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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신자의 즐거움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빌립보서 4장 4절 | 설교자: 김익두

    본문

    동양 성현의 말씀에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했으니, 위로 하나님을 섬겨 두려워 아니하고, 아래로 사람에게 부끄러움 없음이 첫째 즐거움이요, 부모와 형제가 구비(具備)하여 있음이 다른 하나의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英才)를 많이 교양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믿는 자에게는, 믿지 않는 자가 깨닫지 못하는 즐거움이 여덟가지가 있다.

    첫째는 감응의 낙(感應之樂)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이시는 즐거움이다. 어느 나라 백성이든지, 그 백성이 임금에게 상소하여, 그 상소에 응답해 주시면, 그 백성의 즐거움은 비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천지의 대주재가 되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사 응답해 주시면, 그 즐거움이야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어떤 임금이 7년 동안 비가 오지 않으므로, 자기를 낮추어 하나님께 잘못된 것을 자복하고 구했다. 이에 응답 있어서 비가 나려올 때, 그 임금은 비 오는 것보다도 자기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을 얼마나 즐거워 했겠는가! 임금으로서 자기의 기도 들어 주신 것을 즐거워 했다면, 하물며 우리들의 기도를 믿는다는 그것으로 들어 주실 때에 그 즐거움을 다 말할 수 있으랴! 이엣 더 크고, 영광스럽고,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실로 이것은 신자의 가장 즐거워할 일이요, 권위가 되는 일이다. 성경을 보면,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서 밤이 맞도록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결과, 앗수르 대왕의 수모를 면했을 뿐 아니라, 변하여 즐거움이 되었으니, 이는 감응의 즐거움이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도 기도하여 하만의 화를 면하고, 슬픔이 되려 즐거움이 되었으며, 근심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었으니, 이것도 감응의 즐거움이다. 우리도 어려운 일 당할 때에 기도함으로써 어려운 일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는 도미(道味)의 즐거움이다.
    유치한 교인은 성경의 맛을 몰라, 권면에 이기지 못하여 몇장 보는 것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보지만, 성경의 그 보는 이치를 성령의 감화로 깨달을 때에, 그 말씀은 꿀송이보다 더 달고, 정금보다 더 귀한 것이다(시 19편). 실로 우리에게 영화를 받게 하고, 윤택하게 하며, 힘을 주시고, 장성케 하며, 영생케 하는 것이 곧 이 성경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성경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경륜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이것이 곧 성경이다. 사람들은 지혜가 높고 학문이 높은 사람에게서 그 말하는 바를 듣고자 한다. 들을 때에 유쾌함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물며 지혜가 우주에 충만하고, 무소부지하신 하나님의 교훈이 어찌 인간의 즐거움을 이루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성경에 취미를 붙이지 못한 이는 맛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비컨대 앓고 있을 때는, 단 꿀이 입에 쓴 것과도 같다. 그 꿀이 쓴 것이 아니라, 입맛이 없는 연고이다. 이와 같이 성경 말씀 자체가 재미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믿음이 병들어서 재미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재미가 없다는 사람은 반성하여, 다시 도미(渡美)의 맛을 얻기 바란다.

    셋째는 극기(克己)의 낙이다.
    혹은 풍금을 치며 즐겁다 하고, 혹은 아름다운 여자를 즐겁다 하며, 혹은 이기고 즐겁다 하지만, 오직 신자는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원수를 이기는 즐거움이 가장 큰 즐거움인 것이다. 원수가 무엇인가? 곧 교만이다. 이 교만은 자기를 지옥으로 이끌고 뭇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하는 것이다. 교만으로 사람을 업수히 여기면, 업수히 여기는 대로 몇배를 거둘 것은, 그것을 심었기 때문이다. 이 교만을 이기고 겸손한 자리에 앉게 되면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배워 지혜있는 자가 되고, 나보다 못한 자에 대하여는 불쌍히 여기며, 위로하고, 도와주게 되니, 하나님 앞에 가도 설만하며, 뭇 사람에게도 대접을 받을만한 것을 이루었으므로,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또 자기에게 있는 음욕을 이기는 즐거움이 있다. 뭇 사람이 음란한 바다에 빠져서 눈은 여자로 더불어 노는 것으로 범죄하고, 귀는 더러운 소리를 듣는 것으로 영혼을 더럽게 하며, 정신과 마음과 생각과 뜻이 음란한 일에 빠져 쉬지 않고 죄를 짓는 것이, 마치 구더기가 더러운 속에서 춤추며 즐거워 하는 것과 같이 행동하는데, 이 일을 분토같이 여기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비록 땅에서 먹고 입지만, 이는 하나님 나라에 있는 천사와 같이 거룩한 삶이며, 할렐루야 찬송할 즐거움인 것이다.

    넷째는 교인을 양성하는 즐거움이다.
    신자가 다른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고, 가르치는 것이 사람 보기에는 쉽고 아무 재미가 없는 것 같으나, 그 중에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부인이 애기를 많이 나서 기르는 수고가 많으나, 그 즐거움은 날로 더하여, 그 어린이의 자라는 것을 볼 때, 수고를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다. 남을 인도하는 자도 그 교인이 어린이의 상태에서 변하여, 장성하여 가는 것을 볼 때, 그 재미는 자녀를 키우는 부인의 즐거움과 같은 것이다. 얼마전에 찬미를 못하던 교인이 찬미를 하게 되는 것을 볼 때, 기도를 못하던 교인이 기도하게 되는 때, 성경으로 남을 가르치게도 되고, 직분이 무엇인지 모르던 교인이, 믿어 중한 직분을 받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볼 때,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즐거움은, 가히 비할 것 없이 큰 것이다.

