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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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7일 중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한 지 3일 째되는 날의 석양이었습니다. 예수루살렘 성내에는 거리거리 이 골목 저 골목 삼삼오오 모여 있는 그들에게는 크나큰 화제거리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것은평소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또는 구세주라고 자칭하면서 이적과 기사를 많이 보여주던 나사렛 예수가 무능하게도 십자가에 못박혀 속절없이 죽으신 일이었습니다.그 때에 예루살렘에서 한 25리쯤 떨어져 있는 엠마오로 통해 있는 산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일찍기 주님을 따르던 주님의제자로서 지금 자기 고향인 엠마오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이신 주님을 생각할 때에, 그들의 얼굴에는 실망과 낙심의 빛이 가득 찼으며,그들의 발걸음은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들과 동행하셔서 주님은 실망과 낙심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우리는 심령의 새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Ⅰ 실망한 두 제자
이 두 제자는 그렇듯 주님을 따르던 제자로서도 근본 신앙과 소망이 헛되었던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권능이 풍부한 선지자로 알았으며 또는 이스라엘 나라를 구속할 인물로만 인정하여 왔던 것입니다(19-20절).그러던 것이 그만 악당에게 포로되어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되고 보니 실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던 자기네 반생이 헛된 데 돌아갔다는 것을느낄 때에는, 자기네의 예루살렘 생활이 원망스러웠으며 예수를 저주하기에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잠시도 예루살렘에 더 머물지 않고 원망과저주와 실망의 발길을 고향으로 돌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길이 오로지 패배의 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패배의 길이었습니다. 지금 새삼스럽게 패배의 길이라기보다도 그들은 오래 전부터 주님을 처음 뵈올 그 때부터 패배의 길을 걸어 왔다고 해도 지나친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릇된 신앙이 그들의 생의 전부였다면 패배의 생, 환명의 생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패배와 환명의 생보다도 사지를 향하여줄달음치는 그들입니다.
천당과 지옥이얼마나 차이 있는 뚜렷한 존재입니까.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천당을 버리고 죄악이 차고 넘는 지옥 엠마오로가는 이 두 제자는 얼머나 가련한 인간입니까. 자기의 무덤을 파는 것이 인간들이라고 노래하였지마는, 나는 이네들을 향하여 그렇게 노래하고 싶습니다.비단 이네들만이 가련한 인생이 아닐 것입니다. 근본 신앙이 철저치 못한 사람, 헛된 소망을 바라고 나가는 사람,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맛보지 못하며,따라서 자기의 종교적 생활의 의의도 모르는 사람들, 심하게 말하면 교회당을 한 주일 동안 세상생활에 피로된 육신을 쉬는 일종의 유희장으로 인정하는이는 고금을 물론하고 환명된 생에서 헤매이는 이입니다. 예루살렘을 등지고 엠마오로 가는 이 두 제자와 같이 일조에 유사한 때에는 교회를 등지고죄악이 관영한 세상으로 따라 갑니다. 다시 말한다면 천당을 보리고 지옥으로 달아난다는 말입니다.
두 제자는동행하며 피차에 수문수답을 할 때에 그 중의 한 사람만이라도 신앙이 좀더 철저하였던들 거기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터이나 똑 같은 형편에 있는 그들이기때문에 한다는 이야기는 실망낙심될 이야기뿐이었습니다. 뿐입니까. 주님이 가련한 그들의 행로에 나타나시어서(15절),종일 동행하면서 수문수답을 하였지만, 3년동안이나 주님을 따르며 주의 교훈을 많이 들었을 그들은 지금 와서 주님을 알아 보지도 못할 뿐더러 주님의음성까지 알아 듣지 못하였습니다. 실망하고 낙심한 자는 이와 같이 눈이 어둡고 궈가 어두운가 합니다. 이사야의 예언을 인종하여 『너희가 듣기는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리라』(마 13:14)한 것이 이런 사람을 두고 말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제자는주님의 부활을 목도한 부녀들이 전하는 매우 기쁘고 반가운 소식을 들었을때에 놀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22-23절). 이것만 보더라도 그들의 신앙이얼마나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이 박약한 사람은 기쁘게 들어야 할 하나님의 복음을 경이와 공포로 접하는 현상이 없지않아 반드시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아를 돌아봄으로써 실망 중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내가 아닌가고 생각해야겠습니다.
Ⅱ 희망의 두 제자
주님은 실망중에 걷고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두 제자를 버리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이 행하는 길에 나타나서 동행할때에, 실망 중에 있는 그들을 경책으로써 깨워 주시며, 또한 성경을 풀어 교훈하시므로(27절), 그릇된 인식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주막에 머물게 되어 주님과 같이 유하기를 간청하였을 때에 주님은 기뻐 응허하셨고, 저녁을 같이 나눌 때에 주님은 손수 떡을 떼어 축사하시며 제자들에게주셨습니다. 그때에야 그들은 비로소 심안이 밝아져서 주님인줄 알아 보았으며, 거기서 비로소 실망에서 소망, 헛됨에서 참됨을 발견하였습니다. 무리중에 아무리 낙심한 자가 있다 하더라도 주님이 택하신 자라면 주님이 엠마오로 가는 이 두 제자를 버리지 않은 것과 같이 또한 우리도 버리지 않고가까이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형편을 고백하며 주님이 가르치시기를 간청하면 주님은 기뻐 허락하시며, 거기에는 반드시 희망과 환희가 차고 넘치리라고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 만찬에 참례할 때에 주님의 몸과 주님의피를 기념하므로 우리의 심안이 밝아져서 주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믿어야합니다. 주막에서 떡을 가져 축사하실 때에야 비로소 주님을 알아 본 두제자는 암담한 가운데서 광명을 보았을 때에 참 삶을 찾고자 일각을 주저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33절). 실망낙심할때에는 교회를 등지고 세상을 향하였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희망의 기쁨을 얻을 때에는 죄악 세상을 등지고 교회로 향하여 믿음의 부흥을 일으키게됩니다.
그리고 두제자는 예루살렘교회 회집 석상에서 자기네들의 지난 일을 간증하고 또한 주님이 나타나보이신 것을 증거할 때에, 또주님게서 나타나서 그들에게 『평안할지어다』하고 축복하셨습니다. 자기네들의 낙심하였던 형편과 또는 주님에게 받은 신령한 은혜를 속직하게 간증하고증거할 때에는 주께서 주시는 평안을 풍성히 받을 줄 압니다.
그러나 두 제자는 오히려 의혹의 마음을 가지고 영을 본줄 알고 두려워할 때에 사랑하시는 주님은 온유하신 음성으로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하느냐』하시고 수족까지 보여 주시며 의심말고 부활하신 당신을 믿으로고하시므로 저희들은 마음에 더할 수 없는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신앙이 박약하고 소망이 확실치 못한 사람은 자기의 소망이 어그러질 때에는 실망과낙심의 길을 밟게 되는 것이올시다. 그러나 주의 택함을 받은 자에게는 주께서 버리시지 않으시고 가까이 오셔 미혹된 마음을 깨워주시며 철저한 신앙을회복시켜 주십니다. 베드로를 보시오. 주를 세번씩이나 모른다고 주를 저주까지 하였을 때에, 주님은 베드로를 돌아보심으로 베드로의 마음을 경성케하여타락하였던 베드로는 통회하고 다시 부흥을 일으겼던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일로 필자와 여러분의 신앙상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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