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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우(隅)의 수석(首石)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사 28:16, 벧전 2:4-8참조 | 설교자: 이익모

    본문

    우(隅)의 수석(首石) / 이익모(李益模) <감리교 목사>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28:16) (벧전 2:4-8참조)

    세계의 건축법은 두 종류가 있읍니다. 첫째는 옛날로부터 내려오는 동양식인데 목재로 집을 짓는 것입니다. 터에 힘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또는 집 모퉁이 초석(礎石)에도 힘을 들이지 않고 다만 대들보라는 것이 있고 기둥이 제일 중요한 것같이 생각을 합니다. 둘째는 옛날 유대나라에서, 로마에서 있었던 서양식의 건축법입니다. 이것은 돌이나 연와(煉瓦‥벽돌)를 하나씩 둘씩 첩첩이 쌓아서 집을 짓는 것인 고로 모퉁이에는 두 편에서 두 벽이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첩첩이 놓인 것으로 모퉁이의 돌을 누르게 되는 고로 특별히 모퉁이 돌은 고르고 골라서 견고한 돌을 쓰며, 그 터를 잘 다진 후에 머릿돌을 놓지 않는 경우에는 그 머릿돌로 인하여 완전한 건축물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교는 구약이란 한 벽과 신약이란 한 벽이 있어서 이 두 벽이 합하여 한 완전한 건축물이 된 것입니다. 몇해 전에 나는 손 정도(孫貞道) 목사를 만나서 미감리 정동 예배당 북편 쪽에 손이 들락날락하리만큼 틈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읍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목사와 모든 직원․신자들까지도 이같이 큰 건축물이 20년도 못되어 이같이 될까, 오랫동안 그것으로 인하여 그때에 건축한 목수까지도 고통을 당하였다 합니다. 이내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는데, 후로는 30년 전부터 정동교회에 아니 배재학당에서 예배볼 때부터 다니던 오랜 교우 한 사람이 말하기를 그 틈이 난 쪽에 예배당을 건축하기 전에 본래 우물이 있던 자리입니다 하고, 그 우물을 메우고 잘 다닌다고 하였으나 그때에 기초공사가 부족하였던 것으로 옥에 티가 있는 것과 같이 그렇게 큰 건축물이 20년도 못되어 벽을 헐고 다시 짓게 되었다 하였읍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서양식의 집, 특별히 벽돌 혹은 석조는 모퉁이의 토대와 모퉁이의 머릿돌에 힘을 들여야 하는 것은 다시 말할 것이 없는 것 입니다.
    이에 이사야는 모퉁이의 머릿돌이란 이야기를 하였지마는 선지자 이사야는 기원전 740년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을 시작하였읍니다. 즉 설교를 시작한 것입니다.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라 하는 3대가 왕위에 있을 때에 예루살렘에서 예언을 하였읍니다. 그때에 유대나라의 동에 앗수르라는 큰 나라가 있었으며, 서남편에는 애굽이란 큰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 두 큰 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나라인 고로 오늘날의 벨기에와 같이 어느 나라의 원조를 구하지 아니하면 국운을 보전할 수가 없게 되었읍니다. 그때의 정치가는 애굽에 의존할 생각이 있었습니다. 선지들은 이사야부터 앗수르와 동맹하는 것이 좋다고 열이 나게 앗수르와의 동맹을 권하였지마는 어찌된 일인지 정치가는 듣지 않고 애굽과 동맹하여 애굽의 원조를 얻으려 하였읍니다. 드디어 애굽과 동맹한 결과 유대는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결국에는 나라가 멸망을 하였읍니다. 선지 이사야는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면 반드시 나라에 큰 재화가 올 줄 생각하고 백방으로 앗수르에게 원조를 구하기를 권하였습니다. 아무래도 듣지 않는 그때에, 심히 고통을 생각하게 되는 때에 지금 내가 낭독한 이사야서 28장 16절과 같이 부르짖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시온산에, 예루살렘에 머릿돌을 바랐다는 것입니다. 이 돌은 선지자로 말미암아 나타난 유일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므로 양육하게 되는 믿음의 정신입니다. 