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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창세기 강해 / 천지 창조 직후의 이야기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창 3:1-24 | 설교자: 김정우

    본문

    창세기 강해

     

    천지 창조 직후의 이야기

    인간의 타락 이야기

    (창 3:1-24)


     

    김정우




    제눈에 안경이다\는 말처럼, 오늘날 성서 해석학자들은 각자의 안경에 따라 본문을 해석한다. 현대해석학에서는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보다 \본문이 내게 어떻게 비치느냐?\가 더 중요한 원리가 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창세기 3장은 \역사적 설화\로서 \원죄와 타락\ 이야기로 읽어왔다 (van Groningen 124). 최근에 역사비평학적인 입장을 가진 해석자들이 본장을 기본적으로 \전설, 신화, 사가, 기원 이야기(etiology)\ 등의 장르로 보며, 몇가지 해석을 시도한다 (Hess 1992; Fretheim 1994).

    (1) 케네디(Kennedy 1990)는 \유다의 농부(아담과 하와)\가 \왕(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하며, \선동자(뱀)\는 농부들을 부추겨 왕에게 반역하게 하지만 결국 실패하는 것에 대한 \비유\로 본다. (2) 와트(Wyatt 1981)는 \뱀과 그의 지혜\는 가나안 신 엘과 연관되며, \생명나무\는 아세라 종교의 신성한 나무와 같은 것이며, 부부의 \죄\는 가나안의 엘신 숭배에 참여하는 것이며, \낙원에서 추방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는 것을 말해주는 \가나안 종교에 대한 논쟁\으로 본다. (3) 마이어즈(Meyers 1988)는 초기 철기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지대에서 정착하기 위한 갈등 이야기로 본다. (4)특히 바아(Barr 1993), 브루거만(Brue- ggemann 1982), 베스터만(Westermann 1984)은 본장의 이야기는 \인간의 타락\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본문이며,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참된 인간으로 성장해가며, 고통과 아픔을 지불하고 자기 의식을 갖게 되며 \유치함에서 성숙으로, 유아에서 성인으로, 무지에서 지혜로\ 넘어가는 \성숙의 과정(an upward fall)\으로 본다 (Fretheim 1994:147). (5) 여성신학적 입장에서 베츠텔(Becht 117)은 \이 신화가 동산의 유년기 세계에서 [유아기(2:7-9), 유년기(2:16-20), 청년기(2:21-3:12), 초기 성년기(3:13-31)], 주 하나님이 성숙한 인간이 거주하고 경작하도록 창조한 성년 세계로 자라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이 신화는 군주적 사회의 가치와 관심을 보강하며, 왕정이 하나님께서 성숙한 이스라엘을 위해 의도한 목표로 여기고 있다\고 해석한다 (117). 우리는 본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이 본문이 구속사적 관점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시험하는 자의 유혹(3:1-5)



    1) 지혜자 뱀(3:1 상)



    저자는 뱀이 다른 들짐승 중 \가장 간교하더라(\arum)\고 말함으로써 2장 이야기와 이어간다. 이 단어는 바로 앞 2:25에서 남자와 여자는 \벌거벗었으나(\erom)\와 비슷한 발음을 갖고 있다. 또한 저자는 \뱀의 간교함\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의 실마리를 주고 있다. 즉, 간교한 뱀은 여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여자는 선악과의 과실이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여\ 따먹었지만(3:6), 결과적으로 자신을 지혜로 단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벌거벗음(\erom) 만을 발견하고 숨게 된다(3:7, 10). 이리하여 뱀이 제시하는 \지혜\추구와 인간의 \벌거벗음\이 서로 이어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뱀이 \간교하다(\arum)\고 말할 때,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지혜와 능숙함을 제시하며, 항상 부정적인 뜻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자가 이 특성을 개발해야 하는 \슬기로움\으로 나타난다(잠 12:16; 13:16). 따라서 저자는 뱀을 \지혜로운\ 자로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타락과 지혜 추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첫 남녀의 타락은 극악한 행동이나 큰 반역이라기 보다, 잘못된 지혜를 찾는 데 있었다. 그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좋은 것(tob)\을 모두 갖고 있었지만(창 1:31), 뭔가 더 좋은 것을 원한다. 그러나 그들이 탐한 \더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금하신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가지려고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 도전하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다.

