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옷을 찢다: 시글락에서 사울 왕의 죽음 소식을 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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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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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옷을 찢다: 시글락에서 사울 왕의 죽음 소식을 듣고서
나는 브솔 시내에서 시글락으로 돌아 왔다(시글락은 오늘날 아랍어로 Tell esh-Shariah, 히브리어로 Tel Sera’이다, Oren, BA 45, 1982).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되던 아침에 길보아 전쟁터의 사울의 진영에서 한 사람이 내게 왔다(삼하 1:1). 그의 옷은 찢어지고 머리는 먼지와 흙투성이었다(2절). 나는 사실 확인을 위하여 그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다”고 하였다(3절).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군인들이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다”고 하였다(4절).
충격적인 소식에 “너는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어떻게 아느냐?”(5절)고 물었더니, 그는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갔는데” 사울 왕이 블레셋 군대의 병거들과 마병들의 추격을 가까스로 피하고 있다가(6절), 나를 보고 “누구냐?”라고 묻기에(7절) “아말렉인”이라고 하였더니(8절), 자신이 고통 중에 있으므로 “내 곁에 서서 죽여달라”고 부탁하기에(9절), “다시 일어나 사실 것 같지 않아 다가 가서 그의 목숨을 끊었다”(10절상, 공동)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울을 죽인 증거로 “왕관과 팔찌”를 내게 바쳤다(10절하).

시글락 벌판


사울의 마지막 순간과 그의 죽음에 대한 아말렉인의 상세한 보고에는 미심쩍은 부분들이 많았다. 그가 전쟁이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던 길보아 산에 “우연히” 올라간 것이나, 블레셋 군인들이 사울을 추격하는 순간 그가 사울 곁에 있다가 사울의 부탁을 받고 죽이게 된 상황은 믿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보면 사울 왕은 이 세상을 떠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그 순간 “내 옷을 찢었고 나와 함께 그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도 옷을 찢었다”(11절). 우리 문화에서 훌륭한 지도자의 죽음 소식을 듣는 순간 입고 있던 옷을 찢는 것은 우리의 가슴을 찢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찢는 아픔을 상징하는 행위였다. 그날 우리는 하루 종일 슬피 울며 금식하였다(12절).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더 그가 아말렉인이란 사실을 확인하고(13절),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을 죽이기를 두려워 하지 않은 죄를 물어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다(14-16절). 나는 결코 내 원수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나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의리와 용맹과 충성심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삼하 2:12-13). 그들은 블레셋 군대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박아 달아두고” 승리를 자축하며 힘을 과시하고 있을 때(삼상 31:10), 요단 동편의 길르앗에서 벧산까지 밤새도록 달려와서 목숨을 걸고 블레셋 군대와 싸워 시체를 수습하여 그들의 고향 땅에서 화장하고 장사하고 “칠일 동안 금식하였다”고 하였다. 그들은 옛적에 암몬 왕 나하스가 성을 에워싸고 잔혹하고 비참하게 항복을 요구하였을 때 사울 왕이 그들을 구원하여 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한 것이었다(삼상 11:1-11). 사울의 기브아 사람들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 사이에는 사사시대 때부터 특별한 친인척 관계가 있었다(삿 21:14). 나는 그들의 고귀한 헌신을 치하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였다(삼하 2:4하-7절). 다시 한번 내가 사울 왕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음을 사울의 집 뿐 아니라 요단강 동편 지역과 온 이스라엘에 알렸다.
2018.06.09 輕舟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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