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聖靈)의 불을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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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많은 것 중에서 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인지가 발달되면서 불은 인간 생활에 있어서 절대 불가결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조그만 모닥불이나 장작불이 석탄과 석유로 대치되었고, 다시 전기로, 이제는 크게 원자력의 신비의 불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주위에서 느끼고 볼 수 있는 가장 큰 불이라면 응당 태양을 말할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1억 5천만 ㎞나 떨어진 곳에서 막대한 힘을 가지고 열을 보내며, 인력이 있어서 태양계의 별들을 잡아 당기고, 열뿐 아니라 빛까지 비쳐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의 불변하다시피 큰 힘을 가지고 우리들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태양의 실제에 대해서 살펴보고는 놀랍니다. 밝기는 1m 앞에 10만개의 촛불을 킨 것과 같고, 표면은 무려 섭씨 6천도나 되며, 부피는 지구의 백 30만 배나 되고, 9개의 행성과 32개의 위성․살별, 무수한 유성을 이끌고 매초 19㎞의 속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불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느끼고 볼 수는 없으나 영원부터 계셔서 이 거대한 태양과 또는 우주에 산재한 그보다 더 큰 별들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전능과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불로써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언약 세우시는 하나님(창 15:17), 모세에게 나타나심(출 3:2, 19:1, 신 4:11, 출 24:17),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불기둥(출 13:21), 죄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심(신 4:24, 엡 4:4) 등 많이 나타납니다. 신약에서는 성신의 상징(마 3:11, 눅 3:16, 행 2:3) 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태양은 우리의 몸을 녹이고, 육체를 태우지만 하나님의 불은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하며, 뭇사람의 마음을 녹일 수 있고, 이끌 수 있는 불로서 단 한 순간도 우리를 위하지 않는 때가 없습니다. 태양의 불은 우리 생활에 직접 간접으로 단 한 순간 빠짐없이 이용해야 하듯이 믿는 자의 심령이나 생활 속에는 참으로 성령의 불이 임재 하여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성령의 열매를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로 표현하여 알려줍니다. 구체적인 예로서 베드로의 생애는 너무나 극적인 면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사장의 안 뜰에서 계집종에게 조차도 예수님을 저주하며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 (눅 22:54-60)가 오순절의 성령의 세례를 받은 후 단 한 번 설교에 수 천 명을 회개시키며, 어떤 환난에도 담대했음을 사도행전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곧 우리에게 나 자신의 존재를 깊이 살펴보게 도와주며 마침내는 회개하고 하나님을 향해 달음질치게 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와 요한 웨슬리의 역사적인 움직임을 고찰할 때, 그 근저에 성령에 의해 감동됨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신약에는 그리스도의 일생, 죽으심, 부활을 전제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에게 행하시는 내적 활동을 성령의 활동하심으로 본 것입니다. 성령은 능력으로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곧 광채 나는 빛의 생활이요,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인력을 가진 사랑의 생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라고 하셨습니다.(요Ⅰ1:5, 요 8:12).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빛을 비추는 생활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우리들 자신은 냉랭하고 차디찬 아무런 빛도 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빛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고(마 5:14), 빛의 아들로서 행동(살전 5:5) 할 수 있습니다. 달은 아무런 빛도 낼 수 없지만 밝은 태양의 빛을 반사시켜서 밝음을 드러냅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그 무엇도 빛을 낼 수 없으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진정으로 어둠을 밝히는 빛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서 처음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었던 계약이 어둠에 덮이고 구름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위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큰 본을 보여 주셨고, 동시에 우리의 허물을 씻어 피값으로 사셔서 믿는 자에게 사함을 주셨습니다. 또한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부과되어지는 사랑의 배품을 요구하셨습니다.(요 13:34). 우리에게 새 계명으로써 사랑을 명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음으로 우리는 변화되어지는 생활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나 개인과의 관계가 해결 되어지고, 내 죄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하여지는 순간, 내게는 새로운 의무가 부과되어지는 것입니다. 곧 이웃 사람을 명하셔서 하나님의 선교의 활동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성령이 하신 말씀과 같이 차지도 덥지도 않은 뜨뜻미지근한 상태에 있다는 우리는 곧 하나님께서 토하여 버리는 가운데 임하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먼저 믿는 자들이 믿음이 내게 있는가 시험해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능히 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는 온전한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갖은 핍박과 환란 중에서도 그치지 않고 역사하여 주시는 성령의 활동하심을 통하여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교인이 되는데 절대 필요한 성령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성령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지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16장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시면 보혜사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보혜사 성령은 죄에 대하여, 의에 의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우쳐 주실 것이라 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장에서도 성령이 임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드디어 그 약속하신바 성령은 극히 나약하고 실망했던 제자들에게 임하였습니다(행 2:1-4). 그들은 성령을 받았고, 그 권능을 받아서 주의 사업에 힘써서 교회를 이룩해 나갔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간구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구하면 받을 것이요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이다』(요 16:24) 하신 주님은 결코 하나님께서 간구하는 자 에게 거절치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마 7:7, 눅 11:13). 우리는 한 번의 간구함에 실망할 것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낙심치 말고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오순절의 성령의 부르심도 전혀 합심하여 기도에 힘쓴 그들의 간구함을(행 1:14) 전제하고 있습니다.
간구함에 있어서 막연한 대상이나 측면으로 마음을 빗대어 놓는 잘못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위에 사철이 번갈아 돌아오는 것은 태양의 빛을 비스듬히 받기 때문이고, 밤낮이 있음은 태양을 향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밝은 빛을 보고 열을 받으려면 정면으로 서서 향해 나가야 하는 것같이 오직 하나님을 향해서만 바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이 악한 세대에는 더욱 크게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거하시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악령이 거하게 돌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한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해야 하고, 또한 우리의 몸을 깨끗이 하여 더러운 음욕과 탐욕과 방탕함으로 더럽히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 나라에 많은 교회가 있으나 성령이 임하시어 성령의 도우심으로 활동하는 교회를 찾기가 힘이 듭니다. 이 세대는 점차로 복되지 못하고 은혜롭지 못한 세력이 확장되어지는 급변하는 세대입니다. 이러한 세대 속에서는 더욱 우리에게 큰 사명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할 일은 많건만 일꾼이 없어서 쩔쩔매는 우리의 교회를 바라볼 때, 진실로 썩어져서 망해가는 영국 사회 속에 크나큰 성령의 불을 들고 나섰던 요한 웨슬리의 운동이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됩니다. 먼저 하나님을 알게 된 우리들이 참으로 큰 사명을 느끼고서 먼저 택함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선교에 능히 참여할 수 있도록 각자가 성령의 불을 받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감리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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