그리스도 이전에 헬라․로마․애굽․바벨론․앗수르와 같은 나라들이 흥하였지마는 유대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생각을 의지하여 사는 자는 놀랄 것이 없을 것이요, 공평으로 먹줄을 삼고, 정의로 다림판을 삼기만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편이 되실 것인 고로 나라는 멸망하지 않겠읍니다. 그렇지마는 거짓의 피난처, 부패하고 부도덕한 애굽을 의뢰하게 될 것 같으면 그야말로 한 큰 일은 큰 우박이 내려서 들의 오곡백과를 해하는 것과 같이 또는 홍수가 집을 헐어 내려가는 것과 같이 나라는 가루 부수러지듯 부스러져 버릴 것뿐이라고……이같은 뜻으로 설교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사람은 무슨 나사렛 예수와 같은 자가 머릿돌이 되겠느냐 하고 예루살렘 문 밖에서 십자가 위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제자 베드로는 며칠 후에 시편 118편을 인용하여 장인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하였읍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이 버린 돌이 보구(寶具)로 온돌, 그 시험한 돌, 그 산 돌이 뿌리를 뻗어서 오늘은 전 세계 어떤 곳을 막론하고 그리스도의 교훈을 들어보지 못한 나라․사회․사람이 없게 되었읍니다. 이에 대하여 간단히 역사를 말하려 합니다. 예루살렘에는 모리아 산 위에 솔로몬이 처음 건축한 하나님의 성전이 외적의 손에 의해 무너진 후 다시 두번째로 성전을 건축하려 할 때에 기사들은 고르고 골라서 이만하면 좋겠다 할 때 이 제사장들은 그렇지 않다. 첫번 성전을 건축할 때에 버린 돌이 이곳에 있다. 이 돌이야말로 둘째번 성전을 건축할 때에 모퉁이의 머릿돌을 삼았다는 전설이 있읍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베드로는 이 세계에 신령한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유대 사람의 버린 바되어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야 말로 신령한 나라의 토대가 되시며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말한 것은 적극적이요, 베드로가 말한 것은 소극적입니다. 한 사람은 밖의 것을 말하였고, 한 사람은 안의 것을 말하였읍니다. 그렇지마는 어떠하든지 모퉁이의 머릿돌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은 이사야나 베드로가 일치한 점이올시다.
    나는 오늘 아침에 우의 수석(모퉁이의 머릿돌)이란 것에 대하여 깊이 느끼는 바 있어서 제군과 같이 생각할 마음이 일어났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열 두 제자를 모으시고 교육하실 때에 어떠한 토대 위에 세우며 또는 건축하라 하셨느냐 하면 즉 그리스도 자신 위에 세우라 하셨읍니다. 그 증거로는 마태복음 16장 16절을 읽어 보면 베드로가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께 대답할 때에 예수는 무엇이라 하였읍니까? 그것은 우리 사람의 생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가 가르쳐 보였느니라” 하였읍니다.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열두 제자로 말미암아 세우게 될 모퉁이의 머릿돌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 것을 가르쳤읍니다. 드디어 그리스도 교회는 이 반석 위에 세우게 될 것입니다. 이 안에는 헬라교․천주교, 또 프로테스탄트 신교 등 여러 가지 교파가 있는 고로 자세히 말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고로 말을 못하지마는 헬라교나 천주교와 같이 폐해가 많은 교회라 할지라도 사회풍토상에 주는 감화로 말하면 불교나 모하멧교에 비하여 보면 탁월한 점이 많읍니다. 콘스탄틴 대제 때에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것은 다 아는 바 올시니다. 베드로가 이탈리아의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의 토대가 된 고로 그리스도교의 총본부는 로마 교회이었읍니다. 이 교회의 토대는 베드로의 후계자가 된 로마 법황이라고 주창하여 필경 구라파는 로마 법황이라는 베드로의 후계자란 이를 쳐다보고 아무리 강대한 나라의 대왕일지라도 법실(法室)의 앞에서는 머리를 감히 들지 못한다고 가르쳤읍니다.
