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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새롭게 보는 천지창조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창1:1-2:3 | 설교자: 김정우

    본문

    새롭게 보는 천지창조
    (창1:1-2:3)


     

    김정우




    들어가는 말

    최희준의 <하숙생>에 있는 가사처럼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인 질문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에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헬무트 틸리케가 잘 관찰한 바와 같이, \우리가 장미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면, 그 꽃의 기원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다. 그 씨앗이나 줄기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활짝 핀 장미 한송이를 관찰할 것이다. 장미가 활짝 피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꽃의 색깔과 향기와 모양, 즉 그 성질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틸리케는 자신의 장미 비유가 안셀름의 수정비유에서 나왔음을 밝혀준다. \당신이 수정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 수정을 뽑아낸 돌을 탐구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 돌에서 추출해 낸 수정 자체를 살펴야 한다. 그래야만 수정이 무엇인지를 알며, 그 성질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9쪽). 그렇지만 사람은 장미처럼 전성기의 모습이나 수정처럼 완성된 모습으로 알 수 없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모든 자서전은 저자의 어린시절이나, 혹은 그의 조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인류의 시작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창세기는 인간의 근원이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를 들으며, \이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이 세상과 우리를 만든 분은 누구입니까?\하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뿐 아니라, 또한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조명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은 청중은 누구일까? 물론 이 이야기는 긴 전승의 역사를 가졌을 것이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노아와 아브라함을 거쳐 창조 이야기는 구전으로 혹은 기록으로 후세에 들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오경 속에 담고 오경의 첫 장에 둔 사람은 오경의 저자일 것이다. 성경 자체의 증거와 유대인과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오경의 저자는 모세로 나타난다.

    옛날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종 되었던 집 이집트에서 건져내고, 약속의 땅으로 가던 중 광야에서 처음으로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집트를 떠났지만, 여전히 세계관과 가치관은 이집트적인 백성들의 진정한 정치적, 영적 구원을 기다리며 그는 창조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는 삶과 인식의 모든 출발을 창조에 두고 있다. 옛날 모세의 이야기를 듣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20세기 말의 세속도시의 황무지에서 살면서 창세기 이야기를 새롭게 듣고자 한다. 시련의 광야에서, 혼돈의 광야에서, 불평과 심판의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죽음에 직면하고, 놋뱀을 바라보며 구원의 희망을 가졌던 광야에서 우리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태어나길 바라며 창조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세속적인 이집트 정신과 결별하고, 왕같은 제사장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기 위해 창조 이야기부터 우리는 듣고자 한다. 창조 이야기를 처음듣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화적 세계관을 떨치고 나온 것 같이, 새 시대의 신들과 싸우는 우리들도 물질주의, 인본주의, 세속주의, 분파주의, 혼합주의 신들을 우리 정신과 생활 속에서 다 몰아내기 위해 창조기사를 듣고자 한다.



    <창세기의 전체적인 구조>

    창세기는 하나의 통일성을 지닌 책으로서 다음과 같은 구조로 짜여져 있다.



    1. 서론: 천지창조 이야기 (창1:1-2:3)

    2. 천지 창조의 대략 (2:4-4:26)

    3. 아담 후손들의 계보 (5:1-6:8)

    4. 노아의 사적 (6:9-9:29)

    5. 노아 자손들의 이야기 (10:1-11:9)

    6. 셈의 후손들 (11:10-26)

    7. 데라 후손들의 이야기 (11:27-25:11)

    8. 이스마엘의 후예들(창25:12-18)

    9. 이삭 후손들의 이야기 (25:19-35:29)

    10. 에서의 후손들 (36:1-37:1)

    11. 야곱 후손들의 이야기 (37:2-50:26)



    위의 구조를 보면 창세기는 서론과 10개의 이야기들로 짜여져 있으며, 크게 볼 때 태고사(1:1-11:26)와 족장사(11:27-50:26)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태고사를 다루는 창세기 1-11장은 창세기 뿐 아니라 오경 전체에 대한 서론으로 쓰였다. 이 단락은 족장들의 이야기를 위한 무대를 만들어줄 뿐 아니라(창12-50), 시내산 언약(출-신)에 대한 배경을 만들어 준다. 오경 저자는 창세기 1-11장을 세심하게 선별하고 배열하여, 자신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즉, 그는 족장의 하나님(창12-50장)과 시내산 언약의 하나님(출애굽기-신명기)을 온 세상의 창조주와 연결하려고 한다. 또한 그는 족장을 부르시고, 시내산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이 원래의 창조 목적을 이루는 것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제 1 강. 새롭게 보는 천지창조 (1:1-2:3)

