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한국신학정보연구원
로그인 회원가입
  • 색인초록 DB
  • 역사속의 명설교
  • 색인초록 DB

    역사속의 명설교

    에덴의 동쪽 마을 이야기 II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창4:1-26 | 설교자: 김정우

    본문

    창세기 강해

     

    에덴의 동쪽 마을 이야기 II


     

    김정우




    인류 역사의 여명에 에덴의 동쪽 마을에서 형이 동생을 처음으로 살해한 그 끔직한 사건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가인의 이야기를 보면, 죄의식과 두려움 속에 살던 그는 자신의 추억이 어린 동네를 떠나 \놋\이란 땅으로 간다(4:17). 여기에서 \놋\이란 말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가인은 \놋 땅\ 즉 \방랑의 땅\에서 살고 있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자신 보다 더 우월해 보이는 동생을 제거한 후 그가 명실상부한 \장자\와 \상속자\가 되어 더 큰 자신의 세계가 구축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는 \방랑자\가 되어 방랑자의 땅에서 살고 있다. 그의 거처는 결코 항구적이 되지 못하며 그는 여기 저기로 떠돌아다니고 있다. 세월이 지나 가인은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으며, 그의 첫 아들을 \에녹\으로 이름 짓는다.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4:17, 개역개정). 아마 가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성을 세운 후, 그것을 봉헌한다는 뜻으로 그의 아들의 이름을 \에녹\으로 지은 것 같다. \방랑자\가 \성\을 세운 것은 아이러니이다. 아마 자신을 은폐하기 위하여, 혹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을 세울 결심을 한 것 같다. 가인의 \성\은 열린 성으로서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성으로 세워진 듯 하다.

    이런 가인의 성은 사람들이 함께 자유롭게 시민으로 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혹시 첫 살인자의 살기가 감도는 성 안에는 \집단적인 폭력과 살인 충동\이 머물고 있지는 않을까? 가인은 세상에서 처음으로 성을 세우지만, 그의 성은 어떤 공간이 될까?

    흥미롭게도 가인의 성에는 많은 후손들이 태어나며, 그곳에서 문화가 꽃피고 있다. 특히 문화의 창달은 가인계통으로 볼 때 아담의 7대 손인 라멕의 세 아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라멕은 최초의 일부 다처주의자로서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으며, 그의 첫 아내인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그의 두번째 아내인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 (\날카로운 기계\; 개역)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고 한다(4:20-22).

    즉, 가인의 도시에 문화가 꽃피며 농사는 야발로(20절), 음악과 예술은 유발로(21절), 기계는 두발-가인으로(22절), 법은 라멕(23-24)으로 발전하고 있다. 라멕의 세 아들인 야발, 유발, 두발-가인은 다 비슷한 이름으로서 모두 \야발\ 즉 \생산하다, 가져오다, 이끌다, 인도하다\라는 어근에서 나왔다. 이들은 다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실용적인 것으로 이끌어 내는 통찰과 능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흥미롭게도 예술이 살인자의 활력과 연관된다. 프로이드는 \욕망과 문화\에 대해 쓰면서, 욕망이 없는 문화는 없으며, 욕망이 순환되고 다스려지지 않는 문화가 없다고 보았다(서인석?). 따라서 예술과 도시 배후에 7절의 \욕망\이 있다. 가인의 가족은 드디어 욕망을 \다스리기\ 시작한 것 같다. 라멕의 딸 중 하나인 나아마는 \귀여운, 아름다운\이란 뜻이다. 나아마는 가인의 성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문화와 예술이 가인의 원죄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과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이 본문에서 벌써 청동과 철이 나타나는 점이 해석자들에게 어려움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청동제품은 주전 3500년으로, 철제품은 18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주전 1200년경부터 힛타이트 족속이 철기 문화를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따라서 학자들은 (1) 아담을 상대적으로 후기의 인류로 보든지, (2) 초기의 청동과 철기 제련 방법이 잊혀졌다가 훨씬 후기에 새롭게 발견되었든지, (3) 여기에 기록된 가인의 계통은 꼭 직계가 아니라 수많은 세대를 포함하여 긴 세대로 해석하기도 한다(Youngblood 70). 두번째와 세번째의 해석이 신빙성 있어 보인다.