    마르틴 루터는 4백 6십년 전에 나서 그런 생각은 틀렸다, 결코 로마 법황이 교회의 토대가 아니라 교회의 토대는 그리스도라고 주창하며, 우리는 본래의 교회로 돌아가자고 프로테스탄트를 시작한 것은 아시는 바올시다. 독일에는 루터가 세운 교회가 독일을 감화시켰으며, 영국에는 청도교가 일어나서 큰 감화를 주었지마는 그 청도교가 내어쫓김을 받아 아메리카로 건너가서 그곳에 새로운 영국을 세우고 이번에는 아메리카의 토대가 된 것은 제군이 다 아시는 바올시다.
    그런데 우리의 시대에 이르러서 참으로 슬피 통곡할만 한 일이 실현되었읍니다. 모처럼 루터가 생명을 바치면서 건축한 독일의 교회는 없는 것과 같이, 가이사(황제)로 말미암아, 비스마르크로 말미암아 또는 군국주의로 말미암아 토대가 없어졌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읍니다. 그러면 프랑스에 교회가 있읍니까? 프랑스의 최대 다수는 천주교를 믿는 고로 대개 5,6십만의 프로테스탄트에 불과합니다. 러시아는 어떠한가? 이는 종교적 국민이라 찬미가와 같은 것은 실로 세계 인류 위에 투철합니다. 병사들도 찬미를 잘하며 또 의식 같은 것도 웅장합니다. 그렇지마는 다만 의식에만 능하고 실행은 조금도 하지 못하는 종교가 된 고로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실 것 같으면 러시아에도 교회가 없다고 하시겠읍니다. 그러면 일본은 어떠한가? 근년에 와서도 그리스도교를 참 종교로 알지 않고 한 서학으로만 여기어 심하게 말하면 학교의 교원이 일요학교에 가는 학동애게 대하여 감점을 하며 혹은 교장된 사람이 학동에게 예수의 크리스마스, 유년주일, 그외 모든 축일(祝日)에 구경은 갈지라도 예수는 믿지 말라 하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보실 것 같으면 가증한 일본아! 너는 너의 꾀로 서지 못하리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곳에 그리스도교가 있읍니까? 간단히 대답하면 이사야가 말한 예루살렘에 여호와 하나님이 한 돌을 두셨읍니다. 이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라 한 이돌을 의지하는 자는 염려할 것이 없다 하였읍니다. 그 돌이 세계에 있읍니까? 없읍니까? 나는 지금까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어디 있읍니까? 어디든지 있을 것입니다. 자, 벨기에가 독일 군대에게 밟히었읍니다. 점점 선전포고가 되어 언제 비행기가 날아와서 자기의 나라를 황폐하게 할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위험에 빠진 영국 백성은 조금도 요동치 않고, 5백만의 런던 시민은 전쟁이 시작될 때에는 평범하였지마는 전쟁이 1년, 2년 지나고 런던 시가지는 야월성(夜月城)이 되었도다. 어디를 가도 캄캄하도록 만들어진 전등․가스등은 찾아볼 수도 없게 되었읍니다. 런던에서 얼마쯤 시골로 나가서 보면 여전히 변한 것이 없지마는 누런 군복을 입고 출정(出征)하느라고 이집 저집에 들락날락 하는 것뿐이요, 아무런 염려하는 것이 없었다 합니다. 또 영국은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유럽 전쟁시에 고용된 병사들인 고로 주막거리나 혹은 놀음판에서 승부를 다투는 즉 품팔어서 군인이 된 것 입니다. 그래서 이번 싸움에도 7십만 이상의 의용병을 모집한 것입니다. 그 중에는 옥스퍼드 대학의 3천 5백명의 학생 중에서 7백명은 총을 메고 군인이 되었다 합니다. 폴턴 목사의 교회에서는 2백명의 청년이 의용병으로 나갔다 합니다. 우리 조선에 선교하러 나온 선교사 중에도 여러 사람이 시베리아에 출정하였읍니다. 