     

    들어가는 말

     

    본 장은 세계 문학의 걸작 중 걸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안에 담긴 내용에 대해 수 많은 질문들이 제기되고 수 많은 회의들이 제시되었지만, 이 장을 한번 소리내어 읽어만 보아도 우리는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본 장은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로서 우주 전체를 한 폭의 그림에 담고 있다. 우주 뿐 아니라, 온 세계와 그것을 구성하는 세부 사항까지 다 담아준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선언으로 하늘과 땅을 포함하는 우주 전체를 말하면서도,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즉 바다와 땅, 나무와 꽃, 동물과 인간, 태양과 달과 별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주고 있다.

    본 장은 물리학의 가장 기본 개념을 이루는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엮어간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여섯 날의 시간을 통과하며 제 칠일에 완성된다. 공간적 관점에서 저자는 \하늘과 땅\이라는 전체를 말한 후에,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단계를 따라 펼쳐가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둠에 쌓였던 우주의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고 완성되어 간다. 이 짧은 한 장 속에 시간과 공간과, 온 세계와 인간의 창조와 안식까지 다 담겨지며 그려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렇게 간결하게, 이렇게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글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천지창조에 대한 창세기 1장의 묵상은 이 장이 선포된 고대의 신화적 세계관 속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천지개벽같은 것이었다. 고대의 사람들은 우주의 삼라만상 속에 신들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언제 태양이 빛남과 달의 명랑하게 운행되는 것을 보고 내 마음이 가만히 유혹되어 손에 입 맞추었던가?\(욥31:26)라고 욥이 말한 것처럼, 옛날 사람들은 태양과 달과 별들을 신격화 하고 그들에게 경배하였다.

    창세기 1장은 삼라만상을 이루는 모든 자연현상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진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 이야기는 과학적 세계관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충격을 준다. 계몽사상(Enlightenment) 이후, 천지창조를 다루는 성경은 시대착오적인 세계관을 제시하는 신화로 일축되어 버렸다. 르네상스 이후, 이미 사람들의 지성은 권위와 전통의 무거운 굴레에서 벗어나 \이성을 만물의 잣대\로 삼는 시대를 열었다. 1700년대의 과학은 아직 유아기에 속하였으나, 콜롬버스와 바스코 다 가마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말하면서 오경의 천체관은 심각한 의심을 받게 되었다. 당대의 철학자인 존 록크의 \합리주의(rationalism)\는 종교의 모든 문제에서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고,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우주 기계론\을 세우고, 신학자들은 초연신론(deism)을 믿으며 기독교의 이적과 신비를 철저하게 배제해 갔다.

    17세기 말과 18세기의 교회는 \누구든지 신구약의 신적권위를 부인하면 처음에는 공직을 박탈하고 다음에는 삼년형을 구형했다.\ 1697년 스코틀랜드의 신학생 토마스 아이켄헤드는 \에스라가 오경의 저자요 모세는 이집트에서 요술을 배웠다\고 말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당대의 평신도들은 우주가 6일 동안 창조되었다고 믿었고, 케임브릿지 대학의 존 라잇풋은 1642년 인간의 첫 창조를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 아침 9시로 계산해 내는 천재성(?)을 과시하였다.

    19세기의 과학자들은 전통적인 창조 신앙에 정면 도전하였고, 관찰과 연역과 귀납의 과학적 방법론이 순수과학의 영역 뿐 아니라, 모든 인문과학의 영역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과학과 종교의 정면 충돌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지질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이 앞다투어 성경 본문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다윈의 진화론(1859년)에 영향을 받아 지구가 격렬한 변화의 과정을 거쳐갔으며, 인간은 단일 조상의 후예가 아니라, 여러 원조들을 가지고 있으며 긴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고 믿었다. 다윈의 불독으로 알려진 헉슬리는 \과학과 종교\, \진화와 모세\, \새 지식과 성경적인 개화 반대론\의 대립을 첨예화 시켰다. 그 당대 교회에서 과학적 발견을 반대하는 데 유행한 삼단논법은 \첫번째, 그것은 얼빠진 소리이다. 두 번째,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는) 그것은 성경과 상치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 (과학이론이 증명된 후에) 나 그런줄 알았다(고 교회는 발뺌을 한다)\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19세기의 과학은 너무나 자신감에 넘쳐 있었고, 자족하였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소위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방법들로, 우주를 하나의 기계로 보게 되어 우주는 원래의 그 신비함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우리의 소위 수학적이고 이론적인 연구는 만물 속에 충만한 생을 죽이고, 분석적이고 실험적인 방법은 실재를 다 해체하여, 우주와 인간과 사물을 전체적으로 보는 시각을 잃어 버리게 했다.

