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밭”이 된 연못가: 기브온에서 형제들의 싸움(삼하 2: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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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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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밭”이 된 연못가: 기브온에서 형제들의 싸움(삼하 2:12-32)
사울이 죽은 후 군사령관이던 아브넬은 요단 강 동편 얍복 강가의 마하나임(창 32:2)으로 가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다(삼하 2:8-9). 이스보셋의 원래 이름은 에스바알 즉, “바알의 사람”이었으나(대상 8:33; 9:30), 후대 성경저자는 “바알”이라는 명칭을 피하기 위하여 “수치의 사람”이라는 “이스보셋”으로 바꾸어졌다. 이스보셋이 “두 해 동안 왕위에 있었다”는 평가를 보면, 첫 5년 동안은 무너진 나라를 추스리느라 세월을 보낸 것 같다(10절). 어쨌던 사울의 전사 이후에 이스라엘은 사실상 남북으로 나누어졌고, 두 나라 사이에는 서로 밀고 당기는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북의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싸움이 전혀 예기치 않게 벌어졌다.

기브온으로 가는 우물길
아브넬은 왕의 친위대를 이끌고 기브온까지 내려오자, 요압은 저지할 필요를 느꼈다. 기브온은 원래 베냐민 지파의 땅이었고, 사울의 왕도(王都)인 기브아에서 북쪽으로 몹시 가까이 있었고,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브온 사람들은 원래 가나안 족속의 한 부족으로서(창 10:17; 15:21; 수 9:7) 이스라엘의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산지에 왕의 도성처럼 큰 성읍을 세웠다(수 10:2). 그리고 성 안에는 긴 수로에서 끌어온 큰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을 사이에 두고 요압의 용사들은 남쪽에, 아브넬의 용사들은 북쪽에 앉았다(13절). 아브넬은 당대 이스라엘 최고의 전략가로서 사울과 함께 평생 야전에서 싸워온 노련한 장군이었고, 요압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된 이후 유다의 군사령관이 된 젊고 패기만만한 장군이었다. 늘 자신감에 넘치던 아브넬은 요압을 한 수 아래로 보고 갑자기 엉뚱하게도 “검투사 놀이”를 제안하였다(14절). 용사들은 처음에는 토나먼트처럼 대표선수들이 한 명씩 나와 서로 칼 놀이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규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두 부대에서 12명의 엘리트 용사들을 선발하여 서로 “머리털을 잡고 허리에서 칼을 동시에 뽑아서 상대방을 찌르는 게임”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16절). 각각 12명을 뽑은 것은 이스라엘 12 지파를 상징하기 위함이었다. 즉, 누가 이스라엘의 12 지파를 대표하느냐 하는 게임이 되었다. 12명의 용사들은 당대 최고의 정예부대 소속이었으므로 자존심을 걸고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는 검술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심판관의 “찔러”라는 구령과 함께 24 용사들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자신의 칼을 뽑았고, 찔렀고, 쓰러졌고, 죽었다. 웃자고 시작한 게임이 참혹한 죽음을 가져왔고, 기브온의 연못은 “칼밭”(Flint’s Field, 헬갓 핫수림)이 되었다(삼하 2:16). 결국 천진난만하게 시작한 게임은 격렬한 전투로 이어졌고 아브넬의 군대는 요압의 군대에 패배하여 후퇴하게 되었다.




수로 안
요압은 다윗의 누이인 스루야의 맏아들이었고, 아비새와 아사헬이라는 동생이 있었다(대상 2:16). 스루야의 세아들들은 탁월한 용사들이었지만 성격적으로는 모두 격정적이고 충동적이며 야심적이었다. 특히 아사헬은 들노루처럼 발이 빨랐다(2:18). 그는 아브넬을 노려 아브넬 만을 추격하였다. 아브넬이 뒤를 돌아보니 아사헬이 그를 추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20절). 아브넬은 아사헬을 보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아사헬아 너는 나를 추격하느냐?”고 물었다. 아사헬은 “내가 추격한다”고 대답했다. 아브넬은 다시 한번 더 “너는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가서 청년 하나를 붙잡아 (죽이고) 그의 군복을 빼앗으라”고 말했으나 아사헬은 듣지 않았다(21절). 아브넬은 다시 한번 “너는 나 쫓기를 그치라 내가 너를 쳐서 땅에 엎드러지게 할 까닭이 무엇이냐 그렇게 하면 내가 어떻게 네 형 요압을 대면하겠느냐”고 부탁했지만, 아사헬은 듣지 않았다(22절). 결국 아사헬이 칼을 뽑아 아브넬을 죽일 수 있는 거리에까지 왔을 때 아브넬은 갑자기 달음박질을 멈추고 그의 창끝을 아사헬의 복부에 두자 아브넬의 창이 아사헬의 “등을 꿰뚫고 나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23절).
“요압과 아비새가 아브넬의 뒤를 쫓아 기브온 거친 땅의 길 가 기아 맞은쪽 암마 산에 이를 때에 해가 졌고 베냐민 족속은 함께 모여 아브넬을 따라 한 무리를 이루고 작은 산 꼭대기에 섰더라”(24-25절). “암마”는 “수로”(canal)를, “기아”는 “분출함”(gushing)을 뜻하므로 이곳은 기브온의 연못과 이어진 수로 시스템이 시작하는 곳이었다. 아브넬은 대열을 정비하고 싸울 태세를 갖춘 후에 요압에게 더 이상의 추격을 그만두도록 간곡하게 부탁하였다(25-26절). 요압은 그의 동생 아비새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아브넬의 요청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싸움을 다 마치고 보니 아브넬은 360명의 용사를, 요압은 20명의 용사를 잃었다(30-31절). 그것은 장차 “다윗 집안은 점점 더 강해지고, 사울 집안은 점점 더 약해지는” 징조였다(3:1).


기브온 우물에서 본 기브온 산당(나비사무엘)
역사에서 24명의 용사들이 서로의 머리 털을 붙잡고 칼을 뽑아 찌르는 싸움은 동서고금에 없었으므로, 여기의 싸움은 장차 남북이 서로를 적대시하며 무모하고 참혹하게 싸울 것에 대한 상징적인 장면처럼 보인다. 이것은 “시민 전쟁을 아름답게 양식화한 묘사”이거나(Barron, 2 Samuel), “내러티브를 장식하고(stylized) 예식으로(ritualized) 만든 작품”이거나(Polzin, David & Deuteronomist), 혹은 “미래 이스라엘의 조짐”일 수 있다(McCarter, 2 Samuel). 원래 이스라엘의 남북 왕국은 민족, 언어, 종교, 문화가 동일한 형제요 친척이요 동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머리”가 되기 위하여 상대방의 “머리털”을 붙잡고 먼저 옆구리를 찔러 죽이는 역사를 반복하였다. 그들의 싸움은 정의나 평화를 위함이 아니었다. 승자도 영광스러울 수 없는 전쟁이었다. 결국 싸움은 싸움을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고 분열은 분열을 낳는 역사를 반복하였다. 결국 둘 다 망했다. 고뇌에 가득찬 아브넬의 통렬한 질문은 예언이 되었다. “칼이 영원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언제 무리에게 그의 형제 쫓기를 그치라 명령하겠느냐?”(삼하 2:26)
“형제가 형제와 싸워서는 안된다. 서로 괴롭혀도 잡아먹어려고 해도 안된다”
(Cowper, in Polzin, David & Deuter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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