더우기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런던의 에든버러에 유명한 사람들이 모여서 매일 정오가 되면 기도회를 하였다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도 정오가 되면 하던 모든 일을 쉬고 전쟁이 하루바삐 휴전이 되고 평화가 오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한 사람의 수요는 헤일 수가 없었읍니다. 또 영국에는 한 집에서 다섯 아들이 다 출정하였다는 말도 들었읍니다. 어떤 선교사의 친척 중에 출정한 청년이 56명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잡지에 난 것도 보았읍니다. 나는 군인이 되어 출정하는 것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정의 인도의 정신을 품고 어떻게 하든지 벨기에를 고난 중에서 구원하여 내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독일의 군국주의를 쳐서 쓰러뜨리겠다는 곳에서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출정한 것이 위대한 점이라 하겠읍니다. 그렇게 하는데는 큰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랫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이의 머릿돌로 의뢰하고, 공평으로 먹줄을 삼고, 정의로 다림판을 삼고, 움하여야겠다는 정신으로써 양육을 받는 영국민이 있을 것 같으면 그 영국민의 감화는 오늘까지 아직 믿지 않는 자에게까지 미쳐서 총을 메고 나가게 된 까닭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면 전후 오늘날에 이르러 어게 되었읍니까? 처음에는 연합측이 질는지 또는 독일측이 질는지 몰랐읍니다. 그리하였지마는 우리의 믿고 기도한 바와 같이 필경은 영국이 이겼읍니다. 필경 연합측이 이겼읍니다. 연합국측이 이긴 까닭으로 영국․프랑스․미국․일본 또 대전을 방관하고 있던 열국의 백성들로 하나님의 보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승리를 얻었다고 마음으로 깊이 감사하는 바올시다. 또 이번 전쟁이 시작한 것은 오늘지 그리스도교는 개인을 신자로 하며, 가정을 그리스도교의 감화 아래에 두려고만 힘썼으나 자기와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원칙은 다만 개인과 개인, 가정과 가정간에 쓰는 것으로 알았지마는 오늘은 나라와 나라간의 외교에도 쓰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실로 오늘까지의 교회는 그릇되었읍니다. 아직까지 실현을 보지도 못하였지마는 어떻게 하든지 나라와 나라간의 외교에도 자기와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교훈을 쓰게 되도록 기다려야 하겠읍니다. 그렇게 되는 때가 와야만 비로소 개인은 그리스도를 머릿돌로 삼고, 가정은 그리스도를 머릿돌로 삼으면 또 나라들이 서로 외교할 때에도 그리스도를 머릿돌로 삼게 되어야 비로소 그리스도가 시온산에 머릿돌을 둔 그 머릿돌이 즉 토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로 세우게 되어야겠읍니다. 이 세상에서 착하고 또한 아름다운 사람, 개인, 나라가 어디 있느냐 하면 유교나 불교, 선교가 있는 곳에는 없읍니다.
    헬라교․천주교가 있는 나라에도 이상에 가까운 인격자, 성화한 가정이 있기는 있겠읍니다마는 프로테스탄트가 있는 나라에는 실로 이상에 가까운 가정이 많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입니다. 조지 5세 치하의 가정과 같은 가정은 실로 이상에 가까운 가정입니다. 이같은 인물을 만들며, 가정을 만들고, 또한 사회풍토의 근원이 되게 하는 사상이라 하게 된즉, 의무를 무겁게 여기며, 책임을 중히 하며 또한 천지에 부끄럽지 아니할 만한 마음을 기르고 싶다는 건전한 사상이 보급되어야 하겠읍니다.
