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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아모스 강해 / 사자의 울부짖음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암 1:1-2 | 설교자: 김태훈

    본문

    아모스 강해

     

    사자의 울부짖음
    (암 1:1-2)




    1. 서론

    아모스서1)는 주전 8세기 예언자(預言者)2) 아모스에 의해 선포된 말씀들과 그의 활동을 기록한 모두 아홉 장 146절(히브리어 성경) 약 2050단어로3) 이루어진 조그만 책이다. 그래서 \소예언서 (minor prophet)\라고 불려진다. \소\자를 붙인 이유는 질적인 면에서 떨어진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대예언서인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에 비해서 양이 적다는 뜻에서다. 아모스는 \문서 예언자(writing prophet)\라고도 불려진다. 이 용어는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중 그들의 이름이 붙은 책을 남겨놓지 않은 (예, 엘리야) 예언자들과 구별하기 위해 쓰인다.

    아모스서는 \처음\이란 말과 함께 잘 쓰이는 성경이다. 아모스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물론 정치적 종교적 지도층) 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을 비난한 첫 번째 예언서이다. 아모스서의 사회 비난은 전 구약 성경을 통틀어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 \여호와의 날\이란 용어도 아모스서에서 처음 나타난다.

    아모스서는 이스라엘 예언 현상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아모스서는 예언을 글로 남긴 최초의 책이다. 아모스서는 지난 수십 년 간 위의 어떤 다른 책보다 더 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통계가 이 사실을 말해준다. 아드리안 반 데어 봘(Adrian van der Wal)이 1986년에 펴낸 아모스서 참고문헌에 따르면 아모스서와 관계된 연구로서 1800 이후 1986년까지 약 1600가지의 책이나 논문들이 나왔다고 한다(Hasel 26). 1986년 이후에도 수백 가지 이상의 글들이 나왔다. 이것은 아모스서가 얼마나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4)


    아모스서는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1. 머리말(1:1) : 첫 절에 그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언제 예언을 했는지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가 기술되어 있다.
    2. 주제(1:2) : 여호와의 부르짖음.
    3. 첫 번째 예언(1:3-2:16) : 이 부분은 나라들에 대한 여덟 개의 신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며 여기에는 유다와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다.
    4. 두 번째 예언(3:1-6:14) : 아모스의 예언의 말씀들과 그가 본 비전(vision)들로 이루어져 있다.
    5. 나머지 부분(7:1-9:15) : 아모스의 비전(7:1-9; 8:1-9:6)
    자서전적 보고(7:10-17)
    구원에 관한 예언의 말씀(9:7-15)


    2. 주석



    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1절은 아모스서 전체의 개요로 볼 수 있다. 히브리 성경의 순서에 따르면 이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것이 소개된다. 어떤 형식으로 메시지가 전달되었는지(말씀), 누가 그 말씀을 선포했는지(아모스), 그는 어디서 무엇을 하다 온 사람인지(드고아 목자 중), 전할 메시지를 어떻게 받았는지(묵시 받은), 무엇에 대한 것인지 혹은 누구를 향한(이스라엘) 것인지가 소개된다. 아모스가 선포한 말씀은 대상이 있는데 그 대상은 특수한 대상이다. 이스라엘이라는 특정한 국가 혹은 사회, 그리고 웃시야가 유다를 다스리고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선포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는 그 지진 이년 전에 아모스의 말씀 혹은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1) 말씀(드바림)

    이 단어는 아모스서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아모스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스라엘에게 선포한 말씀들을 수집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입과 관련된 말씀을 넘어간다.
    히브리어 드바르는 말씀을 뜻하기도 하고 사건을 뜻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하는 선지자의 삶은 그 자체가 또한 하나의 사건(다바르)이며 말씀이다. 예를 들어 호세아가 고멜과 결혼한 것은 말(saying)은 아니지만 분명히 그 결혼을 통해 즉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 사건은 말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말을 통한 메시지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잘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말이 아니라 사건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사랑과 심판의 말씀이다. 아모스는 선포하라고 부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선포를 위한 그의 순종과 위험한 대면들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 부름 받은 자는 그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은 마이크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전할 사람을 부른 것이다.

