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한국신학정보연구원
로그인 회원가입
  • 커뮤니티
  • 김정우 교수 칼럼·설교
  • 커뮤니티

    김정우 교수 칼럼·설교

    모든 성도의 영혼의 고향 예루살렘: 나의 첫 예루살렘 이야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Date 24-08-30 00:55

    본문

    모든 성도의 영혼의 고향 예루살렘: 나의 첫 예루살렘 이야기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나의 개인적인 선택이 보편적 가치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일시적, 지엽적 선택이 항구적이고 우주적인 상징과 꿈이 될 수 있을까? 미미한 나의 헌신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터전이 될 수 있을까?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후 가장 당면한 과제는 우리의 물리적-정신적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도읍지를 새로 찾는 일이었다. 헤브론, 베들레헴, 기브아, 실로, 세겜은 아니었다. 헤브론은 북 이스라엘의 10지파로부터 지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너무 멀리 있었다. 베들레헴은 나의 고향이지만 도읍지가 되기에는 협소하였다. 사울의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 땅이고, 세겜은 수자원이 풍부하지만 유다에서 너무 멀리 있었다. 나는 지정학적으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중간에 있는 완충 지점으로서, 그 어느 지파에도 속하지 않은 제 삼의 중립지대, 온 이스라엘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역사성을 가진 곳이지만 여전히 처녀지인 곳을 찾았다. 바로 예루살렘이었다. 예루살렘은 현재 여부스 족속의 성이며, 옛날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린 모리아 산이 있는 곳이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남북을 잇는 족장 길에 자리잡고 있어 세겜, 벧엘, 베들레헴, 헤브론을 이어준다. 동쪽으로는 유대 광야가 펼쳐지고 여리고로 내려 가는 길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비옥한 유대 산지(구릉)가 풍부한 소산을 내며 벳호론 비탈 길을 따라 욥바로 내려 가는 길이 있는 곳이다. 우리가 아직까지 여부스의 예루살렘을 차지 하지 못한 것은 옛적에 여호수아가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에게 승리를 거두었을 때(수 10:1-3), 여부스인들이 그 성을 차지하였기 때문이다(Dan Bahat, Jerusalem).


    워렌 (1).jpg

    첫 다윗 성 안에서 본 올드시티

    워렌 (2).jpg


    워렌 (3).jpg

      다윗-여부스 성 

    워렌 (4).jpg


    워렌 (4).jpg


    워렌 (5).jpg

     아히엘의 집 재구성 


          예루살렘은 해발 800여 미터의 유대 산지 위에 있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산들이 둘러 쌓여 있어서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감싸주실 것” 같은 느낌을 준다(시 125:2). 예루살렘 성은 동북쪽으로는 깊고도 가파른 기드론 골짜기와 서남쪽으로는 힌놈의 골짜기가 있으며, 또한 힌놈의 골짜기와 성 사이에 타이로피안 골짜기가 하나 있어서 지리적으로도 천혜의 요새였다. 무엇보다도 예루살렘의 동쪽 기드론 계곡에는 기혼 샘에서 풍부한 수량(水量)의 지하수가 솟아나 성 안으로 공급되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는 고대로부터 도시국가가 자리잡고 있었다(예루살렘은 주전 3천년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주전 2000년경의 이집트 저주비문에는 루살리뭄[rushalimum]으로 불리며 주전 14세기의 아마르나 시대에는 우루살림[Urusalim]으로 불렸다). 여부스인들은 고대 가나안 사람들이 므깃도, 기브온, 게셀(Gezer)에 만든 수로를 만든 방식으로 예루살렘에서도 수로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 들였다. 그들은 바로 기혼 샘 위에 성벽과 망루를 쌓고 폭 70-120m와 길이 400m의 성(4.5헥타르)을 세웠다.

     

    워렌 (6).jpg


    워렌 (7).jpg


    워렌 (8).jpg

     워렌 갱도 모습 

    워렌 (9).jpg


          내가 나의 친위부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갔을 때, 여부스인들은 자신의 안전을 과신하고 나를 조롱하였다.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눈먼 자들과 다리 저는 자들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삼하 5:6). 그들은 실제로 맹인들과 다리는 저는 자들을 성벽 위에 세우고 우리를 조롱하였다. 나는 “제일 먼저 여부스 사람을 치는 사람을 총사령관으로 삼겠다”는 상급을 걸었다. 그러자 요압은 “물을 길어 올리는 바위벽을 타고 올라갔다”(삼하 5:8). ‘물 긷는 바위벽’(히, 찌노르)는 ‘폭포’(시 42:7)라는 뜻도 있지만, ‘물길’(canal)을 뜻하기도 한다. 여부스인들은 기혼 샘 위에 성벽을 쌓고 수직 갱도를 따라서 물을 길러 먹었다(오늘날, 우리는 이 수직 갱도를 발견한 워렌의 이름을 따서 워렌 수직 갱도[Warren Shaft]라고 부른다). 


         나는 예루살렘을 차지한 이후에 나의 이름을 따서 ‘다윗 성’이라고 불렀다(삼하 5:7). 고대 가나안 사람들은 성이 자리 잡고 있는 산을 ‘시온 산’으로 불렀으므로, ‘시온 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히브리어로 ‘찌온’은 ‘반석’[rock], 혹은 ‘요새’[citadel]를 뜻한다, Schedl, HOT, 3.186). 예루살렘 성은 옛적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 예물을 드린 곳이므로, 나는 여부스인들을 죽이지 않았고 그들의 궁궐과 군대와 문화를 모두 흡수하였다. 내가 역사 속에 이룬 조그만 일이 이후 우리 믿음의 상징과 꿈이 되었다.
    “예루살렘은 상징과 꿈이다.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이다. 하늘의 예루살렘 외에도 수많은 예루살렘들이 있다. 세월 속의 예루살렘들은 왕들, 선지자들, 지혜자들, 이야기꾼들의 역사적 도시이다”(Teddy Kollek, 2013년 예루살렘 시장). 그렇다. 상징으로서 예루살렘은 문자적으로 다윗의 성, 영적-도덕적으로 우리의 영혼, 비유적으로 교회, 그리고 신비적으로 천국을 뜻한다.


    2018.10.02. 김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