    여기에서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 하나\이므로, 초자연적 존재로 비추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후대의 성경에서는 뱀이 사단으로, 대적자로, 하나님의 철천지 원수로 나타나지만(요일 3:8; 롬 16:20; 고후 11:3, 14; 계 12:9; 20:2), 여기에서는 아직 이 뱀이 사탄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뱀은 어쩐 일인지 사단의 화신처럼, 혹은 사단의 대리자처럼 일하고 있다.

    이 뱀의 \간교함\ 속에 사단에게 자신을 자발적으로 주는 내적인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왜 저자는 뱀을 등장시켜 여자를 유혹하는 존재로 만들었을까? 고대 근동 아시아의 세계에서 뱀은 생명과 치료와 지혜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가나안의 풍년 종교의식에서는 뱀이 바알을 상징하고 있다. 오경의 모형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서 뱀은 부정한 동물들 중 그 원형으로 여겨진다.

    몸을 비틀면서 굴러가는 모습은 정결한 동물의 모습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따라서 구약의 동물 상징법에 따르면 뱀은 가장 비정상적이며, 하나님에 대해 적대적인 세력으로 사용되기에는 가장 적합한 존재였다. 이후의 성서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가장 크게 대적하는 리워야단과 라합도 뱀으로 나타나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2) 절묘한 뱀의 유혹(3:1 하)



    뱀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는 사뭇 진지하고 순진한 질문을 여자에게 던진다. 뱀은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매우 종교적인 주제를 가져온다. 뱀 자신이 \종교적 동물\로 둔갑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여자와 논의하는 \신학자\로 자처하고 있다. 또한 뱀은 동산 안에 있는 유일한 금령 문제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법적인 존재\로 등장시키고 있다. 나아가 뱀은 \먹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지혜자\로서 이브에게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태도로 접근한다. 여기에서 뱀이 \무신론적인 괴물\이나 \혼돈의 짐승\으로서 온 세계를 미움과 파탄으로 이끌어 가는 존재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이브의 친구로서 이브의 가장 큰 관심으로 여겨지는 종교적-법적-사회적 문제를 함께 논의하자고 한다.

    뱀은 \참으로\라는 서두로 말을 시작하면서, 어떤 의심과 놀람을 불러 일으킨다. 마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풍문을 들은 것처럼 미묘하고 은근하게 불쾌한 감정을 여자에게 불러 일으키며, 그 스스로는 시치미를 떼고 있다. 그는 \먹지 말라\라는 부정적인 것에 촛점을 맞추고 있으며, 나아가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오직 \선악과만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금령을 왜곡시킨다. 또한 \말하셨느냐?\는 질문을 통해, 그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을 의문형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마치 \너희는 그 어떤 나무의 실과도 먹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잖니?\라는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은 원래 하나님께서 너그럽게 주신 것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것이다. 뱀은 하나님의 명령을 심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또한 흥미롭게도 뱀은 주님의 이름(여호와)을 부르지 않고 \하나님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를 두고 있다.



    3) 이브의 호기심과 왜곡(3:2)



    뱀의 말을 듣자마자 이브는 갑자기 자신에게 뭔가 부족한 것이 많다는 느낌을 가진다. 그동안 그녀는 동산 안에서 부족한 것이 없었다. 에덴 동산은 완전한 삶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브는 뱀의 선전을 듣자 말자 깊은 심리적 박탈감과 결핍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그녀는 남편과 함께 \벌거벗고 있었지만\ 부족함이 없었다(2:25). 그러나 이제 자신이 가장 중요한 인생의 비밀을 모르고 있으며, 뭔가 빠진 텅빈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이리하여 여자는 뱀의 말을 수정해 주지만,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주님은 \모든 실과를 마음껏 먹으라\고 말했으나(2:16), \모든\을 빠뜨리고,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로 이브는 희석시킨다. 그녀는 또한 선악과에 대해 \만지기만 하여도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말한다. 여자는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가볍게 바꾸어 버림으로써 뱀에게 더 가까워져 버렸다. 이리하여 그녀는 하나님을 인색하고, 강압적이고, 간섭하며 자유를 박탈하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4) 간교한 뱀의 거짓말(3:4-5)



    여자의 대답을 듣자, 뱀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아주 강하게 말한다(4절 상). 오히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고 말한다(5절). 여기에서 \하나님이 아신다\가 핵심단어이다.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모든 진실을 다 말씀하지 않았고, 반만 말해주었다\고 제시한다. 뱀은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알며, 모든 진실을 다 말하는 자처럼 나타난다. 뱀의 말에도 진실이 있다. 사실 아담은 자신의 수명을 다하기까지 죽지 않았다(5:5). 또한 하나님은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와 같이 되었다\(3:22)고 말하심으로, 뱀의 말이 진실한 것 같이 보인다. 그렇지만 뱀은 반쪽 진실만을 말했다. 궁켈이 말한 것과 같이 뱀이 그들로 먹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명령하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 절묘하다. 뱀은 속임수의 천재였다.

