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는 것이 예수
페이지 정보
본문
주제 생활
\나의 사는 것이 예수\
정인과(장로교 목사)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립보서 1장 22절 / 갈 2장 20절 참조
1.
바울이 말씀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 것이다(갈2:20)\ 하였습니다. 우리 신자는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니 이제 우리가 살았다 하면 우리가 스스로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나를 구소갛신 예수가 사신 것이올시다. 그런즉 우리는 막연히 예수를 믿는다는 것보다 예수에게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 바쳐서 곧 전 생명을 바쳐서 예수 안에 우리 스스로를 집어 넣어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꺼져 없어져 버리고 다만 우리 안에서 예수가 살으셔서, 우리에게서 예수의 빛이 나타나고 에수의 맛이 나고 예수의 향기가 나야할 것이올시다. 이것은 \예수화\한다는 말만으로는 형언할 수 없고 바울의 말씀대로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하여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생활 전체가 예수의 생명, 예수의 생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간절히 바란 일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존귀케 하려 함이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지극히 사랑하므로 자기 소원과 본성은 버리고 예수의 마음에 품은 소원과 뜻으로 자기의소원과 뜻을 삼고, 예수의 성품으로 내 성품을 삼아서 그의 생활 전체와 모든 행실에 예수를 따라 살아서 가장 충성된 예수의 제자요 사도가 된 것처럼 우리도 겉 모양의 신자, 말만 하는 신자가 될 것이 아니라 예수로 구속함을 받은 신자가 되도록 진실하고 충성스러운 신자가 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한 말씀으로 말하면 우리 신자는 \주와 같이 되기를\ 힘써야 하겠읍니다. 주님과 같이 되는 것이 진정 성화된 생활입니다. 아버지의 거룩하심과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고, 내 멍에를 지고 나를 배우라 하셨읍니다. 이것은 물론 심히 어려운 일이올시다. 인간으로서는 온전하게 되기를 바라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주님의 즐겨하심으로 나의 즐거움을 삼고, 주님의 소망으로 내 소망을 삼고, 주님의 심정으로 내 심정을 삼고 나아가면 그러한 뜻이 우리 마음의 원동력이 되어서 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과 자기에게 진실하였습니다. 예수와 같이 되려면 먼저 진실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가정과 일가 친척과 사회와 국가와 모든 일에 대한 책임에 늘 진실하였읍니다. 가장 거룩한 사람과 깨끗한 봉사를 하기로만 힘을 쓰시기 대문에 그의 생활 자체가 사랑이요. 그의 생활 태도는 늘 광명하고 거룩하였읍니다.
대저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결국은 순종함에 있고 순종함의 증거는 충성된 실행에 있습니다. 미쁘고 경건함은 의로운 생활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의 생활을 본받아 살고자 하면, 자기 나라와 친구(곧 사회)와 가정과 자기에게 충성하고 하나님에게 충성하고 온 인류에게 충성을 다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일입니다. 참된 교인은 국민으로서는 진정한 애국자요, 친구로서는 참된 친구요, 부모로서는 인자하고 진실된 부모가 되어야 하겠읍니다. 예수 교인은 세상을 떠나도 나라와 친구와 부모를 모르는 딴 종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요, 더욱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충성스럽게 하는 동시에 우리 사생활과 공생활, 사회생활에 있어도 충성하고 부족함이 없어야 되겠읍니다. 흔히 이것을 오해하여 종교생활을 하는 자, 천국 백성이 된 자는 소위 세상 일은 아무렇게나 하여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 실생활에 부족함이 많은 데 심히 민망한 일입니다.
3. 예수 교인은 그 생활을 성화하여 일상생활에 진실하여야 되겠읍니다.
첫째로는 사회생활을 성화할 것이니 모든 교제와 재정 거래에 진실하고 정직함이 있어야 하겠읍니다. 그리고 모든 회의석에서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수단적이거나 사기적으로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현하 조선교회 안에 어느회를 막론하고 수치가 되는 분규가 종종 있고 문란한 일이 이따금 생기는 것은 그 원이니 어디 있느냐 하고 조사하여 보게 되면 모두가 정직과 진실을 떠나 수단을 쓰고 협잡을 하는 까닭입니다. 우리 신자도 현대 생활에 있어서는 하루도 물건 매매나 재정거래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그것을 면할 수 없이 관계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손해를 안보고 이익을 보겠다고, 실패를 안보고 성공을 하겠다고, 세상사람들이 하는 모양으로 수잔을 쓰거나 협잡을 하여서는 안되겠습니다. 현대와 같이 복잡한 관계가 있는 사회에서 모든 관계에 물질을 표준으로 정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남을 위하여서는 사랑과 정의로, 나를 위하여서는 고생한 인격으로 표준을 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모르는 다른 사회에서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운 우리 사회에서는 정의와 인도를(즉 사랑으로) 생활의 원칙을 삼아야 할 것입니다.
