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온적 신앙(微溫的 信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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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계 3:14-22 | 설교자: 배은희
본문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통하여 내치리리.”(계 3:14-22)
1.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떤한 교회인가?
이 도시는 빌라델비아 동남 40리쯤 에베소의 동편 백리 골로새에 근 십리쯤에 있다. 남북 교통상 편리할 뿐 아니라, 에베소로부터 소아시아를 지나서 유브라데 방면에 이르는 대로는 정히 이 도시를 통과하며 또 다도해 연안에 그리시아로부터 중앙 소아시아의 고원을 지나 동방에 이르는 관문이다.
따라서 통상의 번영을 가져온 로마 평화 시대에는 상업 도시로서 급속한 발달을 이루었으며, 그 부(富)의 정도는 주후 60년 진재시대에 이 도시만은 로마 황제의 원조 없이 불구에 부흥된 사실에 준하여 엿볼 수 있는 바이다. 그러나 도시의 결점은 혼잡한 이상인을 포함하리만치 타협 정신이 많아 이렇다 할만한 깊은 정신적 특징이 없고 범범 평평할 따름이며, 또 근방에 온천이 있어 천하의 한인(閑人)과 병인이 몰려와서 공담도언을 일삼으므로 깊은 정신적 문화가 발생하기는 극란하였다. 그로 타협 미온적 공기는 농후하였다. 시의 별명은 타협의 시(妥協의 市)라고 한다.
교회 성립의 유래는 미상이나 상상컨대 바울의 제자요 그 지망 신자인 에바브라의 설립인 듯 하다(골1:7, 4:12-14). 혹 전부터 바울과 관계없는 어떤 사람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파된 듯하다. 따라서 골로새 교회와 함께 이단적 경향이 있는 것도 같다. 골로새서 1장 4-23절까지에 바울의 부심(腐心)을 역력히 볼 수 있나니, 즉 그리스도 이외의 중보자를 구하여 세상에 소학문, 헛된 철학, 천사숭배 등 경향을 고정하여 그리스도 중심의 정통 복음에 돌아가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또 이 교회는 도시의 미온적 공기 중에 있어 그 기풍에 감염된 바 많을 뿐 아니라, 유대인의 박해나 니골라 당의 선언이나 관전의 압박이 없으며 긴장이 결하고 현상유지의 평안한 악폐에 빠졌다.
또 이 교회의 병은 부(富)이었다. 주께서는 차라리 사랑과 지식과 신앙의 풍부를 원하셨다.
2. 예수의 나타나신 성자
1) 아멘 - 진실하신 하나님과 같은 의의니(사65:16) 말뜻은 확실한 뜻이니, 그 형용을 네 가지 모양으로 나눌 수 있었다.
(1) 뉘가 말한 것을 자기의 것으로 채용하는 뜻이니 “옳습니다”, “그렇습니다”(민 5:22, 느 8:6)이다.
(2) 자기의 기도 송가(頌歌)를 확실케 하기 위하여 사용한다(롬 9:5)
(3) 예수 자기의 말씀을 가장 엄정한 태도로 하실 때에 이를 사용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말이 “아멘”말과 같은 뜻이다.
(4) 그리스도와 및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계 3:14, 사 64:16)
2) 불냉 불열 미온적 신앙 - 사제사초(事齊事楚)의 창녀적 신앙, 중도반단의 편벽적 신앙, 불냉 불열의 온수적 신앙,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적 신앙은 가장 가증하고 가장 악한 것이다.
혹 냉(冷)하든지 “너희가 소경이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나”(요9:41) 냉한 자는 회개할 기회가 있다. 악에 철저한 자가 선에도 철저할 수 있다. 예수의 사도 중에 예얼이라 하는 시몬이 있었고 사도 바울이 있었다.
“혹 열(熱)하든지”, 이는 실로 주의 원하는 바이다.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은혜에 대하여 비등하는 감은과 감격을 가지는 것을 주는 요구하신다.
