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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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우 |
1968년 성탄절 자정 예배 때, 아폴로 8호를 타고간 프랭크 보만 (Frank A. Borman)은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창세기 첫 장의 첫 10절을 읽으며 우리에게 성탄 메시지를 주었다. 영원한 침묵과 어둠 속에 잠긴 우주에서 들려오는 태초의 천지 창조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전율케 하였다. 그로부터 약 3년 후인 1971년 2월 5일, 아폴로 15호의 선장인 에드가 미첼 (Edgar Mitchell)은 달 나라에 가서, 성경전서를 담은 마이크로 필름을 땅에 묻었다. 그 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세기 1:1을 16개의 언어로 번역하여 함께 묻었다고 한다 (우리 말도 포함되었을까?). 사실 우리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성경 첫 장 첫 절을 읽고 들을 때마다 새롭게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이 단어 속에 바빙크 (B. Bavinck 1932)가 말한 바대로 \시간과 공간과 실체와 인과율\이라는 물리학의 4가지 기본 개념이 다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영블라드 (R. Youngblood 22)가 간파한 바와 같이, \태초에 [시간] 하나님이 하늘과 [공간] 땅을 [물질] 창조하시니라 [인과율]\의 네 개념이 나타난다. 우리는 창조 이야기를 새롭게 들으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원래 무엇을 의미했는지 살피며,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배우고자 한다. 본 장의 구조는 아래와 같다.
1.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 선언적 요약 (1:1)
2. 창조 직전의 혼돈과 공허 (1:2)
3. 창조 과정과 창조 사역 (1:3-31)
4. 창조 완성과 하나님의 안식 (2:1-3)
우리는 이 구조를 따라 창조 기사를 이해하며, 이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1:1)
앞 장에 제시된 창세기의 구조에서도 보았지만, 창세기에는 10개의 \대략\ 혹은 \사적\ (톨러도트)이 있으며, 각 단락은 이 표제로 시작한다. 그러나 첫 장에는 이런 표제가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장은 창세기 전체의 서론으로서 10개의 톨러도트를 열어주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구절은 천지 창조의 선언적 요약일 뿐 아니라 창세기 전체의 표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표제 아래에 10개의 톨러도트가 뒤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10개의 톨러도트는 모두 천지창조의 후예들이 된다. 따라서 여러 역사 비평가들이 주장하는 바 1:1-2:4 상반절까지를 한 단락으로 보고, 2:4 상반절을 첫 창조 기사의 표제로 보는 입장은 인위적인 문서설의 기준으로서 이것은 창세기의 구조를 왜곡시키는 것이다.
창세기 1:1은 창조 기사 전체의 선언적인 요약이다. 히브리어로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일곱 마디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7이라는 완전 수를 통해 하나님 창조의 완전함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일곱 마디가 담고 있는 내용은 (1) 태초에 (2) 하나님이 (3) 천지를 (4) 창조 하시니라는 네 가지이다. 이 네 가지 말씀이 모든 성경 내용의 근본이 된다. 또한 이 네 가지 말씀은 세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즉 이 세가지 질문은 아래와 같다.
(1) 세상은 언제 어떻게 생겼는가?
(2) 누가 이 세상의 주인인가?
(3) 첫 창조는 오늘 우리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러므로 1:1은 창조주를 소개하며,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고, 창조 질서와 구원사의 근본을 세우는 삼중적 목적을 가진다. 우리는 1:1에 담긴 네 가지 가르침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1) \태초에\
성경은 \태초에\라는 심오한 말씀으로 시작한다. \태초에\라는 말씀은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어준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 38:4). 우리는 이 \태초\가 정확하게 언제인지 모른다. 성경 저자도 이 때가 언제인지를 내는 데 관심은 없다. 그는 천지가 창조된 한 순간을 기억하고 있지만, 연대에는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초에\라는 말씀은 창조의 역사성을 말해준다. 우리는 창조가 언제, 어떻게 다 이루어졌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생긴 한 순간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 \태초에\는 어떤 추상적이거나 개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실체가 아니며, 바로 역사의 시작이었다. 이 역사성은 창조의 사실성을 말해주며, 우리 신앙이 역사성과 사실성을 띠고 있음을 처음부터 강조해 준다. 우리 신앙의 모든 요소와 부분은 철저하게 역사적이다. 이 역사성이 우리의 신앙 개념에서 사라질 때, 우리의 신앙은 역사적 책임은 외면하고, 몸이 없는 영혼의 세계만을 찾는 가현설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요한 복음의 저자도 \태초에\로 자신의 복음을 시작한다. 요한은 창세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로고스로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셨으며, 또한 그 자신이 하나님이었다고 말한다 (요 1:1).