    2) 목자(노케드)


    노케드의 사전적 뜻은 \양이나 염소 떼를 치는 사람\이다.5) 학자들은 이 단어에서 아모스의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를 찾아보려고 노력해 왔다. 정말 문자 그대로 목자인지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짐승들을 쳤는지 사회적 지위는 어느 정도였는지 하는 의문에 대답을 해 보려고 했다. 어떤 이는 아카드어와 관련시켜 성전과 관련 있는 2급 관리로, 어떤 이는 모압 비문과 관련시켜 성전에서 일했던 어떤 직책으로 보았다.6)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이나 드고아 성소에 양떼, 염소 떼를 기르는 직책이 따로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 같은 어근의 단어가 다른 나라에도 있었고 그런 이름을 가진 직책이 있었다는 것 외에, 아모스도 그들과 같은 직책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모스 자신은 7장 14절에서 그가 양 떼를 따르고 있었다고 한다. 사무엘하 7장 8절은 하나님이 다윗을 \양을 따르는 데서\ 취했다고 기록한다. 다윗이 목자였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거의 없듯, 아모스의 말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음 문제는 목자라고 할 때도 경제적으로 어떤 층에 속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열왕기하 3장 4절이 증거 본문이 될 수 있을까?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노케드)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굉장한 목자이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노케드라고 해서 다 부자가 아니라 왕인 노케드가 부자일 뿐이다. 우리는 아모스가 그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던 사람인지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다른 예언자들의 경우에서 보듯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이다.7)
    하나님의 종은 어디에나 있고 하나님은 양 가운데서도 그 분의 종을 찾아내시는 분이다.

    3) 드고아


    드고아는 예루살렘 바로 밑에 있는 마을이다. 지리적으로 남 왕국에 소속되어 있다. 7장 12절의 아마샤의 말도 아모스가 남쪽에서 온 사람임을 암시한다. 왜 남쪽 사람이 북쪽 나라에서 예언을 하는가? 북쪽에는 사람이 없었는가? 우리가 말 할 수 있는 것은 두 나라가 정치적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여호와의 주되심은 사람이 만든 정치적 경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로보암이 다윗 왕가와 금을 긋고 종교적으로도 새로운 국가 혹은 예배를 만들어 새 나라라고 주장해도 이스라엘의 주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이다. 관할권은 그 분에게 있다. 하나님은 그의 종 아모스를 시켜 그의 나라 이스라엘에 대해 선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주인은 사마리아의 자칭 지도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4) 묵시 받은


    \묵시 받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자이다. 하자의 뜻은 \보다\다. 그러나 이것은 누군가가 무엇을 볼 수 있었다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아무나 볼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 주는 것을 보았다는 뜻에서 \보다\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의 하자는 예언자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며 계시적 만남을 표현하는 단어이다.8)
    예언자들은 미래학자들처럼 세상의 앞날을 통계학적으로 내다보아 진단하는 것도 아니고, 특수한 능력이 있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받은 것을 말하는 사람이다. 목자이며 드고아 촌에 사는 아모스가 어떻게 사회의 감추어진 현실을, 또한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가? 그는 그가 가진 정보의 양과 질을 통해 될 일을 알았을까? 그는 강대국 앗시리아의 군사력과 서방 정책을 판단한 것인가? 아니다. 그는 받은 것을 말하며 볼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 주시므로 선포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목자도(아모스) 왕족도(이사야) 시골의 장로(미가)도 예언자가 된다. 아모스도 역시 본 사람이다(7:1-9; 8:1-3; 9:1-4). 예언자는 전달자다. 예언자는 하나님이 보여준 것을 말하는 사람이다.


    5) 지진


    지진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퍽 인상적인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가랴 14장 5절도 이 지진을 언급하고 있다: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웃시야 시대의 지진은 사람들에게 심판의 한 상징으로 각인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하솔의 발굴로부터 이 지진이 760년 경 일어났다고 결론 짓는다.9) 그렇다면 아모스의 예언 활동도 760년경이 될 것이다.