    그리스도교의 건전한 사상이 있는 곳에는 물질적 문명과 싸우면서 탁월한 인물로 하여금 이상적 가정을 만들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스도교라 하는 건축물은 위대한 것입니다. 누가 무엇이라 하든지 이것만은 확실히 위대한 것은 어떤면으로 생각해 보든지 모퉁이의 머릿돌이 튼튼한 까닭입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약하였을 것 같으면 그리스도교는 다른 종파와 같이 유명무실하였을 것입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위대한 까닭이었다 합니다. 나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순량(純良)하게 깎아낸 돌과 같이 그리스도라는 인물은 진실하셨던 까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진실하셨다는 뜻은 한 번도 거짓말을 함이 없었으며, 한 방법도 없었읍니다. 베드로가 자기의 서간 중에 “예수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다”하는 말로 증거를 하였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아니하기는 심히 어려운 일로 압니다. 내가 어릴 때에 들은 교사와 상인은 거짓말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하는 말을 지금까지 기억합니다. 오늘 아침에 이곳에 이같이 많이 모인 이들 중에 누가 나와서 나야말로 어렸을 때부터는 그만두고 그리스도 신자가 된 이후로 현재까지 나의 입에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할 이가 있겠읍니까? 그러한 2천만 우리 동포 중에 나야말로 나면서부터 현재까지 나의 입으로 거짓말을 하여 볼 때가 없다는 사람이 있겠읍니까? 그리스도교의 감화를 받는 사람 중에는 있지마는 그리스도교의 감화가 없는 곳에는 그러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의 마음에는 거짓말이 없었다는 것은 그 마음 안에 거짓 생각이 없이 본래 근원이 그만큼 진실하셨는 고로 이 머릿돌 위에 쌓은 마음은 그 머릿돌의 감화에 의지하여 진실하게 되며 참되게 된 것입니다. 영국의 로이드 조지는 놀랄만한 참 정치가라 합니다. 저가 생명보험법안이라는 것을 의회에 제출할 때에 실로 크게 반대를 받았다 합니다. 물론 한번은 떠들 줄 안 것입니다. 런던성 안에 있는 여하인만 하여도 1만인이나 모여서 반대의 결의를 할 때에 그가 가운데 서서 참으로 필경 그 안을 가결하였다 합니다. 지금 10여 년을 지나서 보면 그때 대장대신이던 저는 영국에서는 현대의 구세주로서 올려보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참이란 것이 우리 사회에 결핍하지 아니합니까?
    또 하나는 깨끗한 것입니다. 남녀간의 도의가 깨끗하여야 하겠읍니다. 대개 이 세상 사람 중에 예수와 같이 청결하신 이는 어디를 가든지 찾지 못할 것입니다. “너희가 여인을 보고 마음에 정욕을 품을지라도 이미 간음한 자니라” 하였읍니다. 그 말씀을 하신 예수의 마음은 깨끗한 것임을 우리가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이 깨끗하였을 것입니다. 그 깨끗한 머릿돌에 싸여서 감화를 받은 사람이 깨끗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에 지방 순회시에 나는 두세 동창과 만나서 반날 가량 이야기를 하였지마는 그중에 한 친우가 우리는 오늘과 같은 조선에서 한참 청년시대에 좋은 취미를 다 잃어버리고 17세기의 수도사들과 같이 깨끗하게 행하는 주의만 주창하는 것은 실로 자기의 일이지마는 훌륭한 일이 아닌가? 할 때에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신자이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자인 고로 라고 친우들은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헤어진 일이 있읍니다. 실로 그리스도교는 위대하다는 것이 그 점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깨끗하신 까닭입니다.
    이제 하나는 의리라 하는 말은 우리 조선에서 옛날부터 잘 쓰는 말입니다. 의리라 하는 것은 사람에게 보이기 쉬운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큰 건축물 중에 나타난 의는 하나님을 보는 의입니다. “너희가 거짓 착한 체 하는 바리새교인만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읍니다. 이같은 말씀을 하신 예수의 언행에 대하여는 만일 정직한 것이 없었을 것이라고 2천년 동안 비평가가 조사를 하였지마는 아직지 찾아내지 못하였다 합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의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 신자 중에는 이 의로 확실히 깨닫지 않으면 안되겠읍니다.
