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한국신학정보연구원
로그인 회원가입
  • 색인초록 DB
  • 역사속의 명설교
  • 색인초록 DB

    역사속의 명설교

    오순절(五旬節)은 인류사회(人類社會) 변혁(變革)을 일으킨 기점(起點)이다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행 2:17-23 | 설교자: 길진경

    본문

    한국교회 초기 설교


    오순절(五旬節)은 인류사회(人類社會) 변혁(變革)을 일으킨 기점(起點)이다 (행 2:17-23)

    길진경(吉鎭京)



      그리스도교 역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오순절 의식은 본래 가나안 사람들의 연중 행사인 동시에 농제(農祭)로서 히브리 사람들이 자기네의 신, 여호와 신앙으로 해석해서 자기네의 종교적 행사로 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 행사가 진행되는 시반월제 6일(추수 봉헌 제 마지막 날) 하루에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되어, 허락의 땅 가나안을 향하던 제 오십일에 여호와로부터 율법을 받은 고귀한 사실을 기념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이는 신약시대 기초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완성하신 후에 제 오십일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삼천 명이라는 신앙의 수확을 얻은 사실이라든지, 구약 시대에 모세가 본 시내산 가시덤불에 나타난 붙은 불과, 신약시대에 멸한 제자들과 백이십 문도들이 갈라진 혀 같은 불길을 보았다는 것은 상사(相似)한 점이 있다고 본다.
      하여간 옛 오순절은 추수절이요, 새 오순절은 복음을 뿌려 신자를 거둔 기념의 날인 것이다.
      물론 오순절이라면 성령의 날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 신도들에게 있어서는 그보다도 나 자신과 나 자신이 처해 있는 집단 전체의 변화가 일어난 날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 이전 이스라엘 민족의 신관과 그리스도 이후 이스라엘 민족의 신관과의 차이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물론 그들은 삼위일체의 신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창세기에 나타난 창조주는 엘로힘이었고 그의 신이 수면에 운행했다고 한 「신」이라는 「기운」은 구약 가운데서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고, 이사야서에서는 수육의 신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소돔성을 멸하시기 바로 직전에, 아브라힘에게 동시에 나타난 세 사람의 기사는 히브리 민족의 자기 민족의 신에 대한 삼위일체 신관의 표현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토대가 되여야 할 그들의 신관이 성숙했는가 하면,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상태를 보아서 그렇다고 전적으로 긍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발전 도상에 있던 그들의 신관은 예수 당시까지에 완전히 부패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신 동시에 자신을 그의 아들이라고 했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 성령이 오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유대 종교의 개혁자로서의 위대한 발견일 뿐 아니라, 인류의 신에 대한 관념에 불을 던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모세의 여화와 발견은 긍정하면서도 그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동시에 성령의 역사도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삼위일체 신관이 오랜 시일을 지내면서 고질이 된 율법 사상에 유폐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해서 그들의 종교 사상에 신화(神化)가 된 율법을 위해서 의식과 절기의 행사를 절대의 신조로 함에서 비참하게도 그들의 신상은 외식으로 추락되고, 이에 따라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엄연해야 할 윤리는 외식에 유린되었고, 수육의 그리스도로써 이루어진 구속적인 신앙은 그들의 세속주의에 밟히고 말았던 것이다. 오늘에 있어서 한국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신도들의 신관은 예수님의 증거하신 삼위일체 신관 그대로를 받아들였는가. 다시 검토해야겠다고 나는 생각하는 바이다. 삼위일체의 신관은 예수님을 통해서 받은 구속적 신앙의 영양소인 것이다. 오늘에 있어서 흔히 토착화를 말하는 일부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의 동향에 대한 조심성 있는 관찰과 비판이 있어야겠다고 본다.
      한국에 그리스도교가 들어와서 한국인들의 신에 대한 관념을 정확한 비판이 없이 받아들여 한국인의 신을 그리스도의 신으로 인정, 접수했다는 것은 오늘의 한국 그리스도교로서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토착화의 관점에서 볼 때에 「한울님」-「하누님」(지금도 신도들 사이에서 「하누님」으로도 통함)-「하나님」이란 명사는 한국 민족의 신의 이름인 만큼, 한국인의 종교적 감정에 있어서나 이해하는 데 있어서의 가장 적절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리스도교 신학적 견지로 볼 때에, 한국인의 신관에 내포되어 있는 요소의 작용으로 인하여 한국 그리스도교의 신앙에 혼잡을 가져오지 아니하나 하는 느낌을 가지지 아니할 수 없다고 본다.
