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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우 교수 칼럼·설교

    이삭 주어 방앗간을 만든 킴히(Kim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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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Date 24-08-29 23:43

    본문

    이삭 주어 방앗간을 만든 킴히(Kimhi)


       중세 히브리어 문법의 황금 시대를 연 다윗 킴히(David Kimhi, 1160-1235년)는 자신의 인생을 한 마디로 “추수꾼 뒤에서 이삭 줍는 사람”(gleaner after the reaper)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겸손한 말이었습니다. 중세 시대를 통틀어 그만큼 창의적인 문법학자가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어를 언어 자체로 이해하려고 하였고, 아람어와 아랍어가 아니라 후대 히브리어에서 유추를 찾으려고 한 학자였습니다”(촘스키). 그래도 ‘이삭 줍는 사람’이란 이미지 속에 그의 평생의 학문적 자세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중세 히브리어 문법을 이삭 줍듯이 다 긁어 모아서 집대성을 이루었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다”라는 격언이 그에게 어울립니다. 


       히브리어 문법의 효시는 사아디아의 가온(Saadia Gaon, 882/892-942년)이었습니다. 사아디아 이전에도 문법이 있었지만, 문법을 독립적인 학문으로 처음 세운 사람은 사아디아였습니다. 마치 ‘성경신학’의 작업은 수 천년 동안 이루어졌지만,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 세운 사람은 개블러(Johann Philipp Gabler, 1753-1826)인 것과 같습니다.  사아디아는 신학적 해석보다 문법적 해석이 본문의 의미를 밝히는 첫 단초라고 생각하고, 히브리어 첫 사전인 『아르곤』(Argon)을 저술하였습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그의 후계자들과 특히 아브라함 이븐 에즈라(1089–1167)를 통하여 전수되었습니다. 이븐 에즈라는 사아디아에 대하여 “(유대사상에 대한) 온 세계 최고의 대변인”(chief spokesman everywhere)이라고 평했습니다(촘스키). 이븐 에즈라는 사아디아의 글과 사상을 세계화 시킨 셈입니다.


       사아디아 가온의 후계자들 가운데 므나헴(Menahem ben Saruk, 10세기)이 있었습니다. 므나헴은 처음으로 히브리어가 ‘세 자음 어근’(trilateral)으로 구성 되었음을 예측하였습니다. 므나헴의 제자가 바로 하유즈(Yehuda Hayyuj, 약 1,000년 경)였습니다. 그는 스승의 가설인 ‘세 자음 어근론’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하유즈 이전의 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를 ‘한 자음 어근’ 혹은 ‘두 자음 어근’으로 분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페-눈 동사의 동화 작용과 그 안에 있는 다게쉬의 의의와 약동사의 성격을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유즈의 제자 가운데 사무엘 하-나기드(Samuel ha-Nagid, 993-1056년)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스승인 하유즈의 문법을 비난하는 이브 야나흐(Ibn Janah)와 격렬한 논쟁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푸알 형이 칼 수동형인 경우에 대해 논쟁하였고, 그 때 시작된 칼 수동형의 존재가 현대 문법에서 정밀하게 재구성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윗 킴히는 그의 아버지인 요셉 킴히(Joseph Kimhi, 1105-1170년)에게서 히브리어 문법의 유산을 물러 받았습니다. 요셉 킴히는 다윗이 10살 때 죽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가르침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요셉 킴히는 원래 남부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박해를 피하여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으로 피난간 곳에서 1160년에 중세 최고의 주석가인 이븐 에즈라(Abraham ibn Ezra)를 만났습니다(Waltke-O’Connor). 그들은 문법과 주해에 대해 활기 넘치는 대화와 토론을 하였을 것입니다.


       다윗 킴히가 살던 시대는 아랍어가 만국 공용어(lingua fraca)요 과학과 학문의 언어였습니다. 그래서 사아디아의 문법책도 아랍어로 쓰여졌고, 하유즈와 이븐 야나흐의 문법책도 아랍어로 쓰여졌습니다. 그런데 킴히 시대에 이 모든 책들이 히브리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킴히는 아랍어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국어로 번역된 책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말로 모국어의 문법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킴히는 사아디아의 가온(Saadia Gaon, 882/892-942년)으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아버지 시대(1105-1170년)까지 250여년 동안 발전해 온 히브리어 문법을 집대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이삭 줍는 사람’으로 불렀습니다만, 제가 볼 때는 ‘방앗간을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킴히 이후의 유대교 성경해석과 종교개혁자들의 성경해석은 킴히의 방앗간에서 만든 양식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뜻하는 ‘가루’(flour)처럼 자신을 부수어서 인류의 정신 양식을 남겨 주었습니다. 킴히의 문법책의 모든 내용들은 20세기 중엽에 다시 가루처럼 부수어져 현대 문법체계인 음성론, 품사론, 구문론으로 모두 세분화 되어 영어로 번역되고 편집되었습니다(Willian Chomsky, David Kimhi’s Hebrew Grammar, Mikhol, Systematically Presented and Critically Annotate, Published for The Dropsie College for Hebrew and Cognate Learning, by Bloch Publishing Company, 1952). 학문이란 “선대의 추수꾼들을 뒤따라가면 이삭을 줍는 여정”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