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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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 19:17-30 | 설교자: 김창호
본문
17.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18.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목박을쌔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박으니 예쑤는 가운데 있더라. 19 ... (요한 19:17-30)
십자가는 극악(極惡)의 죄인을 처형하는 최악(最惡)의 형구였습니다. 이처럼 듣기만 하여도 모서리치고 생각만 하여도 소름이 끼치던 십자가는, 오늘날 영광과 축복의 상징과 표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고통과 저주를 주던 흉악한 형구로서의 십자가는 이미 그 그림자를 감추지 오래였고, 그 대신 듣고 보는 모든 사람에게 안심과 평화를 주는 십자가가 인간도처(人間到處)에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많은 사람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통하여 참되고 영원한 구원과 희망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상에 십자가의 의의(意義)처럼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 사실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우주와 인간에 있어서 가장 큰 이적이요 기사입니다. 절망의 십자가는 희망의 십자가로, 저주의 십자가는 축복의 십자가로, 수욕의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로, 멸시의 십자가는 존귀의 십자가로, 고통의 십자가는 평화의 십자가로, 실패의 십자가는 승리의 십자가로, 사망의 십자가는 영생의 십자가로 변하고 바뀌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다른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못박혀 죽으신 까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찌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는가?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풀(解明)수 없는 우주의 가장 큰 수수께끼입니다. 악한 인간 죄인이 지는 십자가를 거룩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시오, 지극히 선하시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실 아무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봉독한 본문 17절에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란 만고에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는가? 이 신비막측(神秘莫測)한 사실에 대하여 오늘 이 고난 주간을 맞이하시는 여러분과 함께 다시 한 번 더 생각하여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인류의 죄짐을 지심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모든 일에 전책임을 지십니다. 그들을 낳으시고 기르시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생을 통하여 그들의 모든 문제를 책임적으로 염려하고 지도하여 주시되, 그들의 질병과 고통과 과오와 실패에 대한 문제까지 책임을 져 주시는 것입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친구는 그 친구의 모든 문제를 책임적으로 이해하고 동정하되 심지어 그 친구의 허물과 실수, 부채와 파산까지라도 책임적으로 구조하며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생명의 주시오, 자비하신 아버지인지라 우리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다 책임져 주시나, 우리 인류가 하나님 앞에 배은망덕(背恩忘德)하고 반역한 죄까지 책임지시고 해결하여 주시기 위하여 자신이 친히 인간을 찾아 오셨으니, 그 분이 세분 한몸(三位一體)하나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기 위하여, 특히 우리 인간의 죄짐을 져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 말씀은 불신앙의 인간을 향하신 얼마나 고마우신 하나님의 변론이십니까?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사 53:6). 이 얼마나 감격한 사실입니까?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시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인간의 죄짐을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희생의 제물로 피를 흘리심으로 인하여, 우리 인간은 사유함을 받는 문이 열렸으며, 공로없이 의로워지는 길이 열렸으며, 모든 죄에서 깨끗이 해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절경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하셨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해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시므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3-25)하였습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함을 얻으며, 죄에서 완전히 해방 받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우리 인류의 고통을 담당하심입니다. 자식의 불효와 불순종은 부모의 마음에 큰 고통을 줌과 같이 인류의 죄의 쏘는 살은 하나님께 큰 고통과 상처를 끼쳤습니다. 모든 시대 인류의 죄를 대표하는 가롯 유다의 반역, 베드로의 배신, 거짓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와 흉계, 빌라도의 무능하고 마비된 양심 군중의 무지와 맹동, 로마 병정들의 잔인과 강포, 인간의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냉담과 무관심 등은 모든 죄의 독한 살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주리고 목마름과, 헐벗고 고단함과, 멸시와 학대를 당하게 할 뿐 아니라 채찍으로 태장을 맞으시고 무지무지한 주먹에 뺨을 맞으셨으며, 얼굴에 침뱉음을 당하셨고, 갖은 조롱과 수모를 당하셨으며,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 형틀에 달려 두 손과 발에 날카로운 못이 박혀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처럼 인류에게서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은 온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내리시는 진노와 저주와 심판과 형벌을 담당하셨으니, 그는 실로 과거․미래․현재의 억천만 인간의 육체적․정신적․심령적 고통을 다 담당하셨습니다.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십자가의 고난에 당면하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가실쌔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3-36)하시고 용기와 능력을 위로부터 받아, 자진하여 이 쓰고 쓴 고통의 잔을 받으셨습니다. 