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글리는 왜 신학교를 세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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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Date 24-08-29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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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는 왜 신학교를 세웠나?
2009년 12월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Friburg)에서 BHS와 BHQ 편집장인 아드리안 셍크(Adrian Schenke) 교수님을 비롯한 독일성서공회 원문연구위원들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하였다. 주일 아침이 되어 온 도시에 교회의 종소리들이 우렁차게 또한 은은하게 함께 울리는 것을 들으면서 <그로스뮌스터>(Grossmuenster) 교회당에 예배를 드리러 갔다. 예배를 마친 후 그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가 바로 츠빙글리(Huldrych Zwingli)가 세운 교회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당과 대각선으로 교회당만큼 크고 반듯하게 지어진 건물이 츠빙글리가 종교개혁의 불씨를 스위스 뿐 아니라 온 유럽에 지피기 위하여 세운 신학교임을 알게 되었다. 교회당과 신학교가 함께 아우러져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내게 감동과 충격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츠빙글리의 신학교에는 당대 최고의 도서관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그 때 예배 후에 우연히 처음으로 만난 정미현 박사에게서 듣게 되었다. 그 때 정박사는 나에게 『츠빙글리의 종교개혁 이야기-취리히 그로스뮌스터의 츠빙글리 문을 중심으로 』라는 책을 선물로 주었다(정미현 역, 한국장로교출판사, 2002). 오늘 그 책을 열어보니 츠빙글리의 신학교 이야기가 좀 더 자세히 나온다. 츠빙글리는 1525년 신학교를 세우고 ‘프로페짜이’(Prophezei)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즉 그가 세운 신학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증거하여 신자들이 삶을 바꾸고 교회, 민족, 국가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잘못을 바로 잡은 예언자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츠빙글리는 가장 기초적인 작업으로서 성경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히브리어와 헬라를 가르치는 교수들을 초빙하였다. 펠리카누스(Conradus Pellicanus)는 바로 이 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가르쳤다. 츠빙글리는 루터와 칼빈처럼 성경원문 연구에 몰두하였고, 『취리히 성서』를 스위스 독일어로 번역하였다(Froschauer Bible이라고도 한다). 그가 번역한 구약성경(1531년)은 루터의 구약 번역(1534년)보다 삼 년 앞섰다. 그는 죽기 몇 달 전에 첫 인쇄본을 보았다. 『취리히 성서』안에는 홀바인의 그림 200여장이 담겨 있으며 당대 인쇄본의 걸작이 되었다. 그의 서문은 “이 성서를 열심히 읽기를 권면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디든 임하고 확장되며 세상이 더 좋아지고 경건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로 매듭짓는다.
나는 스스로 물어 본다. “우리는 왜 신학교를 세웠는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한국의 신학교들이 성경 원문 연구에 더욱 헌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시대, 온 열방에 증거하는 목회자, 신학자, 선교사, 지도자들을 길러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p.s. 정미현 박사는 츠빙글리의 책을 한 권 더 번역하였다. 마르틴 하아스 『훌드리히 츠빙글리』(한국기독교장로회신학연구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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