    20세기의 과학은 끝이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우주의 신비와 인간의 한계를 깊이 느끼고 있다. 미국의 우주 비행사가 달나라에 가서 성경 첫 장에 있는 창조기사를 읊조릴 때, 듣는 자는 깊은 감동을 느끼며, 창조기사의 말씀이 그 상황에 너무나 어울리는 것을 보았다. 과학발전의 유아기 때에 성경에 대해 가졌던 의구심과 반발이 수그러들고, 성경의 메시지를 새롭게 들으려는 성숙의 단계로 접어 들고 있다.

    교회는 지난 2000년간 그 설교와 신학에서 창조의 신앙을 고백해 왔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는 사도신경의 첫 조항이다. 우리는 과학이 제기하는 새로운 세계관의 도전 앞에서 과학적 발견과 창조기사의 관계를 계속 새롭게 규명해 가야 할 것이다. 창조는 과학적 지식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오직 종교와 믿음만을 다룬다는 식의 부정적 답변은 창조 신앙을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다. 성경은 오직 인간이 처한 상황에 \참 존재 이해\를 준다는 실존주의적 답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을 과거에 묻혀버린 신화적 존재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또한 성경을 단지 \구원의 책\으로만 보고, 인간의 죄가 사함받고 의롭다함을 가르치는 것으로만 보려는 근본주의적 태도 역시 밀키웨이에서 새 별을 만드시는 창조의 하나님을 가리워 버릴 것이다.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생각하고, 성경에 있는 창조의 과정에서 과학을 수립하려고 하거나, 혹은 과학으로 성경의 세계관을 신화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전제 역시 성경의 원래 의도와 문학적 장르에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과 과학의 두 증거를 함께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창조 신앙의 바탕 위에서, 생명과 우주를 경이롭게 보며, 전체와 부분을 통합시키며, 인생과 역사의 근원과 오메가 포인트를 함께 찾아가야 할 것이다.

     

    I. 구조

     

    1. 문학적 구조

    천지창조를 다루는 본 단락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서문 (1:1)

    2) 창조 전의 부정적 상황 (1:2)

    3) 창조 기사 (1:3-31)

    4) 결론적인 요약적 진술 (2:1)

    5) 결어: 안식일의 휴식 (2:2,3)



    결어를 이루는 2:3은 서문(1:1)과 아주 유사하다. \하나님\과 \하늘과 땅\과 \그가 만들다\가 반복된다. 따라서 1:1과 2:3이 두미일치를 이루며 이 단락의 통일성을 이루어준다. 2:4 이후에 나타나는 새로운 창조기사는 천지창조가 이루어진 후, 에덴 동산을 중심으로 창조를 새롭게 조명해 준다.

    창조 기사를 다루는 부분(1:3-31)은 엄격한 패턴으로 짜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1) 명령에 대한 서론. 하나님의 창조 명령이 있기 전에 \하나님이 가라사대\(10번)라고 저자는 말하면서 창조 명령을 소개한다.

    (2) 명령. 주님의 명령이 \있으라\(8회)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주님의 뜻이 불가항력적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어둠과 혼돈이 걷히고 없었던 것들이 창조된다.

    (3) 성취. 저자는 하나님이 명령하자말자 \그렇게 되었다\고 보고한다.

    (4) 주님의 행동을 묘사. 저자는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셨다\(7회)고 묘사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여 계심을 말해준다.

    (5) 평가 혹은 승인.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드신 것들을 보시니 \좋았다\고 말씀하신다. 시인은 하나님의 평가를 인용하며 간접적으로 창조주를 찬양하고, 피조물 속에 신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6) 명명. \그리고 그가 불렀더라\(7회)는 형식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에 이름을 주심으로 통치권을 행사하시고, 모든 생물들에게 복을 주심을 말해준다.