“토하여 내치리라”, 미온적 신앙은 범백의 과오가 이를 타서 발생하나니 이런 불철저한 신앙은 불신자만도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금일 교회 안에 이 불신자만 못한 신자 까닭에 야단이다. 이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와 복음의 신성과 권위를 떨어뜨린다. 이러한 자들은 주의 신성과 성위에 부족한 고로 토하시겠다 선언하시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세상과 천국을 양득(兩得)할 수 없나니(마6:24),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할 따름이다(마5:37).
3. 표만적 신앙
1) 스스로 부자라 - 미지근한 자는 매양 자기의 상태를 판단치 못하여 자기 비판력을 상실한다. 저들은 재력의 다소 풍부함을 인하여 교만심이 등장하고, 학식이 있는 자는 학식의 득이를 느끼고, 운수가 좋아 형통함이 있으면 하나님의 유일의 총애로 자처하고, 은혜를 한번 맛본 경험이 있으면 신앙적 교만이 생기어 어찌할 수 없는 신앙계의 폐물이 되고 만다.
2) 부족이 없다-물질에 대하여 남의 원조를 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은 물론 복음과 교우에 대하여도 진수와 오의를 규명하였다마는 자부심이 있어 사도들의 간절한 훈계와 간절한 훈련까지도 경멸(輕蔑)함에 이르렀다.
서머나와 빌라델비아와 같이 유대인의 박해도 없고, 버가모와 같이 로마 관전의 압박도 없고, 에베소와 두아디라와 같이 이단의 횡행도 없어 실로 유복한 교회이다.
이렇게 아무런 문제도 없고 자극도 없는 이 노대한 교회는 자기 만족에 빠져 신앙의 좌석을 이루었으니 실로 가련하다. 고로 주께서 그 참상을 폭로하였다.
3) 곤고 - 외양에는 우세하나 실제 혼에는 중하(重荷)가 있으며 주와 교통이 단절되어 심중이 뇌민하다.
4) 가련 - 참으로 불쌍히 여길만한 인물들이다.
5) 가난 - 걸식의 유를 말함이니 신앙, 소망, 사랑, 인내, 지혜들이 결핍되었다.
6) 안맹(眼盲)(벧후1:9)-사물의 정확한 판단을 하기 불능한 소위 인식 부족의 유를 가리킴이니, 하나님을 인식치 못하며 하늘의 영광 진리와 비진리, 의와 불의 등을 식별하지 못하는 영적 안맹자이다.
7) 적신(赤身)-그곳에 온천이 있으므로 나체를 알지 못하여 예모없는 일이 많다. 그리스도의 영의(榮衣), 의의(義衣), 결의, 등은 편린도 없이 생래의 추함이 그대로 드러난 자이다. 교회에 부유한 자, 학식이 있는 인사가 많지마는 실제 의롭다 함을 입으며 깨끗하다 함을 받는 체험은 다 없으니 실로 가련한 교회다.
4. 권면
1) 삼대성은(三大聖恩)을 사모하라.
(1)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세상의 부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도리어 청상의 빈(貧)을 증명하는 것이 되지 아니할까. 금은 보배로운 신앙(벧전1:7)이요, 연단한 금은 곤란으로 연단한 신앙이다(벧전1:7).
이것은 하나님 앞에 불로 연단한 금보다 더욱 귀하다. 모든 유복한 자들아 곤란을 받으라. 곤란의 도를 택하라.
(2) 흰 옷을 입어 수치를 면하라.
예수로 말미암아 오는 “의의 옷”, 성신으로 말미암아 오는 “정결한 옷”, 내세로부터 오는 “영광의 옷”, 이러한 옷을 입지 못한 사람은 수치를 면치 못할 것은 정한 일이다.
(3)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
급무는 정신적 안맹으로부터 영안대개(靈眼大開)의 안약은 무엇일까. “그리스도의 말씀”, “계시의 신”일 것이다(엡1:17).
