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형제가 형제를 죽이다: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다(삼하 3: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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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Date 24-08-30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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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형제가 형제를 죽이다: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다
(삼하 3:31-39)

헤브론 성전

전쟁의 상흔들
나는 내 인생에 긴 쉼표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헤브론에서 남 유다의 왕이 되었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남북통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우리 나라의 역사를 능동적으로 열어가기보다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통일을 향한 역사가 스스로 펼쳐지도록 기다리기로 하였다. 다만 헤브론에서 나의 집안을 두루 보살피며 여섯 아내에게서 여섯 아들을 낳고 기르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삼하 3:2-5). 그러던 어느 날 사울 왕의 군대장관이었고 현재 북이스라엘의 사실상 실권자인 “넬의 아들 아브넬”이 사신들을 보내어 그와 언약을 맺고 이제 남북통일을 함께 이루어 보자는 뜻밖의 제안을 하였다(삼하 3:12). 나는 지난 7여년동안 “피흘림이 없는 평화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며 기다려 왔으므로 드디어 때가 왔다고 믿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만 나의 첫 아내 미갈을 내게 먼저 보내어 주어야 한다는 조건만 달았다(13절). 내가 “사울의 딸 미갈”을 요구한 것은 그에 대한 사랑보다는 사실은 나의 차가운 정치적 계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현재 미갈의 남편이 된 “발디엘”은 “바후림까지 울면서 미갈과 함께 왔다”고 한다(16절). 그의 미갈에 대한 순정은 나의 냉정과 늘 대비되어 이야기 되었다. 아브넬은 사실상의 왕권을 갖고 있었으므로 북이스라엘의 장로들 뿐만 아니라 “사울의 베냐민 지파” 지도자들에게 내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할 역사적 명분과 현실적 필요성을 말하며 설득하는데 성공하였다(17-19절). 아브넬이 20명의 부하들과 함께 헤브론으로 왔을 때 나는 그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고, 아브넬과 “평화의 언약”을 맺었다(참. 21절, ‘샬롬’).
아브넬이 “평안히”(beshalom) 헤브론을 떠났을 때(21, 22절), 전쟁터에 나갔던 요압이 돌아와서 나와 아브넬 사이에 맺은 언약을 알게 되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그는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나에게 화를 내며 아브넬을 “야비한 스파이”로 몰아붙였다(24-25절). 내가 볼 때 아브넬은 속내를 숨기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교활한 인물은 아니었다. 물론 아브넬이 “사울의 첩 리스바”를 취한 것만 보아도 그는 사실상 왕처럼 행세하고 싶은 권력 욕망이 강한 인물이었다(6-11절). 그렇지만 그는 통일 이스라엘을 만들 수 있는 정치적, 군사적 역량을 갖춘 “큰 인물”이었다(38절) 그 때 요압은 아브넬을 시기했고 만약 아브넬의 계획대로 통일이 된다면 자신이 이인자로 밀려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깊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아브넬을 죽이고 우리의 평화 통일 노력을 무산시킬 것까지는 상상조차하지 못하였다.

아브넬의 무덤

후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요압은 나를 만난 직후 전령들을 보내어 아브넬을 다시 헤브론으로 불렀다. 아브넬은 헤브론 근처의 “시라 우물 가에” 있었다(26절). 아브넬과 요압은 묘하게도 “우물 가에서” 운명적인 조우(遭遇)를 한다(삼하 2:13). 아브넬이 헤브론 성문으로 들어오자 요압은 마치 오랜 전우를 만나듯이 아브넬의 손을 붙잡고 “단둘이서만 할 이야기라도 있는 듯이 속여”(공동개역) 큰 성문 안의 후미진 곳으로 들어갔다(27절). 그는 분명히 아브넬을 “속였다”(히브리어, 베쉘리, LXX, 에클리노, DRA, treacherously). 아브넬이 나를 “속였다”는 그의 말은 그의 투사(投射)였음이 분명해졌다(25절). 그는 마치 아팠던 과거를 잊고 새로운 미래를 함께 세워가자는듯이 넓은 아량으로 아브넬을 품을 듯이 포옹하면서 순식간에 칼을 뽑아 아브넬의 “배를 찔러 죽였다”. 여기의 “배”(호메쉬)는 “다섯번째 갈비뼈”(하메쉬)로 이해되기도 한다(Bodner). 마치 아브넬과 요압의 친위대원들 24명이 서로의 “옆구리”()를 찔러 죽인 것처럼(26절), 분명히 급소를 찔러 죽였을 것이다. “배”이든 “옆구리”이든 요압은 냉혹한 복수를 계획한 것이 분명하다. 요압은 이후에 그의 라이벌인 아마사에게 동일한 장소를 찔러 죽인다(20:10). 요압은 아브넬이 그의 동생 아비새를 “창 뒤 끝으로 찔러 죽인 것”(2:23)에 대한 정당한 복수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복수는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으며 비열하였다. 어떻게 아브넬이 아사헬을 전쟁터에서 죽인 것과 평화로운 장소에서 몰래 음모로 죽인 것이 같을 수 있겠는가? 그 때 요압의 동생 “아비새”도 함께 그 음모에 가담하였다(30절). 요압은 탁월하고 유능한 군인이었지만, 군인의 명예를 버리고 악하고 비뚤어진 마음으로 가증스럽게 복수하였다.

헤브론 시가지

나는 아브넬의 죽음 소식을 듣고 참담했다. 그리고 무서운 현실 정치에 치를 떨었다. 그래도 나는 요압과 그의 집안에 병과 죽음과 가난이 끊어지지 않도록 공적으로 저주 기원을 하였다(29절). 나는 모든 백성들과 함께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그는 사울의 숙부였던 “넬”의 아들이었으므로(삼상 14:50) 왕족의 한 명이었고, 천하 제일의 용장이었고, 우리 나라를 오랫동안 외적들로부터 지켜 왔고, 이제는 통일 이스라엘을 이룰 준비를 마쳤다. 나는 아브넬을 높여 나의 왕도인 “헤브론에 장사하였다”(32절). 그리고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하며 조가(弔歌)를 짓고 백성들과 함께 불렀다(33-34절). “어떻게 천하 최고의 고귀한 장군이 바보처럼(나발) 모략꾼들의 속임수에 걸려 한 순간에 죽음을 당하고 어이 없이 엎드러졌는가(napal)?” 나는 애통하며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내 슬픔과 고뇌를 충분히 표현하였다(35절). 백성들은 내가 아브넬을 죽이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고 안심하였다. 형제가 형제를 죽이고 복수가 복수를 낳는 악순환이 끊어지고,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곳에 생명과 축복이 임하는 선순환”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시 133:1-3)?

산위에서 본 헤브론 전경


2018.07.19 서울에서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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