    다섯째는 환난 안위의 낙(患難安慰之樂)이다.
    신자가 주를 위하여 환난을 받게 될 때에, 사람들은 보고 환난을 받는 줄 아나, 신자는 그 중에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에 즐거워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다른 죄인들은 죄를 인하여 갇혔지만, 자기는 주의 도리를 위하여 갇혔으므로, 그 욕이 도리어 상이 될 것을 즐거워 했으며, 그 고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아 소망이 부끄럽지 아니할 것을 즐거워 했으며, 그 고난으로 복음이 더욱 증거됨을 인하여 즐거워 했으며, 그 고난으로 인하여 남이 고난 당할 때에 속히 위로할 만한 자가 될 것이므로 즐거워 했던 것이다. 우리도 환난 중에 즐거움이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여섯째, 영생의 낙(永生之樂)이다.
    사람들이 가장 슬퍼하며,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이 죽음은, 죽은 후에는 영영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는 요한복음 3장 16일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세상을 떠나면, 이 세상보다 억만배나 나은 영생이 있음을 알아 즐거워 하는 것이다. 이 영생은 이 몸을 벗은 후에, 영혼 곧 속사람, 다시 말하면 정신과 마음과 생각과 뜻과 성품이, 이 몸을 벗어나서 하나님 계신 곳에 가서, 괴로움 없이 평안함이요, 슬픔이 없이 즐거워하는 것이며, 욕 없고, 영화가 있으며, 병 없고, 건강하며, 죽음이 없고, 영영사는 것이다. 또 밤이 없고, 낮 뿐이며, 원수가 없고, 사랑만 있는 곳에서 무궁토록 그 영화를 누리는 것으로, 이 어찌 즐겁다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신자는, 죽는 것을 마치 배를 타고 먼 바다를 건너가, 고향에 내리는 것 같이 생각하는 것으로, 즐거움인 것이다.

    일곱째, 주님과 동행하는 낙(與主同行之樂)이다.
    천한 사람이 귀한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을 즐겁다 하며, 어진 친구를 만나 같이 있는 것을 즐겁다 한다면, 신자가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있게 되는 즐거움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다니엘이 사자굴에 갇혔을찌라도, 주께서 사자의 입을 봉하여 해롭게 못한 때, 비록 사자굴에 있었지만, 그 즐거움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니엘의 친구 세 사람이 비록 불 화로 가운데 던진바 되었을찌라도, 주님이 같이 하셔서, 불이 그들을 해하지 못할 때, 그 즐거움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한이 밧모섬에 정배 갔을찌라도, 주께서 같이 하시고, 계시(啓示)를 보여주시는 때, 그 즐거움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떠한 때를 물론하고, 주님께서 같이 하셔서, 혹 암시(暗示)로 성경의 교묘한 이치를 알게도 하시고, 말할 수 없는 깊은 이치를 보여주시기도 하시며, 강론할 좋은 제목을 알려 주시기도 하고, 실수할 것을 붙들어 실수 못하게도 하시며, 잘못하면 통회하는 마음도 주시고, 우리 소망되는 하늘 나라를 보여 알게도 하시는 때, 그 즐거움이야말로 어떠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주와 같이 하면, 무엇이 두려우며,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신자에게는 이에서 더한 즐거움이 없는 것이다

    여덟째는 만물을 관찰하는 낙(萬物觀察之樂)이다.
    사람들이 만물을 볼 때에, 꽃이나 초목이 무성하고 만발할 때에, 그 나타나는 빛을 보고 좋다고 하지만은, 그 보다도 더 오묘 막칙한 것은 모든 꽃이 땅에 올라오는 것으로, 각각 그 유를 따라 빛이 다르며, 나무는 각각 유를 따라 별스럽게 된 것과, 모든 실과는 그 유를 따라 각각 맛이 다른 것이다. 짐승은 그 유를 따라 모양이 다르며, 바다에서 물을 끓어 올려 구름을 제작하고, 비를 주시는데 폭포와 같이 하지 않으시고, 방울 방울이 내려 초목에 해(害) 주는 일 없이, 유익하도록 한 것이며, 추운 때는 얼음장으로 내리지 않고 백화모양의 눈을 내려 상치 않도록 하심이다. 또 일월 성신을 궤도를 따라 운행하시며, 인생에게 가장 특별한 지혜를 주시어 만물의 영장이 되도록 하신 것으로, 이것이 어디서 온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무미하게 보지만, 오직 신자는 대주재 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주장이심을 깨닫는 동시에, 물건마다 볼 때에 찬송치 아니할 것이 없고, 그 지혜와 공의와 능력과 절제를 배우지 않을 것이 없으며, 감사함이 심중에 솟아나는 즐거움이 가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즐거움은 수고가 지나간 후에 오는 즐거움이다.
    기도하는 수고가 없이는 응답의 즐거움이 없을 것이고, 성경을 상고하는 수고 없이는, 도미는 낙이 없을 것이고, 자기를 이기려고 하나님 앞에 직고하는 수고가 없이는 극기의 낙이 없을 것이고, 순복하는 수고가 없이는 동행의 낙이 없을 것이고, 주를 위하여 핍박 받는 수고가 없이는 환난 안위의 낙이 없을 것이고, 성령의 감동시키심을 따라 수고함이 없이는 영생하는 즐거움을 깨닫지 못할 것이고, 만물을 연구하는 수고 없이는, 관할의 낙도 없을 것이다. 이 즐거움을 보고자 할진대 수고를 아끼지 말고, 다 이 즐거움으로 지내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