    가인의 후손들 이야기는 \검가\ 혹은 \복수가\로 알려진 라멕의 짧은 시로 갑작스럽게 끝난다. 라멕은 자신의 두 아내를 부르며, 자신이 얼마나 잔인한 보복을 하였는지 자랑하고 있다. \라멕\은 원래 \강한 젊은 이\라는 뜻이며, \아다\는 \장식품\, \씰라\는 \그림자\, 혹은 \짤랑짤랑\처럼 여성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Cassuto 234). 이렇게 보면 \아다\와 \씰라\는 여성의 아름다운 얼굴과 매혹적인 소리를 상징해 준다(아가 2:14에는 \얼굴\과 \소리\가 쌍을 이룬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이 라멕의 검가는 완전한 히브리시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평행법과 강력한 영상과 숫자의 병행(x와 x+1)이 나타나지만, 내용은 야만적이기 짝이 없다.

    라멕은 조그만 \창상\을 당했지만 그에 대한 보복으로 \살해\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조그만 \상처\를 입은 것에 대한 보복으로 \생명을 빼앗는다.\ 그것도 당당한 용사들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내가 사람\을 죽였는데, 구체적으로 그 사람은 바로 \소년\이었다. 라멕은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를 반대하고 대적하는 자에 대한 노기로 가득 차 있다. 혹은 우리가 \인하여\(le)라는 전치사를 \하자 말자\로 번역한다면, \내가 때리자 말자, 나는 사람을 죽였고, 내가 상처를 주자 말자, 소년은 죽었다\가 된다(Cassuto 240). 그렇다면 라멕은 자신의 아내들에게 자신의 팔뚝이 얼마나 굵은지를 자랑하고 있다. \내가 잽만 먹여도 죽고, 훅만 넣어도 숨이 끊어진다.\

    그는 자신의 잔인한 살인을 아내들에게 뽐내고 있다. 나아가 라멕은 어떤 도전과 복수도 자신이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가인의 예를 들어 뽐내고 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24절). 인류의 첫 살인자 가인이 세운 성에는 농업과 목축과 음악과 예술과 각종 산업이 발전하고 있지만, 이 문화는 근본적으로 그 창시자가 \여호와의 앞을 떠나\ 세운 것이므로(4:16), 생명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가치가 없다.

    가인의 성에는 억제되지 않은 살인 충동이 분출하며, 끝이 없는 복수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소외되며 인간성은 파괴되고, 이 세상은 무서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을 준다. 라멕의 자랑은 가인 성과 그 문화를 기초부터 흔들고 있다.



    5. 하나님의 새로운 복(4:25-26)



    우리는 천지 창조 직후의 이야기(2:4-4:26)에서 그동안 (1) 에덴 동산 이야기 (2:5-25)와 (2) 인간의 타락 이야기(3:1-24)와 (3) 가인과 아벨 이야기(4:1-16)와 (4) 가인의 후예들 이야기(4:17-26)를 보았다. 창세기의 저자는 이 이야기의 끝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짤막한 이야기를 전하며 전체적인 이야기를 정리하고 새로운 준비를 한다.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사는 새로운 아들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라\(25절).

    여기에서 하와의 태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하와는 \가인\을 낳고 \나도 여호와처럼 창조자가 되었다\고 자랑했으나, 이제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고 고백한다(여기에서 \내게\는 하와를 가리킨다). 즉 4장을 시작하는 말, \내가 득남하였다\와 \하나님이 내게 다른 씨를 주셨다\ 사이에 강한 대조가 있다.

    여기에서 히브리어로 \셋\은 \주어진다\(granted)는 뜻이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자신이 낳은 것 보다 훨씬 더 좋다. 특히 하와는 셋이 가인을 대치한다고 말하지 않고, 아벨을 대신한다고 말한다. 가인은 장자이지만, 축복을 상속하지 못하고, 동생이 한다. 하나님께서 아벨을 대신하여 다른 \씨\를 주신 것이다.