    6)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가. 정치 및 경제

    이 두 왕의 시대를 가르켜 필립 킹(Philip J. King)은 이스라엘의 “황금기”였다고 하며10) 마틴 노트(Martin Noth)는 이 시대를, 물질적 능력 면에서나 경제적 번영 면에서나 영토의 넓이 면에서 최고점에 도달했던 “이스라엘 역사의 은빛 시대(the Silver Age of Israelite history)”라고 평가한 바 있다.11) 주전 8세기 처음 50년 간 두 나라는 정치적 파워와 경제적 부라는 측면에서 최고점을 구가했으면 다윗-솔로몬 시대의 영광의 시대를 재연하고 있었다.
    여로보암 2세와 웃시야는 주변의 적국들을 굴복시키고 영토를 확장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자신들의 국토 너머로 끼치고 있었다. 정치 외교적인 성공은 국내적으로도 안영(安榮)을 가져다 주었다. 누가 이 시대를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시대라고 생각했을까? 아모스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의 실상을 보고 있었다.


    나. 종교

    그 시대의 종교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누가 번영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르고 있었고 열심히 종교 생활했고 그들은 성소를 찾아다니며 예언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많은 것을 단에 드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열심인 종교 생활도 그들이 누리는 부도 하나님이 자신들의 행위에 복을 준 결과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받을 만한 것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를 남용하며 선택된 백성의 불멸성을 믿고 있었다. 마치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가 기대했던 것처럼.


    다. 하나님의 평가

    그러나 아모스를 통한 하나님의 평가는 달랐다. 지도자들의 모토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금고를 채우고(2:6-8; 8:4-6) 최고로 호화롭게 먹고 놀자(암 6:4-6)\는 것이었다. 정의는 굽어지고(5:10-13) 힘없는 사람들은 착취되고 팔려 갔다(2:6-7; 4:1-2). 예배는 규모 있고 사람으로 가득 했으나 오직 형식뿐인 예배, 예배자 자신이 받아들여질 만한 예물이 아닌 그런 예배였다. 의도 없고 인도 없는 그런 예배였다. 그런 예배는, 그런 사람은, 그런 민족은 거부된다(6:21).


    라. 착각

    안타까운 사실은 하나님 외에는 오직 후대의 사람만이 시대를 바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대의 이스라엘 그리고 유다 사람들은 오직 자신들의 외적 성공만 보았을 뿐 주변을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심령을 보지 못하고 자기 사회 내부에 있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거나 외면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하나님을 바로 보는 것에 전적으로 실패했다. 그들은 평안했다. 그러나 주위에는 애굽과 앗시리아가 있었다. 그들은 항상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헤게모니를 위하여 시리아-팔레스틴이라고 하는 교역로를 탐내고 있었다.


    마. 앗시리아

    하나님 심판의 도구는 앗시리아였다. 그들은 누구인가? 앗시리아 제국은 현재의 이란과 이랔을 지배했던 군사적 강국이다. 그들은 주전 9세기에서 7세기에 고대 근동의 경제와 정치를 조정했던 초강국이었다. 그들의 경제는 국내 생산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 주변 국가로부터의 주기적인 헌납으로 유지되었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국가들에 대하여는 군사적 침공으로 철저한 파괴와 함께 국가를 없애버리거나 자신들의 위성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은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위해 늘 이스라엘과 유다가 위치했던 시리아-팔레스틴 지방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어했다. 그들의 잔인성은 하나의 정책으로서 주변 국가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함락당한 성들의 주민이나 지도자들의 목을 잘라 장대에 걸어 많은 사람이 보게 하거나 껍질을 벗겨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아슈르바니팔 II(Ashurbanipal II, 883-859 BC)는 자신의 잔인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나에게 반란을 일으켰던 많은 귀인들의 껍질을 벗기고 시체더미 위에다가 그들의 껍질을 늘어 놓았다. 일부는 더미 위에 그냥 펴놓았고 일부는 더미 위에 장대를 세우고 걸어놓았다. …벽에다가 껍질을 늘어놓기도 했다.\12) 이스라엘의 운명은 앗시리아인들의 형편에 달려 있었다. 그들은 여로보암 2세와 웃시야 왕 당시에 잠깐 숨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가지 않아 티글랏-필에셀 III(Tiglath-Pileser III, 744-727 BC)는 대규모 시리아-팔레스틴 침공에 나서고 그의 후계자인 샬만에셀 V(Shalmaneser V, 727-722 BC)은 삼년 간의 포위 끝에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함락하며(왕하 17:1-6)13) 사르곤 II(Sargon II, 722-705 BC)은 720년 재차 사마리아를 침공하여 완전히 파괴하고 자신의 지방으로 귀속시킨다. 주민들도 강제로 이송되어 땅은 옛 땅이나 주민은 딴 사람들이 살게 된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앗시리아가 아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이 의지해야 하는 것은 자신들의 부가 아니라 하나님이며 두려워 해야할 것은 앗시리아가 아니라 앗시리아를 움직이는 하나님이다.