    (7) 날에 대한 언급.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고 말하며 시간의 구조를 만드신다.



    하나님께서는 10회에 걸쳐 선언하시고, 8회나 명령하셨지만, 일곱날로 분류되어 창조가 완성된다. 수 많은 반복 때문에, 글이 단조롭게 느껴지지만, 오히려 반복을 통해 창조의 일관성과 창조질서의 견고함이 두드러져 보인다. 창조주 하나님은 마치 건축가처럼, 온 세계를 건축하시면서, 명령하고 이루며, 평가하고 이름붙인다.

    무엇보다도 첫 창조는 다른 사건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과 손길을 따라 조화롭게,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이 세상은 단순한 인과법칙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초월적이고 주권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만들어졌다.



    2. 시간 상의 구조

    천지창조 기사를 시간의 구조로 볼 때 삼일을 대칭으로 짜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의 구조를 보면, 천지창조가 땅을 중심으로 소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 빛 (3-5절) (4) 광명 (14-19절)

    (2) 물과 궁창 (6-8절) (5) 어족과 조류 (20-23절)

    (3) 땅과 채소 (9-13절) (6) 짐승과 사람(24-30절)

    (7) 안식일 (2:1-3)



    위의 구조를 볼 때, 첫 날과 네째 날, 둘째 날과 다섯째 날, 세째 날과 여섯째 날이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제 3일과 6일이 강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날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9, 11, 24, 26절)와 \그렇게 되었다\(10, 12, 25, 31)가 각 각 두번씩 나온다. 이리하여 3일과 6일은 형식적으로 서로 이어지고 있으며, 내용도 서로 어울리도록 짜여져 있다. 제 3일에 식물을 만들고, 6일에는 땅 위에 사는 동물들과 인간을 만드신다. 즉 식물을 먼저 만드시고, 동물을 지으신다. 이리하여 고정된 생명의 지원 구조(1-3일)와 그 안에서 움직이는 생물 사이에 평행이 이루어지도록 한다(4-6일).

    제 7일 안식일은 첫 삼일과 후 삼일의 대칭에서 벗어나 있다. 이제 엿새동안의 창조가 끝나며, 주님은 제 7일을 구별하시고 \거룩하다\고 선언하신다. 주님은 창조를 엿새에 걸쳐 이루시며, 제 7일에 완성하신다. 주님의 창조가 끝나는 안식일 다음날로부터, 인간의 노동은 시작된다. 그렇지만 인간의 노동은 하나님의 안식과 기쁨 속에서 시작된다.

     

    3. 공간 상의 구조

    천지창조 기사를 공간의 구조로 볼 때, \하늘과 땅\(1:1; 2:1)이 두개의 중심 축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계속 하늘에서 땅으로, 그리고 땅에서 하늘로 카메라를 움직이며 주님의 창조 사역을 비추어준다.

     

    첫째 날 하늘 (빛이 있으라)

    둘째 날 하늘 (궁창을 만드사)

    세째 날 땅 (뭍을 땅이라 칭하니라)

    네째 날 하늘 (궁창에 광명이 있으라)

    다섯째 날 땅 (물고기, 생물, 새를 창조하시니라)

    여섯째 날 땅 (육축과 사람을 만드시니라)



    위의 구조를 보면, 하늘과 땅의 수직적인 축과 바다와 지면 사이에 수평적인 축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고, 바다와 땅이 나누어지며, 각 각 고유한 영역을 만들고 있다.

    천지창조를 다루는 본 장은 구약성경에서 너무나 독특한 본문이다. 이후에 시인들(시편 8, 136, 148)과 지혜자들 (욥38-41; 잠 8:22-31)과 선지자들은 본문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신비를 각자의 정황 속에서 묵상한다. 창세기 1장의 저자 역시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위엄차게 찬양하지만, 창조에 대한 다른 사색들과 비교해 볼 때, 훨씬 스케일이 크고 웅대하다. 본 장은 꼭 \시\라고 할 수는 없으나 대단히 고양된 문체로 다듬어진 \서사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를 섬기는 특권과 축복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의 질서를 만드신 분이며, 사람을 그의 형상으로 만드신 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창세기 1장은 천지창조를 <토라>로 만든 아름다운 예술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