2)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가 만물을 만들었기 때문에 소유하신다. 이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이방의 신들과 다른 분이다. 그는 천지와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의인화시킨 어떤 가공의 존재가 아니며, 온 세상을 설계하시고 시공하시고 완공하신 건축자 같은 인격적 존재이시다. 그는 태초 이전에 스스로 계신 분이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루터는, \하나님은 미주알 고주알 케묻기 좋아하는 자들을 벌주기 위해 스위치를 만들고 계셨다\고 대답하였다. 이제 주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온 세상을 만드신다. 이 하나님은 세상으로부터 초월해 계시며, 자존하시고, 거룩하신 인격적 존재이다.
창세기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이 창조주 하나님은 족장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열국의 신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분이시다. 열국의 신들은 우상일 뿐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이것을 예레미야가 잘 말했다.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10:11).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시 96:5).
창세기의 맥락을 넘어 오경의 맥락에서 보면, 이 창조주 하나님은 족장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바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은 \얼굴 없는 신적 존재\가 아니다. 그는 족장을 부르시고, 자기 백성을 이집트에서 속량하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분이다.
3) \천지를\
성경에서 천지는 단지 창공과 땅 만을 말하지 않는다. 히브리어에는 \우주\ (cosmos, universe)라는 말이 없기 때문에 \천지\는 \짜여진 우주\로서 모든 \만물\을 포함한다 (전 11:5; 사 44:24; 렘 10:16; 요 1:3). 달리 말하자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나왔다 (시 33:6; 히 11:3).
4) \창조하시니라\
\창조하다\ (bara)는 동사는 두개의 특징을 가진다.
(1) 하나님이 항상 이 동사의 주어이며, 인간이나 그 어떤 신도 주어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 어떤 이방신도 창조자로 성경에서 소개되고 있지 않다. 우리는 가끔 \새 역사를 창조하자\ 혹은 \새 나라를 창조하자\는 정치적인 슬로건을 내걸지만, 결코 인간은 창조할 수 없다. 인간은 \만들고\ \빚고\ \세울 수는 있지만\, \창조\는 하나님의 영역이다.
(2) 이 동사는 전치사나 목적격을 가지지 않는다. 즉 하나님은 그 어떤 기존하는 것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창조\하시지 않는다.
(3) 창조의 산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인간 (창 1:27)과 예기치 않은 새로운 것 (민 16:30; 사 65:17)이다. 이 새로운 것으로 가끔 큰 물고기 (창 1:21), 산 (암 4:13), 동물 (시 104:30)이 언급된다. 창조하다 (bara)라는 용어에 근거하여 볼 때 \무에서 유의 창조\라는 입장을 만들 수 없다. 예로서, 이스라엘의 창조 (사 43:15)와 \새 마음의 창조\ (시 51:10)에도 이 동사가 사용된다. 하나님께서 무에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입장은 다른 구절에서 명시되고 암시된다 (시 148:5; 잠 8:22-27).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용어는 막카비서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 (마카비 2서 7:2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는 하나님의 활동을 묘사하는 데만 사용되며,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자유스러운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일곱 개의 단어로 구성된 이 첫 절은 창조주와 창조의 역사성에 대해 명백한 선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절은 선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다 (Westermann, 94). 시편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할 때,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Creator of heaven and earth)로 부른다. 이 고백이 창세기 1:1에서는 동사 문장으로 바뀌어졌다. 창세기의 첫 줄 자체가 찬양의 외침일 뿐 아니라, 창세기 1장 전체가 찬양인 것이다.
2. 창조 전의 혼돈과 공허 (1:2)
1:2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땅을 준비하시기 전의 땅의 상태를 묘사한다. \그리고 땅은\이란 절은 분절 접속사절로서 3절의 주절을 이끄는 상황절이다. 따라서 2절은 3절에 있는 첫 창조 명령 직전의 땅의 상태를 묘사해 준다. 이와 유사한 구문 구조가 3:1과 4:1에도 나타난다. 1:2은 현재 우리가 사는 땅이 나타나기 전의 상태를 삼중적으로 묘사한다. 그 중 두 가지는 부정적이며, 하나는 긍정적이다. (1)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2)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3)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신다.\
첫 두 가지는 부정적인 상황이며, 세번 째는 긍정적 상황을 보여준다.