    1:2 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1장 1절이 전체 예언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이 구절은 아모스의 예언의 내용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여호와로 말미암는 멸망이 두 개의 동어적 평행문 (synonymous parallelism)으로 표현되며 이 두 평행문은 장소의 이동(\시온\에서 \갈멜)\으로 연결된다.


    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으며
    예루살렘에서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혹은 시들며)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1) 여호와께서


    아모스가 주는 말씀(1절)의 첫 단어는 여호와다.14) 아모스의 예언은 듣는 자들에게 긴장감을 가져다준다. 첫마디가 \여호와\다. 최상급의 단어이다. 아모스는 누구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가? 여호와의 말씀, 이스라엘의 종교가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며, 지도자들의 지도자이며, 오늘의 부귀영화를 주신 분이라고 이스라엘의 지도층들이 고백하는 바로 여호와 그 분의 말씀이다. 그들에게는 그 이름은 낯익은 이름이며, 그들의 생각에는 부담 없이 자기 식의 삶을 살아온 것에서 알 수 있듯, 친근하고 부드럽고 자비로운 음성을 가진 분이다.


    2) 부르짖으며


    그런데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여호와는 보호자가 아니라 공격자이다. 여호와는 복을 유지시키는 분이 아니라 심판을 하는 분이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부드러운 친구로 생각했으나 그 분은 이스라엘에게 갑자기 젊은 사자처럼 덮친다. 이스라엘의 기대는 사자의 울부짖음에서 무너진다. 여호와라는 이름에 안심한 사람들은 그 부르짖음의 소리에 놀란다.


    3) 초장도 산정(山頂)도


    여호와의 부르짖는 소리는 초장에 통곡소리를 일으킨다. 여호와의 부르짖음은 자연도 피할 수 없다. 목자의 기름진 초장도 울창한 갈멜산 꼭대기도 예외는 아니다. 초장에서 산정까지, 낮은 곳에서 높은 곳까지, 풀도 나무도, 모든 풍요는 한 부르짖음에 떠난다. \애통하며\에 해당하는 단어는 아발이다. 아발은 다른 뜻도 가지는데 그것은 \시들다\이다. 여호와는 사자처럼 큰 소리로 외치고 초장은 떨며 운다(아발). 그러나 아발\은 또한 뒤의 단어 야베쉬(\마르다\)와 평행하여 \시들다\가 된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부르짖을 때 초장은 애통하며(아발) 산정이 마르듯 초장도 시든다(아발). \마르다\는 문자 그대로의 뜻을 넘어 여호와의 진노를 표현하기 위해 자주 이용되는 주제다(예. 사 5:6; 11:15; 19:7ff; 42:15; 렘 12:4, 등). 이 \마름\은 완전한 파멸을 나타내며 종말론적 차원을 가진다.15)


    3. 설교를 위한 제언


    1) 전하는 자는 먼저 듣는 자이다.


    (1) 전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들어야 한다. 아모스는 생애를 던져 선포한 사람이다. 열심도 대단했다. 환경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전하기 전에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자였다. 아모스는 사회 진단자도, 미래학자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였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할 수 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참된 종이다. 듣지 않은 아모스가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설교할 수 있는가?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의 차이는 하나님의 것으로 선포하느냐 아니면 자기 것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포하느냐에 달려 있다.
    (2) 들은 자는 순종해야 한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그는 나가지 않았다. 그의 생애에 손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들은 것은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선포 자체가 삶의 결단이다.
    예언의 청취자는 그러므로 언제나 최소한 두 사람이다. 첫째 예언자 자신이 들은 후 전할 것을 결단해야 한다. 둘째, 예언자의 말씀을 듣게 되는 사람이다. 말씀을 받은 자는 그 말씀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가장 먼저의 순종은 전하는 자에게 요구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백성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선포자도 실패자이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는 전하기 전에 먼저 듣고 먼저 순종한 자이다.