    이리하여 뱀은 하나님을 \인색한 자\(1절)로 만들며 이브에게 심리적인 박탈감을 가지게 했다(2절). 뱀은 오직 두 번 말하지만, 이브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며,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브의 믿음을 깨뜨리기에 충분하였다. 뱀의 말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도록 하는 독이 들어 있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으로 이끈다. 이것이 죄의 본질이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며,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요 14:15). \너희가 죽으리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에덴 동산 이야기는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의 임재와 그가 주시는 생명력은 나무와 보석과 강과 산으로 표현되었다. 이것들은 후에 이스라엘의 성소와 성전에 나타나는 장식들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 예배에서 참된 생명을 얻었다. 그곳에 주님은 임재하시며 자기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신다. 이와 반대로, 이스라엘의 진에서 쫓겨난 자는 \죽는다.\. 따라서 여자는 선악과의 열매를 먹으므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이르렀다. 후에 사울 왕이 주님의 말씀을 버린 순간 이미 그는 \죽었다.\.

    따라서 사무엘 선지자가 그를 위해 애곡한다(삼상 15:35-16:1).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뱀은 지극히 간교하다. 그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그럴듯한 반쪽 거짓말을 한다. 이 이야기의 중심 내용은 \선악\의 지식에 대한 것이다. 뱀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에게 이 지식을 금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며 질문 형식으로 던진다(3:5). 창세기 이야기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동안 인간을 위한 선악은 하나님께서 친히 결정해 주셨다(창 1:31; 2:18).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장 좋은 세상과 동산을 만들어 주셨다. 따라서 뱀의 입장은 \하나님이 우리의 선악을 결정하시는 분\이라는 창세기 1, 2장의 중심 주제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하나님을 선의 절대적인 잣대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율성을 절대적 척도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2. 아담과 이브의 타락(3:6-7)



    여기에서 타락 이야기는 절정에 이른다. 이제 히브리어 산문체가 그 위력을 드러낸다. 여자는 치명적인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다. 여러 개의 접속사로 이어진 연속절이 나타나 여자의 행동이 얼마나 신속한지 드러내어 준다. \그녀는 보았다\, \잡았다\, \주었다…\. 이 중앙에 \그리고 그도 먹었다\가 나타난다(7절 하). 이어서 그들이 먹고 난 후의 영향이 나타난다. 즉, 그들의 \눈이 열리고\, \벌거벗은 것을 알고\, \나무에 숨는 것\이 나타난다. 이런 대조는 의도적이다. 여인의 뱀이 제시한 지혜를 알고 싶었던 기대가 6절에 나타난다. 그러나 그 실제적인 결과는 정반대였다. 시험은 하나님을 떠난 \지혜\를 찾는 데 있었다. 여자는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다(3:6 하).\. 결심을 하자 말자, 죄를 범한다. 왜 남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아내의 말을 따랐는가? 여자가 뱀의 말을 쉽게 듣는 것처럼, 남편도 아내의 말을 쉽게 듣는다. 결과적으로 뱀이 약속한 것이 이루어진다. 그들은 그 열매를 먹자 말자 \눈이 밝아졌고\ 선악을 아는 데 \하나님처럼\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모순(아이러니)이 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창 1:26),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다. 뱀은 그들이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 것이라고 약속했다. 남녀는 \선악\ 지식을 가지게 되면, \선\을 즐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먹자 말자 그들의 눈은 밝아졌고, 그들이 본 것은 \선\이 아니라 벌거벗은 \수치\였다. 그들이 새로 얻은 지식은 그들의 벌거벗은 상태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지만, 그들조차 서로 같지 않음을 발견하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그들의 다른 점을 감추었다. 하나님이 입히시는 \영광\의 옷을 그들이 벗게 되었을 때, 그들은 스스로 만든 \대용품\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담과 이브는 전도자처럼 지혜와 지식을 찾았지만, 오히려 허무와 고생만 발견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수치를 가리려고 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오시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숨겨야 했다.



