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악을 선으로 갚다: 다시 하길라 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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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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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악을 선으로 갚다: 다시 하길라 산에서
나는 얼마전 하길라 산에서 “새 장 안의 새처럼” 사울 왕에게 갇혔었다(삼상 23:19, 26). 이번에는 내가 사울 왕을 “새 장 안의 새처럼” 가두었다. 완전한 운명 역전이다. 내가 잡은 이 봉황새를 어떻게 할까?
십(Zip) 사람들은 정말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다. 내가 그들을 처음 만난 것은 그일라를 블레셋에게서 구한 후 십 광야로 도피하였을 때였다(삼상 23:14). 그들은 기브아까지 올라가서 사울 왕에게 우리의 동선과 규모와 심지어 은신하고 있는 굴들의 위치까지 보고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발자국까지”(regel) 세밀하게 살폈다(23:22). 마온 광야에 있을 때 우리는 “새 장 안의 새처럼” 갇혔고 셀라 하마느곳에서 거의 죽을 뻔 하였다(26-28절). 우리가 엔게디 광야의 “들염소 바위” 곁에 있을 때 십 사람들(24:1, “어떤 사람들”)은 다시 사울에게 우리의 은신처를 알려 주었다. 이제 그들은 다시 한 번 사울에게 올라가 우리가 십 광야의 하길라 산에 숨은 것을 일러 바쳤다(26:1). 그들은 불독처럼 한 번 물면 결코 놓치 않았다. “주님,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소서”(시 54:7).

십 광야 (1)

십 광야 (2)
사울 왕은 정예부대 3,000명을 데리고 “하길라 산 길 가에 진쳤고”(26:3), 우리는 그 건너편 언덕 위에 있었다(13절). 우리 둘 사이는 직선 거리로 100미터도 채 안 되지만 중간에 깊이 파인 계곡으로 서로 만날 가능성은 낮았다. 이번에 나는 도망만 치지 않고 사울 왕의 진영 속으로 들어가 직접 상황을 살펴보고 싶었다. 마침 달도 밝아 나는 아비새와 함께 깊은 협곡을 타고 내려가서 사울 왕을 직접 보고자 하였다. 사울 왕은 광야에서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 가”에 진치고 있었으므로 비교적 안전한 곳에 있었다(3절). 그의 장막 가장자리에는 마차들이 방어벽을 이루고, 그 안으로는 병사들이 사울을 겹겹이 둘러 싸고, 정 중앙에 사울의 장막이 있었다. 그 바로 곁에는 이스라엘 최고의 전략가요 용사인 아브넬의 장막이 있고 왕의 친위대가 왕과 아브넬을 둘러 싸고 있었다(7절).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왕과 아브넬과 친위대와 3,000명의 군인들이 한 명도 빠짐 없이 모두 곤하게 잠자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뜨거운 광야 길을 걸어오느라 고단하였겠지만 사실은 그냥 잠든 것이 아니라, 잠에서 깨어날 수가 없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하와를 창조하실 때의 아담처럼(창 2:21), 아브라함이 그의 후손들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처럼(창 15:12), 모두 “깊은 잠”((tardema)에 빠져 있었다(12절). 사울 왕 가까이 가서 그의 얼굴을 보니 불안과 두려움과 고뇌로 가득하였다. 그런데 “그의 창이 그의 머리 곁 땅에 꽂혀 있었다”(7절). 그것은 마치 사울과 그의 영광이 땅에 묻혀 버린 모습이었다. 나는 저 창에 두 번이나 찔려 죽을 뻔 하였는데, 이제는 저 창이 결코 나를 찌르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유대 광야 협곡(마르 사바 1)

유대 광야 협곡(마르 사바 2)
바로 그 때 아비새가 내 귀에 속삭였다. “제가 사울의 창으로 당신의 원수 사울을 단번에 찔러 원수를 갚을까요?” 아비새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주신 “은혜의 기회”라고 속삭였다. 나도 강력한 유혹을 느꼈다. 나는 아비새에게서 나의 어두운 모습을 보았다. 아비새는 나의 또 다른 자아였다(alter ego). 사울 왕은 지난번 엔게디 동굴에서 용변을 볼 때보다 훨씬 더 취약한 상태에 있었다(삼상 24:3). 아브넬의 솜씨라면 사울 왕은 소리도 없이, 고통도 없이, 단숨에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opportunity)가 “허락”(permission)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F. B. Meyer). 나에게 자유가 있지만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참조, 고전 6:12). 나는 내가 아무리 고달파도 “내 원수를 내 손으로 갚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살아 왔다. 하물며 주님께서 친히 기름부으신 왕이겠는가(삼상 24:6 [히 7절]; 26:9, 11)! 사실 “주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와 주님 사이에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나는 “사울의 창과 물병 만을 가지고 몰래 나왔다”(26:12). 이 둘은 내가 사울의 진 속에 들어 왔음을 가장 확실하게 증거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새벽이 되어 우리가 사울의 진에서 빠져 나올 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였다(13절).
나는 건너편 언덕에서 아브넬을 불렀다. 사울 왕은 내 목소리를 듣고 깨어나 나를 “내 아들 다윗아”라고 불렀다(17절). 그러나 나는 깊은 거리감 때문에 사울 왕을 더 이상 “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고(24:11), “내 주”라고 불렀다(17, 18, 19절). 나는 사울 왕이 나를 쫓는 것은 마치 메추라기 사냥 같고, 벼룩을 찾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씀드렸다(20절). 사울 왕은 내가 그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은 것에 대해 감동하며 자신의 “어리석음”과 “잘못”을 고백하였다(21절). 나는 사울 왕에게 그의 창과 물병을 돌려 보내었다(22절). 사울의 창은 사울의 왕권을 상징하므로, 내가 사울의 왕권을 탈취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명백하게 증거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하였다.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24절). 사울은 마지막으로 나를 축복하였다.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25절). 우리는 헤어져 각자 자기 길로 갔다(25절하).
2018년 5월 15일 다시 예루살렘에서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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