“보게 하라”함은 죄의 실상을 영지(靈智), 사죄의 도를 보는 영능(靈能), 내세를 통하는 영안을 말함이니, 이 영지, 영능, 영안은 성신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안약의 표현에 대하여는 지방을 연상하게 함이다. 그 지방에 산출하는 “브로기아”석(石)이라 하는 돌을 가루로 만들어 안질의 특효약으로 그리시아는 로마 천하에 사용함이 유명하였다. 이 명약을 천하 시장에 팔아서 시의 부를 증진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영맹이 되게 한 원인이니 하나님의 많으신 안약이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2) 책망의 이유 “사랑하는 고로”
사랑하는 자를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하나니 책망과 징계가 없으면 사사로운 아들이다(히13:5-13). 무책(無責)의 아비는 애부(愛父)가 아니요, 무책의 벗은 참 벗이 아니다. 책망을 받지 아니하는 아들은 친자가 아니요, 책망을 받지 아니하는 벗은 참 벗이 아니다. 고로 책망을 받을 때 불평 분노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회개할 것이다.
3) 애인의 심정
(1) 문앞에 섬
애인이 원로를 개의하지 아니하고 깊은 밤에 벗을 찾아 문밖에 선다.
(2) 문을 두두림(아5:2)
(3) 찾음
인간은 생래에 무지, 편견, 고집, 불신, 견폐 심문(堅閉心門) 하지마는 예수는 무릇 기회를 이용하여 섭리의 성수와 성성으로 불휴불식하시고 두드리고 부르신다.
(4)마음 문을 한번 연즉 그리스도께서 마음 안에 들어오셔서 처음에는 빈객이 되어 향연에 참예하시고, 다음에는 주께서 주인이 되시고, 우리가 빈객이 되어서 영원히 저의 향연에 참예하여 그리스도의 희열과 영광과 생명에 같이 참예할 것이다. 이것은 은총의 절정이다. 섬,두 드림 찾음 등 “호로만 하드”란 유명한 화가는 이를 소제로 하여 문밖에 선 예수의 형상을 묘사하였다. 예수는 최대의 죄악도시, 최대의 죄악인을 찾아 두드리고 부르신다.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5. 약속 - 보좌에 같이 앉음
그리스도와 입장을 같이 함이니 십자가상의 최후 고뇌와 그 집성(執成)의 고난과 부활에 의지하여 얻으신 승리의 영광을 우리의 천한 몸으로서 같이 누릴 수 있음이니, 오! 영광의 절정(絶頂) 황송의 지극!
장로교 목사
1.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떤한 교회인가?
이 도시는 빌라델비아 동남 40리쯤 에베소의 동편 백리 골로새에 근 십리쯤에 있다. 남북 교통상 편리할 뿐 아니라, 에베소로부터 소아시아를 지나서 유브라데 방면에 이르는 대로는 정히 이 도시를 통과하며 또 다도해 연안에 그리시아로부터 중앙 소아시아의 고원을 지나 동방에 이르는 관문이다.
따라서 통상의 번영을 가져온 로마 평화 시대에는 상업 도시로서 급속한 발달을 이루었으며, 그 부(富)의 정도는 주후 60년 진재시대에 이 도시만은 로마 황제의 원조 없이 불구에 부흥된 사실에 준하여 엿볼 수 있는 바이다. 그러나 도시의 결점은 혼잡한 이상인을 포함하리만치 타협 정신이 많아 이렇다 할만한 깊은 정신적 특징이 없고 범범 평평할 따름이며, 또 근방에 온천이 있어 천하의 한인(閑人)과 병인이 몰려와서 공담도언을 일삼으므로 깊은 정신적 문화가 발생하기는 극란하였다. 그로 타협 미온적 공기는 농후하였다. 시의 별명은 타협의 시(妥協의 市)라고 한다.
교회 성립의 유래는 미상이나 상상컨대 바울의 제자요 그 지망 신자인 에바브라의 설립인 듯 하다(골1:7, 4:12-14). 혹 전부터 바울과 관계없는 어떤 사람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파된 듯하다. 따라서 골로새 교회와 함께 이단적 경향이 있는 것도 같다. 골로새서 1장 4-23절까지에 바울의 부심(腐心)을 역력히 볼 수 있나니, 즉 그리스도 이외의 중보자를 구하여 세상에 소학문, 헛된 철학, 천사숭배 등 경향을 고정하여 그리스도 중심의 정통 복음에 돌아가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또 이 교회는 도시의 미온적 공기 중에 있어 그 기풍에 감염된 바 많을 뿐 아니라, 유대인의 박해나 니골라 당의 선언이나 관전의 압박이 없으며 긴장이 결하고 현상유지의 평안한 악폐에 빠졌다.