    3. 하나님의 심판(3:8-22)



    1) 장면(3:8)



    아담과 하와는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을 거니시는 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여기에서 \날이 서늘할 때에(leruach hayom)\라는 표현은 오랫동안 난해 구절로 여겨져 왔다 (//NKJV, RSV, NASB, NJB, NIV). \날이 서늘할 때에\라는 번역은 고대 번역을 따른 추측이다. 희랍어 70인역은 \오후/저녁에(to deilivon), 서늘한 때에\로, 라틴어 벌게이트역은 \오후 바람이 불 때\(ad auram post meridiem)로 번역한다. 그러나 아카드어에서 umu(m)는 \날\을 뜻할 뿐 아니라, \폭풍\으로서 신의 칭호로 사용된다(AHw, Lieferung 15:1420). 닌누르타 신은 \위대한 폭풍 (umu rabu)\이며, 아슈르는 \분노한 폭풍(umu nanduru)\이며, 엔릴은 \폭풍(umu)\이다 (Niehaus 156). 괼러와 바움가르트너 (K&B)도 히브리어 욤(yom)이 구약에서 \바람, 폭풍\을 뜻한다고 한다(1974:384). 스바냐 2:2 하에서 이 단어가 \폭풍이 쭉정이를 휘몰듯이\(kemots \abar yom)라는 뜻으로 나타난다.

    또한 아카드어 우무(umu)는 가끔 신현과 함께 나타난다. 따라서 \날이 서늘할 때\ 보다 \폭풍의 바람으로\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Niehaus 157). \폭풍은 주님의 오심\을 말해준다. 주님은 심판을 위해 오신다. 여기에서 \소리(qol)\도 주님에게 적용될 때는 \천둥\을 가리킨다(출 20:18). 또한 \거닐다(mithallek)\는 동사는 구약에서 신현의 맥락에서 사용된다(겔 1:3; 시 77:16-17).

    따라서 창세기 3:8은 주님의 무서운 신현을 묘사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폭풍으로 동산을 몰아치시는 주님의 천둥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Niehaus 159).



    2) 심문(3:9-13)



    하나님은 판결을 내리기 전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9절). 하나님은 판결을 내리기 전에 질문을 던지곤 하신다 (4:9-10; 18:21). 이 때 아담은 자기 말로 자신의 죄를 시인한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0절). 그리고 아담은 즉시 책임을 이브에게 전가한다. \여자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한 여자입니다\라고 말하며 궁극적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브를 만드셔서 아담에게 배필로 주신 의도에 대한 풍자이다(2:18). 이리하여 아담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창 2:23)이 자기 재앙의 원천이 되었다며 죄를 여자와 하나님에게 전가한다.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을 지기 보다 책임을 자신의 아내에게 일차적으로 전가하는 아담의 모습은 그가 처음 이브를 만난 후,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탄성을 지른 모습과 아주 대조적이다(2:23). 그러나 여자도 만만치 않다. 하나님께서 이브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심문하시자, 여자도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고 대답한다(13절). 여기에서 여자는 간접적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뱀\이 나를 꾀었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직접적으로 뱀에게와 간접적으로 하나님에게 전가한다. 우리가 우리의 죄와 잘못을 남에게 잘 전가하는 이유는, 우리의 첫 부모 아담과 이브에게 배운 것이다. 이리하여 남녀 사이에 있던 친밀성과 상호 의존성과 깊은 신뢰는 이제 산산조각이 났다. 그들은 서로를 비난한다. 아름다웠던 이중창은 불협화음으로 변질된다. 서로를 향한 순수함과 열정과 헌신은 이중성과 냉담과 책임전가로 바뀐다.