1)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혼돈과 공허\는 히브리어로 \토후 와보후\ (tohu wabohu)로서 아주 아름다운 시어이다. 이 단어는 \황량하고 텅빈\ (waste and void) 상태를 말하는 중언법 (hendiadys)이다. \황량함\은 \무\ (사29:21), 혹은 여기에서 처럼 \무질서, 혼돈\의 두 가지 개념을 갖는다. 그렇지만 성경의 \혼돈\ (tohu)은 우리가 생각하는 \마구 헝클어진\ 상태나 \혼잡한 물질 덩어리\ 상태가 아니라, 길 없는 사막이나 문명 이전의 상태를 가리킨다. 신명기 32장에서 이 단어는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하던 시간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신명기 32장10절; 욥 6:18).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면, 땅은 \거주할 수 없는 곳\ (토후)이 되며, 백성은 포로로 잡혀간다 (렘 4:23-26).
포로로 잡혀간 후 땅은 창조 이전의 상태로 묘사된다. 창세기 1:2의 \혼돈\은 창조가 완성되었을 때 이루어진 질서와 대조되는 짜여지지 않은 상태를 말해주고 있다. \공허\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질서를 만들기 전에 아무 것도 아직 존재하지 않은 \텅 빈\ 상태를 강조해 준다. 이 두 단어는 곧 보겠지만, 창조 과정의 두 중심 축을 이루어준다. 즉, 첫 삼일 동안 하나님은 \혼돈\에 대항하여 구조를 짜시고, 나머지 삼일 동안은 \공허\에 대항하여 채우신다.
문맥을 통해 볼 때에도,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어둠\이 있고, 땅은 \물로 덮여 있는 상태\이다. 이 용어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평가하시기 전의 땅의 상태를 묘사한다. 이 땅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not-yet) 상태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이전의 상태이다. 이런 점에서 2:5-6의 땅에 대한 묘사와 유사하다. 두 본문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를 묘사한다. 이것은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인간이 거주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안된 상태를 의미할 뿐이다\ (Young 28).
그렇다면, 3절에서 \빛이 있으라\는 첫 창조 명령 전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였다\는 상태는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했을까? 이 점에 대해 에드워드 J. 영은 \그 기간이 얼마나 길었는지에 대해 우리는 물론 알 길이 없다. 그러나 2절에서 볼 수 있듯이 지구의 상태는 창조되었을 때의 상태 그대로이며 하나님께서 현재의 세계와 같은 형태로 만들기 시작할 때까지 그런 상태가 계속되었다\ (26쪽)라고 말하였다.
2)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어둠이 깊음 위에 있다\라는 상황이 제시된다. 아직 빛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3절), 어둠이 온 세상을 덮고 있다. 그러나 이 때의 세상은 \깊음\에 덮여 있었다. 여기의 \깊음\은 \깊은 물\이다. \깊은 물\은 태초의 바다로서 땅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이 깊음은 항상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며 하나님의 구원사를 거스린다 (출 15:8). 여기에서 \깊음\은 바벨론의 창조 신화에 있는 티아맛 같이 독자적인 신적 존재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둠이 깊음을 싸고 있는\ 상태는 태초의 황량함을 묘사해준다. 이 상태는 곧 나타날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리고 있다. 은유적 관점에서 보면, 빛은 하나님을, 어둠은 하나님에 대해 적대적인 모든 것을 상징한다. 악한 자 (잠 2:13), 심판 (출 10:21), 죽음 (시 88:13)은 모두 어둠으로, 구원은 빛으로 묘사된다 (사 9:1). 이 어둠은 특히 사람들에게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암 5:18, 20). 깊음도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욘 2:3, 5). 그렇지만 하나님은 어둠 속에서도 다 보시며 (시 139:12), 또한 어둠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이다 (신 4:11; 5:23; 시 18:12).
