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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우 교수 칼럼·설교

    악으로 악을 갚지 않다: 마온과 갈멜에서 만난 나발과 아비가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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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Date 24-08-30 00:48

    본문

    악으로 악을 갚지 않다: 마온과 갈멜에서 만난 나발과 아비가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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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 마온에서 바라본 갈멜 동네


        우리는 엔게디에서 다시 마온 광야로 돌아왔다(삼상 25:1, LXX; MT, ‘바란 광야’). 마온과 바로 그 이웃한 동네인 갈멜은 기후와 토질이 좋아서 목축과 농사가 잘 되는 곳이었다. ‘갈멜’이란 말이 ‘과수원’을 뜻하듯이 이곳에는 올리브 나무, 포도 나무, 밀 농사가 잘 되었다. 이곳에는 오래된 샘이 있어서 온 동네 사람들과 짐승들과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넉넉히 마시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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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의 사진은 모두 '텔 갈멜'



        마온에 살면서 갈멜에서 사업을 하는 큰 부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나발이었다(2절). 그는 여호수아의 동지였던 “갈렙” 족속이었다(3절; 삿 1:20). 그는 고귀한 가문 출신에 큰 부자였지만(2절), 그의 성품은 완고하고 무례하며, 잔혹하고 인색하며, 막되먹은 욕쟁이에다 개차반이었다. 한 마디로 그의 이름 ‘나발’이 뜻하는 바와 같이 ‘어리석은 자’(바보)였다. 그래도 결혼은 잘해서 총명하고 아름다우며, 섬세하고 우아하며, 민첩하고 겸손한 아비가엘을 아내로 얻었다(3절). 세상에는 가끔 이런 안타까운 조합도 있다.


        초여름 양털을 깎는 축제의 날이 되어 나는 나의 동지들을 나발에게 보내어 따뜻한 문안을 드리고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기를 부탁하였다(8절). 우리는 긴 세월 동안 도망자로 살아 왔기 때문에 생존을 위하여 어떤 일이든지 해야 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마온 광야와 예시몬 광야에 있는 나발의 양떼들과 재산을 온갖 약탈자들과 짐승들로부터 보호해주었다. 사실 우리는 밤이나 낮이나 그의 “담이 되었다”(16절). 물론 어떤 대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호의에 대한 어떤 보답을 기대한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큰 선물이나 특별한 선물을 구한 것도 아니었고, 우리가 먹고 마실 수 있는 생필품을 구하였다. 그렇지만 나발은 나를 심하게 모욕하며 빈손으로 돌려 보내었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10절). 그는 내게 호의를 거절한 정도가 아니고 나 자신을 부정하였다. 그는 나를 “나의 주인 사울에게서 도망친 종”으로 비하하였다. 그리고 “어찌 내 떡과 내 물(LXX, 내 포도주)과 내 양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며 빈정되었다(11절). 나는 순식 간에 “근본도 없는 놈”이 되었다. 그 말을 듣던 순간 그 동안 억눌러 왔던 나의 모든 분노가 폭발하였다. 나는 원래 조롱과 모욕에 과민했고 취약했다(삼상 17:26하, 36, 45). 나는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받았으므로 드디어 나발의 집안에 헤렘을 선포하고 내 칼을 뽑았다(13, 22절).


        우리가 마온 광야에서 마온 마을로 가고 있을 때 이 소식을 들은 아비가엘은 위기를 직감하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는 우리가 요청한 “빵, 포도주, 양고기” 만이 아니라(11절), “볶은 곡식, 건포도, 무화과 뭉치와 갓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를 싸들고 나를 맞이하러 나왔다. 아비가엘은 나를 만날 지점을 선택하고 기다렸다. 그는 내가 그를 볼 수 없는 “산 굽이”(산 호젓한 곳, 그늘 진 곳, beseter)에서 나를 기다렸다(20절). 우리가 밝은 곳에서 그 산 굽이를 돌아 그늘 진 곳으로 들어가자마자 아비가엘은 나를 “보았다, 서둘렀다, (나귀에서) 내렸다, 엎드렸다, 그리고 절했다”(23절). 그는 나의 “발 앞에 넘어졌다, 쓰러졌다”(24절상). 그리고 “아 제발, 저는, 내 주여, 이 죄를…” 더듬거리며 용서를 구했다(개역 24절, “내 주여,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소서”).


         나는 아비가엘을 보는 순간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25:3=16:12). 사실 나는 그 동안 사울 왕의 “악을 선으로 갚았다”(24:17). 그런데 나발은 나의 “선을 악으로 갚았다”(25:21). 그래서 나는 그의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하였다”(13, 17절). 아비가엘은 나에게 제발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간청하였다(30-31절). 아비가엘의 지혜로운 말을 듣고 내 마음이 녹았다. 나는 아비가엘을 내게 보내어 주신 주님을 찬양하였다(32절). 열흘쯤 지난 후 주님께서 나발의 악을 친히 갚으셨다(39절). 만약 아비가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작은 바보에게 큰 바보짓을 하였을 것이다. 만약 아비가엘이 나를 막지 않았다면 언젠가 내 마음이 고요해졌을 때 나는 자책하며 크게 후회할 뻔 했다. 나는 자주 “주님은 정말 역사에 개입하시는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사실 나는 내 인생에 개입하시는 주님을 오늘도 경험하고 있다.


    2018년 4월 15일 輕舟 김정우
    (*갈멜 지역에 대한 사진은 이강근 박사께서 제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