33년의 일생을 통하여 하루도 평안하실 날이 없이, 인간의 모든 고통을 다 체험하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둔 일주일간에 그 악착같은 고난의 실체가 점점 가까워짐을 느꼈을 것이며, 밤을 새워가시며 최후의 정력과 심혈을 기울여 제자들로 만찬 석상에서 최후의 고별사와 기도를 하신 예수님은 어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과 눈물의 기도를 하시고, 곧 악한 무리들에게 체포되어 대제사장의 아문으로, 빌라도의 법정으로, 헤롯왕의 궁정으로 다섯 번씩이나 끌려 다니시며 심문을 받으시고, 최후의 썩고 마비된 양심의 법관인 총독 빌라도의 불법, 불의한 결재로 피에 굶주린 흉악한 죄인들의 손에 넘겨 주어, 유월절 양의 희생의 제물이 되는 날 오전 아홉시에 십자가에 달려 못을 박혀 사람에게 버림을 받으시고, 하나님에게서도 버림을 당하시니, 그의 창조함을 받은 일월이 무심치 않아 빛을 잃고, 오정부터 오후 세시까지 천지가 캄캄할 때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찧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 15:34-35) 그의 부르짖음은 우주와 인간과 하나님의 최대의 비극이요, 최대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죽음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4-5)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 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제하네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인류의 죽음을 대신함이십니다. 죽음은 우주와 인류에 가장 슬픈 일입니다. 영과 육이 갈리는 것이 육신의 죽음인 것같이,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分離)되는 것이 곧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범죄의 결과로 오게 되었으며, 또한 이 죄와 및 죄의 필연적 결과로 오는 고통과 죽음은 인간 자신으로서는 아무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또한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서 죽음을 정복하시고 우리 인류를 죽음에서 해방하여 주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3-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4-15).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셔서, 인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자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시고, 또한 죽음을 승리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인류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 11:25-26). 인류의 그 무서운 원수인 죽음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그 위력이 좌절(挫折)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하고 십자가로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와 및 온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거룩하고 보배로운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의 고통을 담당하시며,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신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를 한번 바라보십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벌레 같은 죄인인 죽을 나를 살리려 그 영광 버리고, 쓰리고 아픈 십자가 날 위하여 이 몸 바쳐 죽도록 충성하며, 또한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말과 행동과 생활로 십자가에 충성된 증인이 되십니다. 십자가는 인류를 죄와 고통과 사망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와 고통과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기 위하여, 갈보리 언덕 십자가 위에 달려 그 크신 고난을 당하신 까닭입니다.
감리교 목사
십자가는 극악(極惡)의 죄인을 처형하는 최악(最惡)의 형구였습니다. 이처럼 듣기만 하여도 모서리치고 생각만 하여도 소름이 끼치던 십자가는, 오늘날 영광과 축복의 상징과 표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고통과 저주를 주던 흉악한 형구로서의 십자가는 이미 그 그림자를 감추지 오래였고, 그 대신 듣고 보는 모든 사람에게 안심과 평화를 주는 십자가가 인간도처(人間到處)에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많은 사람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통하여 참되고 영원한 구원과 희망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상에 십자가의 의의(意義)처럼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 사실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우주와 인간에 있어서 가장 큰 이적이요 기사입니다. 절망의 십자가는 희망의 십자가로, 저주의 십자가는 축복의 십자가로, 수욕의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로, 멸시의 십자가는 존귀의 십자가로, 고통의 십자가는 평화의 십자가로, 실패의 십자가는 승리의 십자가로, 사망의 십자가는 영생의 십자가로 변하고 바뀌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다른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못박혀 죽으신 까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찌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는가?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풀(解明)수 없는 우주의 가장 큰 수수께끼입니다. 악한 인간 죄인이 지는 십자가를 거룩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시오, 지극히 선하시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실 아무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봉독한 본문 17절에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란 만고에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는가? 이 신비막측(神秘莫測)한 사실에 대하여 오늘 이 고난 주간을 맞이하시는 여러분과 함께 다시 한 번 더 생각하여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인류의 죄짐을 지심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모든 일에 전책임을 지십니다. 그들을 낳으시고 기르시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생을 통하여 그들의 모든 문제를 책임적으로 염려하고 지도하여 주시되, 그들의 질병과 고통과 과오와 실패에 대한 문제까지 책임을 져 주시는 것입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친구는 그 친구의 모든 문제를 책임적으로 이해하고 동정하되 심지어 그 친구의 허물과 실수, 부채와 파산까지라도 책임적으로 구조하며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생명의 주시오, 자비하신 아버지인지라 우리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다 책임져 주시나, 우리 인류가 하나님 앞에 배은망덕(背恩忘德)하고 반역한 죄까지 책임지시고 해결하여 주시기 위하여 자신이 친히 인간을 찾아 오셨으니, 그 분이 세분 한몸(三位一體)하나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기 위하여, 특히 우리 인간의 죄짐을 져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 말씀은 불신앙의 인간을 향하신 얼마나 고마우신 하나님의 변론이십니까?