3)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신다\
이제 성경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신\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을 \강한 바람\, 혹은 \하나님의 바람\, 혹은 \하나님의 숨결\ (서인석)로 번역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 혹은 야웨의 영은 단 한번도 \강한 바람\으로 사용된 적이 없고, 항상 하나님의 영으로 나타난다.
히브리어 \운행하다\ (rachap)는 시리아어에서 \알을 품다\ 혹은 \부화하다\라는 뜻을 가지므로, 김이곤은 \마치 알을 품고 있는 날짐승처럼 하나님의 창조적 영이 혼돈의 물을 품고 있었고 그 어느 것도 그분의 품에서 벗어나 있을 수는 없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은 페니시아의 창조론에 나타나는 개념이며, 창세기 1장에서는 이런 뜻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다 (Wehnam, 17참조).
이 단어는 신명기 32:11에서는 독수리가 그 새끼 위를 \너풀거린다\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 우가릿어 라하프 (rhp)도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되며 (Gordon 1965:484), 바알이 얌과 일전을 할 때, 바알의 힘찬 행동은 매가 위에서 갑자기 급습하는 영상으로 묘사된다 (Kline 1977:253, n. 7). 신명기 32장에서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에 있는 새끼 위를 \너풀거리는\ 모습은 기본적으로 자기 새끼를 지키고 보호하며 돌보는 영상을 준다. 동물들은 새끼를 낳을 때, 그 보호 본능이 강하다.
이 영상을 창세기 1:2로 가져온다면, 하나님의 신이 아직 혼돈과 공허, 깊은 물로 가득찬 세상을 지키며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여기의 동사형은 지속적인 동작을 가리키므로, 성령은 현재의 땅이 수면 위로 나타나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곳이 될 때까지, 혼돈과 공허로 뒤덮힌 땅, 깊은 어둠으로 뒤덮힌 땅을 지속적으로 지키고 있다. 마치 독수리가 새끼의 보금자리를 보호하고 준비하듯이 하나님의 신이 움직이고 있다.
워필드 (B. Warfield, 1895)는 창조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신은 구약의 최초부터 만물의 존재와 존속의 원리이시며, 모든 움직임과 질서 그리고 생명의 근원이시며 생성의 원인으로 나타난다\ (윤영탁 번역, 1985:110).
3. 창조 과정과 창조 사역 (1:3-31)
1) 천지 창조 이야기 구조
실제적인 창조과정을 담고 있는 이 단락은 아래와 같이 삼일을 대칭으로 제시되고 있다.
1. 빛
2. 물과 궁창
3. 땅과 채소
4. 광명
5. 어족과 조류
6. 짐승과 인간
7. 하나님의 안식
이 구조를 수직적인 대칭으로 보면, 첫 삼일은 주로 \나누다\와 \모으다\의 동사군을 이루어 땅의 공간적인 구조를 이루며, 나머지 삼일은 주로 \채우다\ \번성하다\ \생육하다\는 동사군을 이루어 빈 공간을 채우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리하여 1:2에 있는 \혼돈\에 \질서\를, \공허\에 \채움\을 이루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하늘과 땅은 결코 \공허한 곳\이 되지 않을 것이다.
\주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창조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bohu)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사 45:18).
위의 구조를 수평적인 대칭으로 보면, 첫째 날은 넷째 날과, 둘째 날은 다섯째 날과, 셋째 날은 여섯째 날과 대칭을 이룬다. 이리하여 \빛\은 \광명\과 이어지며, \물과 궁창\ (둘째 날)은 \어족과 조류\ (다섯째 날)와 \땅과 채소\ (셋째 날)는 \짐승과 인간\ (여섯째 날)을 위해 만들어진다.
창조의 육일 중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은 각 삼일의 절정으로 나타나며, 이 날 하나님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다른 날들과는 달리, 셋째 날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여 가라사대\가 두 번 나타나며, 여섯째 날에는 세 번 나타난다. 이리하여 3일과 6일은 형식에 있어서 서로 어울리며, 내용에 있어서도 3일에는 하나님께서 땅과 식물을 만드시고, 6일에는 땅 위에 사는 동물들과 인간을 만드시어 서로 어울리게 된다. 하나님께서 미리 \풀과 채소와 과목\을 내게 하시며, 6일에는 동물과 인간으로 먹게 하신다. 이리하여 고정된 생명의 지원 구조와 그 안에 움직이는 생물 사이에 평행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제 7일은 표준 구조에서 벗어나 있으며, 안식일 제도의 기원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나님의 안식으로 창조가 끝나는 날로부터 인간의 노동이 시작된다. 이리하여 인간의 노동은 하나님의 안식과 기쁨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엿새에 걸쳐 창조를 이루시며, 제 7일에 완성하신다. 이리하여 제 7일이 창조의 절정을 이룬다. 즉, 안식일은 창조의 절정으로, 창조를 기억하며 창조주를 기리는 날이 된다.