강단에서만 성결을 부르짖고 신령한 생활을 외쳐서는 우리가 기대하는 전도 운동이 언제나 성공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둘째로 조선 교인의 가정 생활부터 성화를 하여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교인의 가정과 지교인의 가정이 어떤 모양으로 혹 다른 것이 있는 뜻도 하나 실상은 별로 큰 차이를 둘 수 없습니다. 가정에 들어가면 예수 교인다운 애정이 없는 것은 말도 할 것 없거니와 노함과 다툼이 쉬지 않고, 온 집안이 물질만 생각케 되고 근심이 충만하며, 따라서 자녀들의 속화되는 것은 물론 불신자나 신자의 가정을 물론하고 지금 조선의 가정을 급속도로 파괴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예수교는 가정으로 단패를 삼는 종교인즉 우리의 각 가정이 기독교화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에 예수께서 주인물이 되고 가정에 예수의 뜻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예수의 사랑과 예수의 화해가 가정에 충만하여 언제 보든지 예수 교인의 가정인 것이 분명해야 하겠읍니다. 우리의 가정 생활을 성화시키지 못하면 우리 사회 교화 운동은 도저히 성공할 수 없습니다.
4.
다음에는 우리의 심정을 성화하여야 되겠읍니다. 주 예수의 심정으로 우리의 심정을 살아야 되겠읍니다. 주님이 원치 아니하시는 모든 옮지 못한 심정을 깨끗하게 청산해버려야 하겠읍니다.
모든 이기성과 시기와 미운 마음과 동정이 없이 몰이해하고 각박한 마음은 영혼을 누르는 중한 짐과 같은 죄악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주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성화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데 큰 장애물입니다. 우리 신령한 생활에 피와 기름을 빨아내는 독물입니다. 이 독물은 동서고금에 나라를 망하게 하고 사회와 가정을 망케 하였읍니다. 유대 사람이 망한 것은 탐심과 시기와 증오심이 많았던 까닭이요. 조선 사람도 이 실패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를 따라고 예수를 중심하여 사는 자는 먼저 자기와 하나님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나 사람앞에서 만번 말로 혹 대도로 신령하고 진실함을 나타내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속에 시기와 탐심과 악한 생각을 품고 겉으로는 경건한 체하는 것은 바리새교인의 태도 같아서 아무 소용 없을 뿐 아니라 사람의 반감을 살 것입니다.
무릇 사람의 고상한 심정과 이상은 우리 마음에 평화와 행복을 가져옵니다. 마음에 옳은 심정, 옳은 사상을 가진 사람은 의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에수를 사모하고 예수를 사는 자는 예수의 심정을 내 심정으로 삼아 항상 깨끗하고 착하고 경건한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깨끗한 마음을 품어야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주께서 친히 가르치신 진리올시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비치시고 예수께서 들어와 계실만한하게 되려면 먼저 우리 마음에 모든 시기와 미움과 음욕과 탐심을 버려서 우리가 깨끗한 심정의 소유가자가 되고 우리 마음이 주의 성전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5.
예수께서는 맑은 마음과 고상한 사상을 가지고 악을 미워하시며 최선과 지극한 사랑을 몸소 행하셨읍니다. 의와 사랑으로 세상의 빙과 법을 삼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인생을 위하여 당신의 평생을 바치고 생명을 바쳐서 깨끗하고 거룩한 봉사를 하는데만 힘쓰셨습니다. 성경과 사랑의 복음을 전하시고 몸소 거룩함과 사랑으로 삼으셨읍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오직 인간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로 화하여 진실로 평화스러워지고 행복스러워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이 예수라야 되겠읍니다. 진실로 우리가 사는 것이 곧 우리 생활 전체가 예수와 같이 되어야 하겠읍니다. 예수의 소원, 예수의 마음, 예수의 생활로 우리를 온전히 지배하게 되어야 하겠읍니다. 예수와 같이 살려고 힘쓰는 마음이 우리 생활을 지배하게 되어야 하겠읍니다. 실상 우리 몸은 우리 마음의 종입니다. 우리 소망, 우리의 기쁨은 오직 예수 뿐입니다. 진실로 예수의 즐거움을 내 즐거움으로 삼고 예수의 소망을 내 소망으로 삼을 때에 자연히 에수와 같은 경건과 예수와 같은 사랑이 나타날 것입니다. 신자를 볼 때에 그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능히 그 심령에 믿음과 봉사의 정신이 충만함을 엿볼 수 있어야 하겠읍니다. 이러한 것이 주님과 같이 된 자요, 진정으로 성화되고 영화된 생활입니다. 그렇게 성화되고 영화된 사람은 성신이 늘 지도하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대개 진실로 예수를 따르며 예수와 같이 되기를 힘쓰는 자에게는 성신이 힘이 되어 도와주시며 성화된 생활을 할 수로록 더욱 성신이 같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영화된 사람의 생활의 능력과 활동에는 성신이 마치 시계의 태엽과 같이 그 마음 속에 깊이 깊이 감동되고 힘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항상 경건한 생활을 할 수 있고, 언제나 착하고 의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6. 우리의 사는 것이 예수와 같이 되기를 힘씁시다. 이 이상이 목표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우리는 영화되기 힘들 것입니다. 먼저 우리 모든 신자는 그 심정과 실생활에 있어서 예수를 그대로 따라서 사랑과 의와 진리로 생활의 법칙을 삼으므로 \나의 사는 것이 예수\라고 담대히 말하게 되어야 할 것이요, 우리 조선 교회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변하고 화하며 운전되어서 \우리의 사는 것이 예수\라고 증거하게 되는 날에야 영화 운동이 실현되고 천국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
- 이전글
- 고후 4:17, 마 5:9
- 24.08.27
-
- 다음글
- 잃은 것을 찾자
- 24.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