    오늘날 사상계에서 불란서 대학의 교수 헨리베르 그종의 철학사상이 사상계를 쥐었다 놓았다 합니다. 그것이 무슨 까닭인가 하면 창조적인 진화라 합니다. “이 천지에 한 생명이 있다. 에식이 있는데 즉 항상 그치지 않고 만드는 진화가 있다” 합니다. 나는 훌륭한 발명가라 합니다. 그러하지마는 요한복음 5장 17절에 예수의 말씀으로서 그 사상을 분명히 가르치시지 않았읍니까. “예수께서 너희에게 대답하여 나의 아버지는 현재도 일하신다.” 유대 사람은 천지의 하나님은 엿새 만에 이 세계를 지으시고 7일 되던 날에 쉬셨다 합니다. 세계를 처음 6일간에 창조하시고 그후에 하나님은 쉬셨다는 것에 반대하여 예수는 현재까지 나의 아버지는 일을 하신다고. 즉 창조적 진화를 한다 하였읍니다. 독일의 예나 대학 교수 어이켄은 신령의 생명이라는 철학 사상을 고취하여 세계의 이목을 움직였지마는 무엇으로 아십니까? 어이켄의 사상은 요한복음의 신령적 생명을 고쳤다고 하면 실례라고 할 이도 있겠지마는 그 사상에 근사(近似)한 것입니다. 옛날부터 현재까지 어떤 철학자가 나서 이것은 이상한 신발명의 대사상이라고 주장하였을지라도 성경을 조사하여 본즉 성경에 없는 것이 없읍니다. 예수의 말씀 중에서 그것을 분명히 볼 수 있는 고로 사상상으로 말할 일일지라도 모퉁이의 머릿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행히 병화한 나라에서 생활을 하였지마는 현재부터는 우리 조선도 그리스도로 토대를 한 나라들과 고제를 하여 세계상에 서도록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독일이 강하다. 군국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읍니다. 그러나 오늘 독일의 그리스도교는 토대가 없어지고 말았읍니다. 오늘은 군국주의가 세력을 잃고 말았읍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 조선도 이때를 당하여서부터 그리스도의 감화를 받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영미제국와 외교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금년은 우리 조선에서 주일학교 부흥하는 해로 지킴에 대하여 표방하고 세워야 할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모퉁이의 머릿돌로 하고 서야 하겠읍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표(旗標)입니다. 그것을 기표로 하고 여러분과 같이 서게 될 것 같으면 이것이 즉 우리를 부르신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교회를 지도하시는 그리스도는 실로 만족하실 것입니다. 더우기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사람의 아버지께 순복하는 것이 즉 예수 그리스도를 표방하여 서는 것입니다. 구라파 제국에서는 이번 전쟁에 의하여 개인이 그리스도를 토대로 삼고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로서 모퉁이의 머릿돌을 삼으며, 교회가 예수를 토대로 하며, 사회에는 그리스도라는 머릿돌이 없는 것을 폭로하였지마는 우리는 이에 깊이 생각할 것이 있는 줄로 압니다.
    아무쪼록 여러분과 같이 오늘의 우리 조선에 참 토대석(土臺石), 모퉁이의 머릿돌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심을 깊이 깨닫고 이제 후로는 한층 더 분발하여 그 머릿돌 위에 나의 몸, 나의 가정, 나의 사회, 나의 국가를 세워서 우리의 몸․가정․사회․국가는 진실하며 깨끗하고 의로운 돌이 되도록 그 감화를 받게 하여야겠읍니다. 그것을 좇아서 우리의 집은 영원무궁한 반석 위에 짓도록 힘을 쓰시기를 바라는 바이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