    가인의 족보와 그 파괴적인 절정과 대조적으로, 새로운 희망이 한 씨를 통해 주어진다. 가인의 성과 문화에 대안적인 역사가 셋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셋과 그의 후손 시대로부터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한다(4:26; 12:8; 13:4; 26:25). 더 이상 물질문명이 아니라, 순교자의 피로 이어지는 참된 경건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 이후로부터 인류의 흐름은 가인 계통으로 추적되지 않는다. 그의 족보는 라멕으로 끝난다. 이제부터는 셋으로 이어진다. 새 생명이 셋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와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의지한다(26절).





    V. 아담의 후손들 이야기(5:1-6:8)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라는 제 5장의 서문형식은 창세기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천지의 대략이 이러하니라\(2:4)는 서문에 이어 두번째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새로운 이야기가 5:32에서 마친다고 생각하나,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가 나타나는 6:9 바로 앞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Cassuto). 사실 5:32은 이 이야기의 끝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왜냐하면 5장의 이야기는 족장들이 얼마나 살았는지만 말해주고 별 내용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6:8)는 좋은 마무리를 해준다.

    이것은 바로 앞에서 창세기의 저자가 하나님의 심판의 불가피성을 말씀하면서도 늘 끝에 가서는 하나님의 구원사의 새로운 계획을 늘 말하면서 마치는 것과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아담의 후손들 이야기(5:1-6:8)는 (1) 아담의 10대 손들(5:1-32), (2)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빗나간 결혼(6:1-4) 그리고 (3) 홍수 전야(6:5-8)의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1. 아담의 10대 손들(5:1-32)



    1) 서문(5:1-3)



    이 서문은 독자들로 하여금 창세기 첫 장의 천지창조(1:1-2:3) 중 남녀의 창조(1:26-27)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첫 인간 창조에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으며, 이제 아담이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는다.\ 또한 이 서문은 출생과 작명의 패턴을 따라, 4장 마지막 부분(25-26)과 이어진다.

    첫 부모가 자기 아들들의 이름을 지은 것 같이, 5장의 서문에서는 하나님이 아담의 이름을 짓고, 아담은 그의 아들 셋의 이름을 짓는다. 나아가 마치 하나님이 아버지처럼 아담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은 것 같이, 아담은 \자기 모양대로 아들을 낳는다.\ 이리하여 아담은 셋의 아버지이며, 셋은 에노쉬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이들 모두의 아버지가 되신다. 이후의 창세기에 나오는 족보들을 보면, (1)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며(10장), (2) 하나님은 특히 아브라함과 그의 씨의 아버지이다(11장). 또한 창세기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축복하시는 주제로 돌아간다(1:28; 5:2).

    마치 아비가 자식을 돌보며 축복하듯이(창 9:26-27; 27:27; 48:15; 49:29), 하나님께서 계속 인류를 돌보시며 아담에게 주신 첫 복을 다음 세대로 넘겨 주신다(1:28; 5:1; 9:1; 12:3; 24:11). 마치 하나님은 인자하신 아버지처럼, 자신의 모든 복을 후손에게 넘겨주신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며 온 땅에 충만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시려던 원래의 계획은 인간의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씨(3:15), 아브라함의 씨(12:3), \유다 지파의 사자\ (49:8-12; 계 5:5-13)를 통해 이어져 간다. 바로 이 기초 위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하여 \우리를 복 주시고\ (엡 1:3), \우리를 그의 양자로 삼으시고\ (1:5), 우리로 \기업을 얻게 하시며\(1:11), 우리로 그를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한다(롬 8:15)고 말한다.



    2) 족보의 구조



    가인과 라멕의 교만과 폭력의 족보가 끝나고 이제 셋을 통한 새로운 족보가 시작된다. 이들 중 10명의 유명한 사람들은 아래와 같다(5:1-32)