    3) 판결(3:14-20)



    여기에서 뱀과 여자와 남자는 단지 개인으로 묘사되지 않고, 각각 대표로 나타난다. 뱀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의 대표로, 하와는 여자의 대표로, 아담은 남자의 대표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옛날 옛적의 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1) 뱀에게(3:14-15)



    뱀은 \간교하지만\ 이제 \저주를 받는다.\ 그의 \저주\는 다른 모든 육축과 들짐승으로부터 구별되는 것이었다. 즉, 이후로 뱀은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는 것\이다. 뱀이 배로 걷는 것은 원래 뱀이 걸어다니다가 이제 기어다닌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뱀의 현재 행동을 보면서 하나님의 저주를 보는 것이다\(Gunkel). 즉, 뱀이 기어다니는 것이 마치 현상학적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모습처럼 보인다는 것임을 말해준다. 또한 뱀은 \종신토록 흙을 먹을 것이다.\ 이 구절의 문제는 뱀이 실제로 \흙을 먹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그렇지만 \흙을 먹는다\는 표현은 히브리어에서 숙어이다. 마치 우리가 사용하는 속어 \엿 먹는다\가 문자 그대로 엿을 먹는 것이 아닌 것처럼, \흙을 먹는 것\은 싸움에서 패배하여 철저한 수치를 당한다는 뜻이다.

    즉 이것은 \철저한 패배\를 뜻한다[사 65:25; 미 7:17; 시 72:9, \그 원수들이 티끌(흙)을 핥을 것이다\; 사 49:25)]. 뱀이 받은 저주는 인간 타락에 있어서 그가 택한 역할의 결과이다. 뱀은 세상이 회복되어도, \흙이 [여전히] 뱀의 음식이 될 것이다\(사 65:25). 따라서 이 구절은 궁극적으로 뱀으로 상징된 마귀의 패배를 말해준다. 저자는 뱀과 그의 \후손\을 지속적으로 명시한다. 15절은 \뱀\과 \여인\ 그리고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 사이에 적대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부술 것이다. 우리는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갈등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여인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깨는 것을 기대하지만, 그는 \뱀의 머리\를 부순다. 달리 말하자면, 뱀과 \그의 후손\은 하나이다. 미래에도 그의 \후손\은 원래의 뱀이다.

    따라서 이 뱀은 누군가 혹은 그 무엇인가를 대표한다. 뱀의 \후손\이 부수어질 때, 뱀의 머리도 부수어진다. 후대의 성경 저자들은 뱀 배후에 사탄이 있음을 보았다(롬 16:20; 계 12:9). 창세기의 이 이야기는 원형적인 의의를 지닌다.



    여기에 등장한 \여자의 후손\은 창세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독자들에게 계속 궁금증을 던져 줄 것이다. 그는 \가인\인가, \아벨\인가? 아담의 수많은 후손들 중 누가 뱀의 머리를 깰 \여자의 후손\이 될 것인가? 창세기 저자는 \여자의 후손\의 계보를 이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유다로 이어간다. 그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진다. 그가 뱀의 머리를 깨시고,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다(골 2:15).



    (2) 여자에게(창 3:16)



    여자에 대한 판결에서 출산의 고통과 남편과의 관계에서의 고통이 나온다. 출산에 있어서 이제 더 무거워진 고통 가운데 자녀를 낳게 된다. 원래 여자는 자녀의 축복을 받았고(1:28), 행복한 결혼 생활의 축복을 받았다(2:18). 그러나 남편과의 관계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에 대해서는 이전 <성서사랑방> 3, 4호에 있는 창세기 강해와 논단을 보라). 이 양면적 축복이 이제 저주로 얼룩진다. 그렇지만 여자와 남자에게 내려진 주님의 판결은 주님의 정의와 은총을 동시에 드러내어 준다. 주님의 정의에 따라 여인의 해산의 고통은 심화되나, 이를 통해 인류가 번성하며 하나님께서 바로 앞절에서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이 구원자로 태어날 것이다. 최종적인 승리는 여인의 \후손\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원래 남녀가 만들어질 때, 생육이 축복의 중심에 있었다(1:28). 이제, 타락 후 생육의 축복은 뱀이 궁극적으로 패배하고 하나님이 주신 원래의 축복이 회복되는 수단이 된다. 모든 아이가 태어나는 고통은 하나님의 약속에 깔려 있는 희망을 상기시킨다. 해산의 고통은 타락의 허무를 말해줄 뿐 아니라, 다가오는 기쁨의 표시이다(롬 8:22-24; 마 24:8).



    (3) 남자에게(3:17-20)



    남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판결은 창조주가 주신 좋은 땅이 저주를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3:17-19). 그는 땅의 소산을 더 이상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2:16). 시험자는 \먹는\ 문제를 제기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하였다(3:1-3). \그녀가 먹었고…그가 먹었다.\. 따라서 먹는 것에 저주를 받는다.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3:17).