    2) 무엇도 선포하는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면 무엇이든 선포해야 한다. 주전 8세기 풍요의 시대에 어떤 예언자가 나타났다면 우리는 그가 무엇을 말했을 것으로 기대하는가? 감사하자는 말을? 나누고 살자는 말을?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대단히 곤란한 것을 선포하게 하셨다. 이스라엘 지도층에 심판과 국가의 파멸을 선포하게 했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아모스는 심판을 선포했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반대였다. 늘 반대로 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예민할 필요는 있다. 하나님은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를 불렀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좋은 시절에 경고와 심판,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란 주제는 그의 백성들로 안전한 길을 결심하게 한다. 사랑은 매를 포함한다. 사랑의 하나님은 어떤 때는 무서운 얼굴을 가진 분이다.


    3) 말씀으로 시대를 분별하라.


    아모스는 불과 죽음을 선포한 선지자였다. 그에게 오늘날 우리가 불의 사자라든가 불의 종이라고 부르는 그런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얻어야 하는 능력의 불을 선포한 것도 아니다. 그가 선포한 불은 심판이다. 귀한 것, 아껴 쌓아 놓은 것, 호화로운 건물, 그 모든 것을 태우고 녹여버리고 쓸어버리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잃게 된다고 하는 심판의 불을 그는 선포했다.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 불타는 도성, 사람들이 갈고리에 꿰어져 포로로 잡혀가고(4:2) 심지어는 민족과 국가의 역사가 막을 내리는 장면을 그의 선포 속에서 우리는 볼 수 있다(8:2).
    민족이 사라진다고? 그것은 대규모의 학살이 일어난다는 말이 아닌가? 코소보 사태를 보고 르완다의 인종 청소를 보면서 우리는 이 말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폭력, 피, 살인, 도살이 아닌가? 아무런 방어가 없는 사람들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국가가 없어진다고? 전쟁이 일어나고 대량학살 후 삶의 터전도 전통도, 심지어 신앙마저 중단되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말인가? 그렇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를 통해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절망적인 심판을 선포하였다.
    하나님의 심판 선포를 들어야 할 사람들은 그 말을 곧이 듣지 않았다. 그것을 믿기에는 그들의 삶이 너무 평화로웠다. 아모스, 그는 누군가? 평화시에 전쟁을 말하는 사람은 소외자이거나 방해자가 아닌가? 안락한 삶에 핏방울을 튀기는 설교를 하는 사람은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가? 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는가?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잘못 읽고 시대를 잘못 평가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어떤 면을 보시고 멸망을 준비하셨는가? 아모스서는 후에야 읽히는 책이 되었다. 그들은 실패했으나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되풀이 하지 말라. 아모스의 선포는 후손들에게 옛이야기로 전해지고 그 후손들의 현실로 읽혀졌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말씀으로 읽을 차례이다.