또 이 교회의 병은 부(富)이었다. 주께서는 차라리 사랑과 지식과 신앙의 풍부를 원하셨다.
2. 예수의 나타나신 성자
1) 아멘 - 진실하신 하나님과 같은 의의니(사65:16) 말뜻은 확실한 뜻이니, 그 형용을 네 가지 모양으로 나눌 수 있었다.
(1) 뉘가 말한 것을 자기의 것으로 채용하는 뜻이니 “옳습니다”, “그렇습니다”(민 5:22, 느 8:6)이다.
(2) 자기의 기도 송가(頌歌)를 확실케 하기 위하여 사용한다(롬 9:5)
(3) 예수 자기의 말씀을 가장 엄정한 태도로 하실 때에 이를 사용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말이 “아멘”말과 같은 뜻이다.
(4) 그리스도와 및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계 3:14, 사 64:16)
2) 불냉 불열 미온적 신앙 - 사제사초(事齊事楚)의 창녀적 신앙, 중도반단의 편벽적 신앙, 불냉 불열의 온수적 신앙,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적 신앙은 가장 가증하고 가장 악한 것이다.
혹 냉(冷)하든지 “너희가 소경이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나”(요9:41) 냉한 자는 회개할 기회가 있다. 악에 철저한 자가 선에도 철저할 수 있다. 예수의 사도 중에 예얼이라 하는 시몬이 있었고 사도 바울이 있었다.
“혹 열(熱)하든지”, 이는 실로 주의 원하는 바이다.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은혜에 대하여 비등하는 감은과 감격을 가지는 것을 주는 요구하신다.
“토하여 내치리라”, 미온적 신앙은 범백의 과오가 이를 타서 발생하나니 이런 불철저한 신앙은 불신자만도 못한 것이 사실이다. 금일 교회 안에 이 불신자만 못한 신자 까닭에 야단이다. 이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와 복음의 신성과 권위를 떨어뜨린다. 이러한 자들은 주의 신성과 성위에 부족한 고로 토하시겠다 선언하시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세상과 천국을 양득(兩得)할 수 없나니(마6:24),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할 따름이다(마5:37).
3. 표만적 신앙
1) 스스로 부자라 - 미지근한 자는 매양 자기의 상태를 판단치 못하여 자기 비판력을 상실한다. 저들은 재력의 다소 풍부함을 인하여 교만심이 등장하고, 학식이 있는 자는 학식의 득이를 느끼고, 운수가 좋아 형통함이 있으면 하나님의 유일의 총애로 자처하고, 은혜를 한번 맛본 경험이 있으면 신앙적 교만이 생기어 어찌할 수 없는 신앙계의 폐물이 되고 만다.
2) 부족이 없다-물질에 대하여 남의 원조를 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은 물론 복음과 교우에 대하여도 진수와 오의를 규명하였다마는 자부심이 있어 사도들의 간절한 훈계와 간절한 훈련까지도 경멸(輕蔑)함에 이르렀다.
서머나와 빌라델비아와 같이 유대인의 박해도 없고, 버가모와 같이 로마 관전의 압박도 없고, 에베소와 두아디라와 같이 이단의 횡행도 없어 실로 유복한 교회이다.
이렇게 아무런 문제도 없고 자극도 없는 이 노대한 교회는 자기 만족에 빠져 신앙의 좌석을 이루었으니 실로 가련하다. 고로 주께서 그 참상을 폭로하였다.
3) 곤고 - 외양에는 우세하나 실제 혼에는 중하(重荷)가 있으며 주와 교통이 단절되어 심중이 뇌민하다.
4) 가련 - 참으로 불쌍히 여길만한 인물들이다.
5) 가난 - 걸식의 유를 말함이니 신앙, 소망, 사랑, 인내, 지혜들이 결핍되었다.
6) 안맹(眼盲)(벧후1:9)-사물의 정확한 판단을 하기 불능한 소위 인식 부족의 유를 가리킴이니, 하나님을 인식치 못하며 하늘의 영광 진리와 비진리, 의와 불의 등을 식별하지 못하는 영적 안맹자이다.