    땅이 받을 저주도 심각하다(3:18). \가시덤불과 엉겅퀴\의 상태는 2장에 묘사된 에덴 동산 창조 이전 상황으로 역전되는 것이다 (5절). 타락 전과 후에 땅의 상태가 달라진다. 현재의 땅의 상태는 인간 반역의 결과이다. 이리하여 저자는 성경 종말론의 구조에 있는 땅이 변하는 모티프를 깔아둔다(사 65:17; 롬 8:22-24; 계 21:1).

    땅의 상태에 변화가 있는 것처럼, 인간 존재의 상황도 변할 것이다(2:7). 타락으로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3:19). 아담과 땅(아다마)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 아담은 자기 아내를 \하와\라고 부른다. 첫 이름 \이브\는 여자의 기원(\남자로부터\)을, 두번째 이름인 \하와\는 그녀의 운명(\모든 산 자의 어머니\)을 가리킨다. 이 세상에 죽음을 가져온 자신의 아내에게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놀랍다. 여기에서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환이 나타난다. 아담은 하와에게서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4. 하나님의 대책(3:21)



    2장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를 마치신 후에 안식하셨다고 한다(2:1-3). 그러나 타락 후에, 그리고 타락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더 생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의 벌거벗은 것을 감추기 위해 \가죽옷(\or)\을 지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가죽옷\은 동물의 죽음을 전제한다. 아담과 하와는 타락 전에 \벌거벗었지만(\arum) 부끄러워하지 않았다\(2:25). 그러나 타락 후에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보고 부끄러워 숨으며,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을 가린다(3:8). 하나님은 동물을 죽여 가죽 옷을 만든 것 속에서 희생 개념을 예기하신다. 오경의 뒷부분으로 넘어가면, 주님은 백성들로 하여금 제사장을 위해 옷을 만들어 그 \벌거벗음(\erwa)\을 감추어, 죽지 않도록 하라고 말한다(출 28:42). 이것은 \영원히 지킬 규례이다\(출 28:43). 즉 제사장 역할의 그림자가 이미 에덴 동산에서 옷을 만들어준 사건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인류로 하여금 자신의 임재를 누리고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희생제물에 근거하여 새 옷을 만들어 주셔서, 자신과의 관계회복을 준비하신다.



    5. 유배와 실락원(3:22-24)



    이 후에,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없었다. 아담과 이브는 동산 안에서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이들이 동산에서 쫓겨 나는 것은 레위기 13:46에 있는 피부병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것과 유사한 점을 갖고 있다. 즉, 타락은 오염과 같은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낙원을 잃는 사건 속에 인간 타락의 어리석음이 부각된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다 (3:5-6).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처럼\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데 있다(시 16:11).

    2:15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abad)\ 그에게 \순종하도록(shamar)\ 동산에 두어졌으나, 이제 타락으로 인간은 \토지를 갈고(\abad)\, 생명나무의 길에 못가도록 하나님께서 화염검으로 그 길을 지키신다(shamar). 이리하여 2장에서 인간에게 주신 모든 사명과 축복이 역전된다. 그렇지만, 이후에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계명을 주심으로 인간에게 주신 복을 회복하고자 하신다. 에덴 동산에서 생명나무는 \그룹들\로 지켜지는 것처럼, 시내산 언약에서도 토라는 \그룹들\로 지켜지는 언약궤 안에 있다(출 25:10-22; 신 31:24-26). 이리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을 통해 둘 사이의 교제가 회복된다(출 25:22). 그렇지만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으로 실패한다. 시내산 언약이 이룰 수 없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새 언약으로서 생명나무의 길을 여신다.



    <참고문헌>

    Fretheim, T. E., \Is Genesis 3 a Fall Story?\ WW 14 (1994): 144-53.

    Hess, R. S., \The Roles of the Woman and the Man in Genesis 3.\Themelios 18 (1992): 15-19.

    Bechtel, L. M., \Rethinking the I nterpretation of Genesis 2:4b-3:24.\In A Feminist Companion to Genesis. Ed. by A. Brenner. Sheffield Academic Press. 1993. Pp. 77-117.

    Van Groningen, G., Messianic Revelation in the OT. Grand Rapids: Bakers, 1990. <구약의 메 시야 사상> 유재원, 유호준 공역.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