2) 창조의 형식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엿새라는 \날\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나, 이 여섯 날을 내부적으로 묶어주는 형식이 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1) 창조 명령 서론
\하나님이 가라사대\는 창세기 저자의 선언으로서, 모두 10회 나타난다 (1:3, 6, 9, 11, 14, 20, 24, 26, 28[그들에게 이르시되], 29). 이 열 마디의 말씀에 대해, 서인석은 \본문은 하느님으로 하여금 7일간의 긴 시간 안에 10회의 말씀을 차례대로 발설하게 하고 있다.…… 창조의 이야기에서 하느님의 후미지고도 평화로운 말씀들의 분절이 얼마나 장엄하고도 위력이 있는가를 독자들은 느껴야 한다\ (32쪽)고 말한다. 그는 이 위엄찬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을 듣고 있으며, 이 순결한 말씀이 폭력과 무질서와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2)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명령은 \있으라\는 형식으로 8회 나타난다. 서인석은 이 명령을 군사령관의 호령으로 보나, 오히려 건축자의 명령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물론 히브리인들의 창조 개념 속에는 전투 개념이 있으나, 건축 개념도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다. \있으라\는 명령은 \ (물들이) 모여라\ (9절), \나타나라\ (9절), \ (움이) 돋아나라\ (11절), \우글거려라\ (20절), \날아라\ (20절), \나오게 하라\ (24절), \다스려라\ (26절), \우리가 만들자\ (26절)는 명령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 (서인석 28쪽을 보라). 하나님의 명령은 능력이 있으며, 모든 혼돈을 질서로 바꾸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있다.
(3) 창조의 완성 형식
창조의 완성 형식으로 \있었다\ (1회)와 \그렇게 되었다\ (6회; 7, 9, 11, 15, 24, 30절)가 뒤따른다. 하나님의 창조 말씀은 불가항력적이며,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
(4) 하나님의 제작 행동
하나님의 제작 행동이 묘사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셨다\ (7, 16, 17, 25), \나누셨다\ (4, 7절), \창조하셨다\ (21, 27절), \돋아나게 하셨다\ (12절). 이 행동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돋보이게 한다. 하나님은 \창공에 두 큰 광명을 만드셨다\에서 해와 달이 신적 존재가 아니며,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분명히 한다.
(5) 평가 혹은 승인 형식
평가 혹은 승인 형식은 \좋았다\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은 좋고 선하다. 창조 이야기는 이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사실 이 구절은 1장에서 일곱번 나타난다 (4, 10, 12, 18, 21, 25, 31 [\매우 좋았다\]). 이것은 창조에 대한 승인 형식 (approval formula)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능을 갖는다. 창조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증거해 준다. \성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단어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틸리케 31).
(6) 명명 (命名) 형식
명명 형식은 \그리고 그가 불렀다\는 말씀으로 나타난다 (5회; 5[2회], 8, 10절 [2회]).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다. 또한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22, 28절).
(7) 날에 대한 언급 (6회)
날에 대한 언급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날이라\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6회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10번이나 말씀하시고, 8번 명령하시지만 일곱 날로 분류된다. 이 반복적인 구조가 천지 창조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어 문체를 단조롭게 하지만, 창조의 초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즉 천지 창조는 다른 사건과는 달리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과 손길을 따라 조화있게 또한 목적을 따라 만들어졌다. 천지는 단순한 인과법칙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솜씨로 만들어졌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로고스가 모든 창조 배후에 있으며,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의 신이 함께 일하신다. 창조에서와 같이 출애굽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하나님 말씀의 신학은 창조에서부터 시작된다.