      한국 문화사를 더듬어 볼 때에, 가장 고대(古代)의 한민족의 신관은 그야말로 자랑할 만큼 유일신 신관의 순결성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한 민족적 문화의 수준을 높이 평가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을 따라 신관을 구성한 요소는 다른 민족과의 교류에 따라서 없을 수 없는 문화의 교류로 받은 영향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유일신 신관을 표현하는 「한울님」이라는 「신」을 소유함은 극히 다행한 일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 신관의 내용〔性分〕을 분석한다면 소위 샤머니즘 ․ 자연종교 ․ 우상종교 등 잡종의 종교적 관념의 요소가 우리의 신관에 개재하지 아니했다고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오늘 한국 그리스도교 신도들의 생활면에 나타난 진상을 보아서 극히 주의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느끼는 바이다.
      한국 말의 하나님이라는 한국인의 종교적 감정과 그 이해, 「가미사마」라고 하는 일본인의 종교적 감정과 그 이해, 「여호와」라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감정과 이해는 각기 다른 점이 있다고 본다면, 그리스도교의 신은 자칫하면 지역에 따라서 거기에 살고 있는 민족의 신으로 국한되어지고 말 염려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은 「아버지」라고 하였다. 이는 주님의 새 발견이요, 하나님에 대한 새 표현인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를 인류 사회에 건설하시려는 그 목적을 위한 신관의 통일을 이룩하신 것이다. 오늘의 한국 그리스도교 신도들의 경향은 무엇을 보여 주고 있는가? 오늘의 교회가 세속주의에 염색이 되어 가고 있다면, 성령의 탄생일인 오순절을 기념하는 오늘에 있어서 우리의 신관을 재정리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겠다고 보는 바이다. 교회의 부흥은 말 잘하는 강사를 중심으로 한 집회에 있을 수 없는 동시에 지식인의 강의로써도 되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유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랐던 것도 아니요, 메시야를 갈망하지 아니했던 것도 아니요, 성령을 몰랐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오순절에 나타난 성령으로 그들이 신앙의 눈을 떴고 세계를 발견했다는 것을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오순절의 성령의 출현은 하나님 전체가 인류에게 오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나타난 성부(유대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성자) (오순절에 예루살렘 다락방 열 두 제자와 백 이십 문도에게 나타난 성령)는 그 때와 장소는 달리했었으나,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그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분담적인 역할을 보여 주면서 한 분 하나님이심을 완전히 인류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도, 하나님 아들도, 하나님 성령도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매 하신 허락 그대로 오심으로 일어난 사실은 개인의 변화요 사회의 변혁인 것이다.
      당시 로마의 세력은 천하를 호령하고 있었으니 만큼, 팔레스타인 한 모퉁이에서 일어난 나사렛 예수를 초개처럼 보았고,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또한 바람에 날리는 갈대의 움직임처럼 보았던 것이다. 그 세력은 그리스도교를 짓밟았고, 그들의 손에 쥐어진 칼은 신도들의 피를 흘렸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에로 누룩처럼 퍼져 나가는 신앙을 막을 길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성령의 힘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몰랐던 탓이었다. 계집종 앞에 떨던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랴 너희의 말을 들으랴』 하고 법정에서 대담하게 된 그 까닭은 성령의 힘이었던 것을 로마의 관리들은 몰랐었다.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우리 앞에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으니 오순절까지 이 곳에 유하겠다고 한 바울의 담벽도 성령의 힘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방 사람들을 용납하지 아니하는 유대교로서는 로마 세력을 극복해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대 민족의 멸망이 간두에 있었을 그 때에 오순절의  성령이 나타나심은 하나님의 계획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인류의 희망에 응답이었던 것이다. 율법주의의 울타리 속에 유폐되고, 독선주의로 사회에 고립돼 있던 유대사람들이 오순절을 계기로 해서, 여성이 해방되고 이방 사람들과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고 만 것이다. 그야말로 교회 앞에 광대하고도 공효를 이룰 수 있는 문이 개방된 것이다. 전 세계는 그리스도교의 무대가 되었고, 전 인류는 그리스도교의 세계 구성분자(構成分子)가 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전 인류가 하나의 세계에 뭉쳤고, 모든 교회가 하나인 것이다.
      유대 사회에 종교는 있었으나, 남자와 여자의 차별을 없이 하지 못했고, 이법과 유대와의 갈등을 제거하지 못했었다. 많은 선지자들이 힘썼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노력했었다.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유대 사람들이 이방 사람을 위해서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게 된 것은 인류에게 오시마 허락하신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오순절을 계기로 최종적으로 인류에게 나타나심으로써 깨우쳐진 신앙의 열매였고, 오순절 성령으로 혁신이 되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그리스도교는 로마를 개혁했고, 전 세계를 혁신하게 된 것이다.

    장로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