    성경본문
    족장

    성경본문
    족장

    1
    5:1-5
    아담
    6
    5:18-20
    야렛

    2
    5:6-8

    7
    5:21-24
    에녹

    3
    5:9-11
    에노스
    8
    5:25-27
    므두셀라

    4
    5:12-14
    게난
    9
    5:28-31
    라멕

    5
    5:15-17
    마할랄렐
    10
    5:32
    노아




    먼저 아담에서 셋을 통해 흐르는 족보는 바로 앞 장에 나타난 가인의 족보와 그 이름에 있어서 유사성이 많다. 즉 (1) 가인(4:17)과 게난(5:12), (2) 이랏(4:18)과 야렛(5:18), (3) 므후야엘(4:18)과 마할랄렐(5:12), (4) 므드사엘(4:18)과 므두셀라(5:21)는 발음이 비슷하다. 또한 가인의 후예에도 에녹(4:17)과 라멕(4:18)이 있듯이 셋의 후예에도 에녹(5:21)과 라멕(5:28)이 있다. 그러나 이름이 비슷하거나 같다고 같은 인생을 사는 것 같지 않다. 이들은 전혀 다른 역사를 만들고 있다.



    3) 족보의 수사학적 메시지



    위에 나타나는 족보는 대단히 선별적이며 일정한 패턴을 따라 체계적으로 주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틀과 그 변화를 통해 저자는 수사학적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먼저 저자는 족장들을 아래와 같은 형식으로 소개해 간다.



    (1) A는 X세에 B를 낳았다.

    (2) A는 B를 낳은 후 Y년을 살며 자녀들을 낳았다.

    (3) A는 X+Y세를 살고 죽었다.



    이런 틀에서 보면 저자는 다음과 같은 강조를 하고 있다.



    (1) \그가 죽었더라\



    5장에 있는 족보는 11:1-26에 있는 셈의 족보와 형식에 있어서 거의 일치한다.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5장에서는 각 사람을 소개하고 \그가 죽었더라\는 구를 지루할 정도로 첨가해 간다. 왜 저자는 이 족장들의 죽음을 강조해야 되었을까?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무리 훌륭하게 살아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3:19).



    (2)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 가시므로 있지 아니하였더라\



    모든 사람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에녹에 대한 소개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다\는 독특한 말씀이 나타난다(24절).

    즉, 저자는 에녹의 예외를 강조하기 위해 각 족장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에녹은 \죽음\이란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왜 에녹은 예외였을까? 저자는 반복하여,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22, 24절)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다\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는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말한다(6:9).

    즉 에녹은 죽음의 저주 속에서 생명을 찾은 자요 아담의 운명을 벗어난 자의 예증이다. 아담과 그 후손의 죽음에 대한 선언은 최종적이 아님을 에녹을 통해 저자는 발견하고 있다. 즉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 생명나무에로의 길이 열려 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여\ 그 길을 찾았다. 저자는 이 주제를 17장에서 다시 다룬다. \내 앞에 행하고 온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너와 세우리라\(17:1-2).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생명에로의 길이다.

    모세는 광야에 있는 백성들에게 \내가 생명과 축복, 죽음과 멸망을 너희 앞에 둔다\ (신 30:15-16)고 말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법칙 몇 개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시내산에서 준 율법과 더 나은 미래의 길을 바라보고 있다(신 30:5-16). 에녹(5:22), 노아(6:9), 아브라함(15:6)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따라 산 자들이다.



    (3)노아



    가인계의 라멕(창 4:23-24)과 달리 셋의 후손 라멕(5:28-31)은 세상에 임하는 저주를 느낀다. 경건한 라멕은 그러나 위로의 때를 사모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이 이 저주로부터 구원을 가져올 것을 바라본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5:29).

    셋 가문의 역사를 도표로 볼 때, 그 절정은 노아에게 있으며 이 이야기는 결국 다음에 나올 홍수 심판을 향해 이야기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앞에 있는 가인의 족보(4장)와 여기 있는 셋의 족보(5장)는 첫 타락(3장)과 홍수 심판(6:9 이하) 사이에 들어와 \타락과 심판\의 관계를 설정해 줄 뿐 아니라, 이 심판의 파국으로 치닫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주님의 구원 역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즉, 5장의 족보는 홍수 이야기를 제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짜여졌다. 홍수 이야기는 두개의 족보 사이에 주어지고 있다(5:32; 9:28, 29). 노아는 수고로이 일하는 인간들에게 위로를 줄 것이다(5:29). 8:21을 보면, 노아가 가져오는 위로는 방주 안에서 인류를 보전하는 것일 뿐 아니라, 홍수 후에 제사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노아는 미래에 인류를 파멸시키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게 하며 새로운 인류를 이루어 가는 조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