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사 53:6). 이 얼마나 감격한 사실입니까?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시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인간의 죄짐을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희생의 제물로 피를 흘리심으로 인하여, 우리 인간은 사유함을 받는 문이 열렸으며, 공로없이 의로워지는 길이 열렸으며, 모든 죄에서 깨끗이 해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절경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하셨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해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시므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3-25)하였습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함을 얻으며, 죄에서 완전히 해방 받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우리 인류의 고통을 담당하심입니다. 자식의 불효와 불순종은 부모의 마음에 큰 고통을 줌과 같이 인류의 죄의 쏘는 살은 하나님께 큰 고통과 상처를 끼쳤습니다. 모든 시대 인류의 죄를 대표하는 가롯 유다의 반역, 베드로의 배신, 거짓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와 흉계, 빌라도의 무능하고 마비된 양심 군중의 무지와 맹동, 로마 병정들의 잔인과 강포, 인간의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냉담과 무관심 등은 모든 죄의 독한 살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주리고 목마름과, 헐벗고 고단함과, 멸시와 학대를 당하게 할 뿐 아니라 채찍으로 태장을 맞으시고 무지무지한 주먹에 뺨을 맞으셨으며, 얼굴에 침뱉음을 당하셨고, 갖은 조롱과 수모를 당하셨으며,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 형틀에 달려 두 손과 발에 날카로운 못이 박혀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처럼 인류에게서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은 온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내리시는 진노와 저주와 심판과 형벌을 담당하셨으니, 그는 실로 과거․미래․현재의 억천만 인간의 육체적․정신적․심령적 고통을 다 담당하셨습니다.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십자가의 고난에 당면하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가실쌔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3-36)하시고 용기와 능력을 위로부터 받아, 자진하여 이 쓰고 쓴 고통의 잔을 받으셨습니다. 33년의 일생을 통하여 하루도 평안하실 날이 없이, 인간의 모든 고통을 다 체험하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둔 일주일간에 그 악착같은 고난의 실체가 점점 가까워짐을 느꼈을 것이며, 밤을 새워가시며 최후의 정력과 심혈을 기울여 제자들로 만찬 석상에서 최후의 고별사와 기도를 하신 예수님은 어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과 눈물의 기도를 하시고, 곧 악한 무리들에게 체포되어 대제사장의 아문으로, 빌라도의 법정으로, 헤롯왕의 궁정으로 다섯 번씩이나 끌려 다니시며 심문을 받으시고, 최후의 썩고 마비된 양심의 법관인 총독 빌라도의 불법, 불의한 결재로 피에 굶주린 흉악한 죄인들의 손에 넘겨 주어, 유월절 양의 희생의 제물이 되는 날 오전 아홉시에 십자가에 달려 못을 박혀 사람에게 버림을 받으시고, 하나님에게서도 버림을 당하시니, 그의 창조함을 받은 일월이 무심치 않아 빛을 잃고, 오정부터 오후 세시까지 천지가 캄캄할 때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찧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 15:34-35) 그의 부르짖음은 우주와 인간과 하나님의 최대의 비극이요, 최대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죽음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4-5)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 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제하네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인류의 죽음을 대신함이십니다. 죽음은 우주와 인류에 가장 슬픈 일입니다. 영과 육이 갈리는 것이 육신의 죽음인 것같이,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分離)되는 것이 곧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범죄의 결과로 오게 되었으며, 또한 이 죄와 및 죄의 필연적 결과로 오는 고통과 죽음은 인간 자신으로서는 아무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또한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서 죽음을 정복하시고 우리 인류를 죽음에서 해방하여 주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3-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4-15).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셔서, 인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자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시고, 또한 죽음을 승리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인류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 11:25-26). 인류의 그 무서운 원수인 죽음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그 위력이 좌절(挫折)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하고 십자가로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와 및 온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거룩하고 보배로운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의 고통을 담당하시며,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신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를 한번 바라보십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벌레 같은 죄인인 죽을 나를 살리려 그 영광 버리고, 쓰리고 아픈 십자가 날 위하여 이 몸 바쳐 죽도록 충성하며, 또한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말과 행동과 생활로 십자가에 충성된 증인이 되십니다. 십자가는 인류를 죄와 고통과 사망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와 고통과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기 위하여, 갈보리 언덕 십자가 위에 달려 그 크신 고난을 당하신 까닭입니다.
감리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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