7) 적신(赤身)-그곳에 온천이 있으므로 나체를 알지 못하여 예모없는 일이 많다. 그리스도의 영의(榮衣), 의의(義衣), 결의, 등은 편린도 없이 생래의 추함이 그대로 드러난 자이다. 교회에 부유한 자, 학식이 있는 인사가 많지마는 실제 의롭다 함을 입으며 깨끗하다 함을 받는 체험은 다 없으니 실로 가련한 교회다.
4. 권면
1) 삼대성은(三大聖恩)을 사모하라.
(1)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세상의 부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도리어 청상의 빈(貧)을 증명하는 것이 되지 아니할까. 금은 보배로운 신앙(벧전1:7)이요, 연단한 금은 곤란으로 연단한 신앙이다(벧전1:7).
이것은 하나님 앞에 불로 연단한 금보다 더욱 귀하다. 모든 유복한 자들아 곤란을 받으라. 곤란의 도를 택하라.
(2) 흰 옷을 입어 수치를 면하라.
예수로 말미암아 오는 “의의 옷”, 성신으로 말미암아 오는 “정결한 옷”, 내세로부터 오는 “영광의 옷”, 이러한 옷을 입지 못한 사람은 수치를 면치 못할 것은 정한 일이다.
(3)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
급무는 정신적 안맹으로부터 영안대개(靈眼大開)의 안약은 무엇일까. “그리스도의 말씀”, “계시의 신”일 것이다(엡1:17).
“보게 하라”함은 죄의 실상을 영지(靈智), 사죄의 도를 보는 영능(靈能), 내세를 통하는 영안을 말함이니, 이 영지, 영능, 영안은 성신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안약의 표현에 대하여는 지방을 연상하게 함이다. 그 지방에 산출하는 “브로기아”석(石)이라 하는 돌을 가루로 만들어 안질의 특효약으로 그리시아는 로마 천하에 사용함이 유명하였다. 이 명약을 천하 시장에 팔아서 시의 부를 증진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영맹이 되게 한 원인이니 하나님의 많으신 안약이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2) 책망의 이유 “사랑하는 고로”
사랑하는 자를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하나니 책망과 징계가 없으면 사사로운 아들이다(히13:5-13). 무책(無責)의 아비는 애부(愛父)가 아니요, 무책의 벗은 참 벗이 아니다. 책망을 받지 아니하는 아들은 친자가 아니요, 책망을 받지 아니하는 벗은 참 벗이 아니다. 고로 책망을 받을 때 불평 분노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회개할 것이다.
3) 애인의 심정
(1) 문앞에 섬
애인이 원로를 개의하지 아니하고 깊은 밤에 벗을 찾아 문밖에 선다.
(2) 문을 두두림(아5:2)
(3) 찾음
인간은 생래에 무지, 편견, 고집, 불신, 견폐 심문(堅閉心門) 하지마는 예수는 무릇 기회를 이용하여 섭리의 성수와 성성으로 불휴불식하시고 두드리고 부르신다.
(4)마음 문을 한번 연즉 그리스도께서 마음 안에 들어오셔서 처음에는 빈객이 되어 향연에 참예하시고, 다음에는 주께서 주인이 되시고, 우리가 빈객이 되어서 영원히 저의 향연에 참예하여 그리스도의 희열과 영광과 생명에 같이 참예할 것이다. 이것은 은총의 절정이다. 섬,두 드림 찾음 등 “호로만 하드”란 유명한 화가는 이를 소제로 하여 문밖에 선 예수의 형상을 묘사하였다. 예수는 최대의 죄악도시, 최대의 죄악인을 찾아 두드리고 부르신다.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5. 약속 - 보좌에 같이 앉음
그리스도와 입장을 같이 함이니 십자가상의 최후 고뇌와 그 집성(執成)의 고난과 부활에 의지하여 얻으신 승리의 영광을 우리의 천한 몸으로서 같이 누릴 수 있음이니, 오! 영광의 절정(絶頂) 황송의 지극!
장로교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