    _____________

    1. 아모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구약 성경에 예언자 아모스 외에는 나오지 않는 다. 비슷한 이름으로는 아마시야(, 대하 17:16)가 있다. 이사야 1장 1절의 이사야의 부친명은 아모스가 아니라 정확하게 아모츠()이다. 아모스와 대면한 아마샤(암 7:12)는 히브리 읽기로 아마츠야()이다. 아모스에는 흥미롭게도 부친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아모스가 부친명을 내세우기 어려운 낮은 집 출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 잘 알려져서 가문을 언급할 필요가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부친명이 나오지 않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의 신분을 결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아모스서 1장 1절에도 여로보암의 경우와 달리 웃시야의 부친명은 언급되지 않는다. 오바댜, 하박국, 학개의 경우도 아모스서의 경우와 같다.(본문으로...)
    2. 우리는 \선지자\라는 단어에 익숙해져 있다. \미리 안다\는 뜻을 강조하는 단어다. 영어로는 prophet 인데 이 단어 역시 \미리\ 라는 뜻과 관계가 있다. 한글 성경이나 영어 성경의 번역은 헬라어 구약 성경인 칠십인역에 나오는 프로페테스의 영향을 받고 있다. 원래 뜻은 \대중들 앞에서\ 혹은 \앞 일\을 말한다는 뜻이다. 히브리 성경에서는 나비라는 단어가 널리 쓰인다. 뜻은 \부름\이라는 뜻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선포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단어의 원 뜻을 넘어 나비들은 미래의 일 뿐 아니라 과거, 현재의 일도 선포했다. 미래를 선포할 때도 현재의 회개를 촉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나비들은 말씀 외에 삶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본 기자는 앞 일을 강조하는 예언자(豫言者)라는 단어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임을 강조하는 예언자(預言者)라는 단어를 선호한다.(본문으로...)
    3. A. Even-Shoshan 의 책 A New Concordance of the Old Testament (Jerusalem: Kiryat Sefer, 1958), xxxviii쪽. 여기에 2053 단어로 나와 있으나 정확한 수는 한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G. E. Weil, \Analyse automatique quantifiee en critique textuell biblique: Limite des analyses satistiques,\College de l\ALLC, Tel-Aviv. Bulletin of the Association for Literary and Linguistic Computing 8 (1980): 34에는 2042 단어.(본문으로...)
    4. 아모스서에서 어떤 연설 혹은 표현 양식이 쓰이고 있는지에 관심 있는 분들은 Hans Walter Wolff, Joel and Amos,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7), 91-97을 참고할 수 있다. 요즈음 상당수의 구약학자들이, 예언서는 예언자의 출현 이후로 문서화 되기 까지, 소위 말하는 \신명기적 사가\(Deuteronomist)의 역할을 포함하여, 크게 몇 단계의 시대적 신학적 과정이 있었다고 믿는다. 이러한 논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여섯 단계로 나누는 볼프의 위의 책 106-113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Robert B. Coote, Amos Among the Phophets: Composition and Theolog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1), 1-10을 보라. 이들과는 달리 James L. Mays는 소수의 구절들이 후대에 첨가되기는 했으나 현재 있는 아모스서 본문의 대부분이 예언자 아모스의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책 Amos, OTL (London: SCM Press, 1978), 12-14를 보라. William J. Doorly, Prophet of Justice: Understanding the Book of Amos (New York: Paulist Press, 1989)는 위의 주제들을 포함한 아모스에 대한 현대적 논의들을 잘 요약하고 있다. Gerhard F. Hasel, Understanding the Book of Amos: Basic Issues in Current Interpretation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1)은 그의 책 제목이 보여 주는 것처럼 아모스에 관한 최근의 주제들을 잘 소개하고 있다.(본문으로...)
    5. James L. Mays, 19.(본문으로...)
    6. 자세한 논의는 Gerhard F. Hasel, 36-40에 잘 나와 있다.(본문으로...)
    7. Mayes, 19.(본문으로...)
    8. Wolff, 124a.(본문으로...)
    9. Y. Yadin and others, Hazor II, An Account of the Second Season of Excavations 1956, 1960, 24, 36 이하.(본문으로...)
    10. Philip J. King, \The Eighth, the Greatest of Centuries?\ JBL 108 (1989): 3-15.(본문으로...)
    11. Martin Noth, The History of Israel, 2d ed. (New York: Harper & Row, 1960), 250.(본문으로...)
    12. A. K. Grayson, Assyrian Royal Inscriptions II (Wiesbaden: O. Harrassowitz, 1976), 124.(본문으로...)
    13. 어느 왕이 언제 사마리아를 함락시켰는가 하는 것은 구약 역사학자들과 근동역사가들을 괴롭히는 어려운 질문이다. 왕하 17: 4절 이하의 왕이 앞 구절의 샬만에셀 V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르곤 II를 언급한 것인지 의견이 나뉘고, \바벨론 역대기 (Babyloniam Chronicles)\나, 사르곤 II 왕의 비문들이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다. 본 기자는 왕하 17:3-6절 모두가 722년 샬만에셀 왕에 의한 사마리아의 함락을 보고하고 있다고 믿는다.(본문으로...)
    14. 히브리 문장은 일반적으로 동사로 시작된다. 그러나 가끔 주어가 먼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주어를 강조할 때 그러하다.(본문으로...)
    15. Wolff, 125b.(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