록 설득하기 위하여 ‘살레의 프란시스’(Fransis of Sales)를 보내었을 때 “저는 만약 제가 바른 길에 있지 않다면 바른 길로 인도해주시길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라고 말했다. 프란시스는 만약 베자가 돌아온다면 로마의 교황께서 그에게 필요한 가구들과 책들을 제공하며 충분한 연금을 줄 것이라고 회유하자, 베자는 프랑스의 피난민들을 돌보기 위하여 팔아버린 책들로 텅 빈 책꽂이를 보여 주면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대답했다. 베자의 제네바는 1602년 12월 21일 사부아 군대의 공격을 받았고 점령직전에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다. 베자는 임종하던 날(1605년 10월 13일) 그의 지인들이 둘러 모인 자리에서 “우리의 도시는 완전히 안전하고 평안한가?”(Is the city in full safety, and quiet?)라고 묻고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C. C. McCrie, “Keeper of the City”, in The Church and the Fine Arts [Harper and Brothers, 1960], 454-56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