3) 창조의 날들
(1) 첫째 날: 빛과 어둠의 구별 (1:3-5)
성경에 나오는 첫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 있으라\이다. 이 말씀과 함께 창조의 과정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첫 창조 작품인 \빛\은 창조의 첫 날에 이루어진 것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첫 창조는 하루 종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만들어졌다. 말씀을 통한 창조는 6일 노동의 패턴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빛이 있으라\는 명령 다음에, \빛이 있었다\는 실행이 뒤따른다. 이 명령이 누구에게 주어졌는지, 누가 이 명령을 실행하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이며, 그 명령을 따라 창조가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창조한 것은 빛이다. 그러나 16절이 되기까지 태양을 만든 이야기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3절의 빛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에 대해 학자들은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첫째 부류는 이런 \빛\과 \광명\을 다른 실체로 이해한다. 그들은 여기의 빛을 우주 속에 있는 빛으로서, \모든 기본적인 힘 중 가장 미묘한 것\ 혹은 \신비로 가득찬 물질\ (A. Dillmann), \가장 숭고한 요소\, \실재하는 것\, \미묘한 물질\ (H. Gunkel)로 본다. \이 빛은 제 4일에 창조된 광명체와는 구별된 것으로서, 신의 영광에 비유될 수 있다\는 김이곤의 입장은 전통적인 입장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 빛을 하나의 실체로 본다면, 측량할 수 없는 우주 속에 있는 빛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태양계 자체도 은하계 (Milky Way)라는 갤럭시에 위치해 있고, 이것은 렌즈 모양의 우주 섬을 이루고 있으며, 약 10만 광년의 거리로 추정된다. 이런 갤럭시가 우주에는 수백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시각에서 빛을 보면, 너무나 모호해진다.
두번 째 부류의 사람들은 여기의 \빛\을 태양 빛으로 본다 (Sailhammer, Youngblood). 즉 1:2에 처한 땅의 상황, 즉 \혼돈과 공허,\ 그리고 \어둠이 깊음 위에 있는\ 상황에 드디어 태양의 빛이 비친 것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다. 이 입장의 근거는 (1) 천지 창조 기사는 철저하게 땅을 중심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2) 일반적으로 해와 달과 별들은 모두 \하늘과 땅\ (1:1)에 다 포함된다. (3) 만약 우리가 1절을 창조행위로 본다면, 이미 천체는 다 만들어졌다고 보는 점들이다. 그렇다면, 3절은 태양을 만든 것을 묘사하기 보다 태양이 아침의 어둠을 깨고 나오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동트는 것이 위와 같이 묘사되었다 (창44:3; 출10:23; 느8:3).
아마 창세기 저자가 \빛\과 \광명\을 구분했을 때, 그는 의도적으로 \빛\을 모호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둘 사이에는 명백한 유사성이 있지만, 저자는 \빛\의 상징성 때문에, \광명\과 구분하였다고 볼 수 있다. 6일 창조의 틀 속에서 보면, 빛의 창조가 시작에 놓여 있으며, \빛의 창조\를 통해 다음 창조가 가능해진다. 빛은 땅의 시간 구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빛이 어둠으로부터 구별될 때, 시간의 구별이 생긴다. 빛은 시간적 구별을 위한 것이지 공간적 구별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셔서, 시간과 질서의 기본 싸이클을 만드셨다.
이 빛의 상징성 때문에, 이후 이사야 선지자는 빛이 태초의 어둠을 뚫고 하나님의 첫 축복의 여명을 알리신 것처럼, 새 구원의 시대를 빛이 어둠을 부수는 것으로 묘사한다 (사 8:22-9:2; 마 4:13-17; 요 1:5, 8-9). 사도 바울도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빛이 어둠을 깨고 비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고후 4:6; 요일 1:5; 계 21:23 참조).
(2) 둘째 날: 창공과 바다의 구별 (1:6-8)
개역 성경에서 \궁창\으로 번역한 단어는 라틴어 (firmamentum, 단단하게 만들어진 것)에서 나온 것으로, 마치 하늘에 단단한 물체가 있는 것 같은 잘못된 인상을 준다. 그렇지만 8절에서는 \하늘\ (sky, \창공\; 표준번역)로 번역된다. 또한 14절에서 \궁창에는 광명이 있으며, 이곳은 새들이 날아다니는 곳\으로 그려지므로 (20절), \창공\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창세기 7장에서는 \창공의 문들\이 열려 비가 쏟아진다 (7:11-12; 시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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