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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우 교수 칼럼·설교

    아벡에서 시글락으로 돌아오다: 지옥의 길에서 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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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Date 24-08-30 00:50

    본문

    아벡에서 시글락으로 돌아오다: 지옥의 길에서 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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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벡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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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벡의 성터  


         우리가 시글락에 일년 사개월 동안 머물고 있을 때 사울의 용사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게로 왔다(대상 12:1-18). 그들 중에는 사울과 같은 베냐민 지파의 빼어난 용사들이 많았고 심지어 사울의 고향 기브아 출신의 용사들도 있었다(1-3). 또한 요단 동편의 갓 지파 용사들과(8-15) 유다 지파의 용사들도 내게로 왔다(16-18). 사실상 사울의 군대가 무너지고 있었던 셈이다. 블레셋의 왕 아기스는 사울의 왕국이 무너지는 상황을 정확하게 읽고 드디어 진격 명령을 내렸다. 그는 당대 최고의 전략가로서 블레셋이 더 이상 지중해 해변 평야 지대에만 머물 수 없고 이스르엘 평원을 지배하여 벳산 성을 차지하고 암몬으로 올라가 왕의 대로(King’s Highway)까지 장악하여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로 잇는 무역로를 확보하려고 하였다. 아기스는 블레셋의 대군을 모아 아벡에 진쳤고 사울의 군대는 이스르엘 평야의 샘물 곁에 진쳤다”(삼상 29:1). 아기스는 나를 깊이 신뢰하였으므로 나를 그의 머리 지키는 자”(표준, ‘경호대장’)로 삼고 그와 함께 출전하도록 불렀다(2). 그렇지만 블레셋의 다른 도시국가 방백들(seren)은 분노하면서 내가 함께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된다며 돌려 보내라고 하였다(4). 그들은 나와 사울은 화해할 수 없는 사이이지만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블레셋을 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5). 아기스 왕은 못내 아쉬워 하며 나를 시글락으로 다시 돌려 보내었다. 아기스는 정말 나를 신뢰하였고 내가 그에게 참으로 선하였음을 증거하여 주었다(6-9). 사실 우리 사이에는 깊은 인간적 교감이 있었다. 나는 짐짓 화나고 섭섭한체 하였다(8). 아기스는 나에게 다음날 새벽에 떠나도록 허락하였다(10).

    그 때 나는 새가 그물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맛보았다( 91:3). 내가 아기스와 함께 이스라엘을 치는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다면, “나는 정말 이스라엘 군대와 싸워야 하는가? 요나단과 사울과 싸워야 하는가? 만약 요나단이 위급함을 보게 된다면, 나는 다시 블레셋과 싸워야 하는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시글락에 있는 우리의 가족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온갖 걱정 가운데 걸음마다 쉬지 않고 기도하며 사흘 길을 걸었는데, 블레셋 방백들은 나에 대한 시기심과 의심의 칼로 나를 옭아 맨 그물을 순식 간에 찢어 버리고 올가미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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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군 시대의 성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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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장관의 터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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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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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콘 강의 수원  


          시글락으로 돌아오는 사흘 길은 얼마나 가벼웠는지 우리는 찬송하며 돌아 왔다. 아벡으로 가던 사흘 길은 지옥 길이었는데 돌아오던 사흘 길을 천국 길이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시글락으로 돌아 왔을 때, 시글락은 불타 재가 되었다(삼상 29:1-2). 그러나 죽은 시체가 하나도 없었으므로 우리 식구들이 모두 살아 있음을 직감하였다. 그러나 누가 그들을 데려 갔는가? 어디로 갔는가? 여인들은 겁탈을 당하지는 않았는가? 우리의 군인들은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 높여 울었다”(4). 그들은 분노하였고 저마다 아들딸들을 잃고 마음이 아파서 나를 돌로 치자고 말하고 있었다”(6절상). 바로 그 순간 나는 주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였다”(6절하).

         나는 그 동안 아기스의 신하로 이중생활을 하며 내 양심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기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 동료들이 돌을 들어 내게 던지려던 순간 갑자기 내 믿음이 깨어나며 하나님의 품 안으로 바로 뛰어 들어갔다. 그 순간 내면의 힘과 용기가 솟아나며 내 본래의 모습이 돌아왔다. 나는 내 인생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의 길로 돌아왔다. 나의 마지막 힘은 믿음에 있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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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벡(Aphek, Antipatris)은 샤론 평야(Sharon Plain)의 남쪽에 있으며 야르콘 강의 수원이 있는 곳이다. 시글락에서 약 80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블레셋 군대는 이스라엘과 가진 두 번의 중요한 전쟁 때 이곳을 기지로 사용했다(삼상 4:1; 29:1). 옛적 이집트 제 18왕조의 투트모스 3세(Menkheperre, 주전 1468-1436년)는 가나안과 시리아를 침공하여 영토를 확장할 때, 가사(Gaza)를 떠나 아스돗, 아벡을 거쳐 샤론 평야에 있는 야함(Yaham, Khirbet Yemma)을 거처 므깃도로 진군하였다. 가사에서 야함까지는 120킬로로서 약 11, 12일이 걸렸다. 신약 시대의 ‘안디바드리’(Antipatris)로 불렸다(행 23:31). 


    2018.05.19 輕舟 김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