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인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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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주의를 주창한 철학자 헉슬리나 인권만능주의를 가진 나폴레옹은 인생의 절대능력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거성인 바울은 그와 정반대로 인생은 무능하고 부자유하고 병든 것으로 보았습니다. 로마서 7장에 바울이 인생을다섯 가지로 가련히 보았습니다.
1. 죄악의 인생(18절)
인생은 누구를 물론하고 죄인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으로부터 유전하여 오는 원죄가 그 마음에 박혀 있으며, 또한 인생처세에 자신으로 범행한 개인의 죄가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성질을 보면 날 때부터 패악을 부리며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내가 날 때부터 죄가 있으며 모태로부터 죄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양심은 죄가 있는 증거입니다. 선천들의 교훈을 보면 상시라도 욕심이 없는 것은 불능하다 하였으며 공자 하시는 말씀이 『백인이라도 가히 밟으며 작록도 가히 사양할지라도 중용은 불가능』이라고 하였으며, 회회교조 모하멧도 임종 시에 나는 죄인이라고 자증하고 죽었습니다 인생은 너 나를 물론하고 사망을 면치 못하나니 이것은모든 사람이 죄가 있는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아 슬프다, 인생은 참으로 죄악의 인생입니다.
2. 전쟁의 인생(23절)
인생은 실로 전쟁의 일생입니다. 이 전쟁은 심리적 전쟁이니 곧 자기가 자기로더불어 싸우는 전쟁입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원수가 멀리 있는 줄로 알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상은 나의 원수가 나입니다. 나를 패망케 할 자도 나요, 나를 흥케 할 자도 나입니다. 대개 하나님은 자조자를 도우시는 까닭입니다. 용장 삼손의 말로가 그렇게 가련하게 된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오 삼손 자신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성인들은 죽기에 힘썼으니 성 바울도 그러한 것입니다. 이 전쟁은 실로 대전쟁입니다. 여러분이 아시거니와 과거 유럽 전쟁은 유사 이래로 처음 있는 전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1억 5천명이나 되는 인명 살해로 보든지, 2천 2백 6십만 마르크라는 재산소모로 보든지(1마르크가 일화 50전), 실로 무서운 전쟁입니다. 그러나 이 심리 전쟁에 비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과거 유럽 전쟁에는 혹 국가를 잃고 생명을 빼앗기고 재산을 빼앗겼지마는, 이 전쟁에 패배를 당하는 자는 영원한 세계와 영적 생명을 빼앗길 것입니다.
모든 동물 가운데 인생이 최 귀하다는 것은 언어에 능함도 아니오, 지혜, 과학이 있는 것도 아니오, 규율적 단체적 생활을 함도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영적 생명이 인생에게 있는 까닭입니다. 그런고로 이 생명에 해를 받고 이 생명을 일어버리는 전쟁이 가장 무서운 전쟁입니다. 인생은 이 무서운 전쟁을 면치 못합니다.
3. 노예의 인생(14절)
노예란 것은 남에게 잡힌 사람이요, 자유를 잃은 사람입니다. 인생은 과연 범죄하므로 식욕, 색욕, 금전의 욕심에 포로가 되어, 자기를 빼앗기고 항상 공포 가운데서 헤매이는 것입니다. 주색으로 패가 망신할 줄 알면서도 왜 술을 마시며 왜 색가에 가며, 아편의 중독으로 내 몸이 멸망할 줄 알면서 왜 아편을 빨며 왜 모르핀침을 맞는가. 이는 죄의 종이 되어 자유를 빼앗긴 까닭입니다. 인생은 항상 공포 중에서 일생을 보냅니다. 귀신이 화를 주지 않을는지 하여 택일을 하여 이사하며, 무녀를 불러 푸닥거리를 하며, 복술가를 불러 액땜을 하며, 궁합을 보는 모든 일이 범죄로 인하여 공포를 느끼는 주에 되는 일이라. 혹은 돈이라면 도덕도 모르고, 친분과 의리도 모르고, 국가의 법률도 관계치 않고, 무소불위로 범죄함은 금전의 종이 된 까닭입니다.
4. 고통의 인생(24절)
에덴 낙원이 변하여 고해가 된 후로는, 인생은 고통에서 나고 고통에서 살다가 고통으로써 끝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인생은 안락과 평강을 요구하지만은, 왕왕히 원치 않는 비애와 번민과 고통을 받게 되니, 참으로 괴로운 인생입니다. 성바울도 죄악의 고통으로 아우성을 외치게 되었으며, 오늘 집집마다, 사람마다, 아이고 소리뿐입니다. 이 쓰고 쓰라린 고통은 눈으로 볼 수 없으며, 귀로 들을 수가 없습니다. 화끈화끈 타오르는 죄악의 염증이 과연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며, 우리의 입에서는 「화가 동한다 속이탄다」고 부르짖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은 신경의 마비가 되어, 죄악의 고통을 느낄 수 없으리만치 되었습니다. 아이고하는 사람들은 의를 따라 양심대로 살려는 의인입니다. 이로써 볼 것 같으면 죄악은 참으로 인생에게 고통을 줍니다. 인류에게 질병과 저주를 주며, 인생의 자유를 빼앗으며, 개인을 패망케 하며, 사회를 혼란케 하며, 국가를 망하게 하며, 도덕을 파괴케 하며, 자손에게 참화를 주는 것입니다. 죄악 그것만 나에게 상관이 없을 것이면, 수 천대의 무한한 낙이 나의 소유가 될 것이며, 복스러운 환희의 소리를 자연히 부를 것입니다.
5. 죽음의 인생(9절)
사람이 삶을 원하고, 죽음을 싫어함은 사람의 타고난 본능입니다. 진시황이 만승 천자의 지위로되, 오히려 불만하여 삼신산의 불사약을 구하였으며, 한 무제는 치적의 대공과 영토의 확장으로도 불만하여 건장궁에서 선로를 구하였으며, 석가는 비록 황채자의 자리에 있을 지라도, 오히려 불만하여 죽는 것이 그에게 일대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생에 구애되는 것은 죽음입니다. 영국 사람 변곤의 사망론에 어린아이가 흑암한 곳을 지나갈 때에 떠는 것같이, 사람이 죽음을 당할 때에 떤다고 하였습니다. 로마황제 테베리오가 임종 시 유언하길『내얼굴에 탈박을 쒸어 다른 사람이 내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으며, 영국의 촛불이 되는 나디머그리머도 죽음을 두려워하여, 처음에는 배교하였다가 나중에 후회하여 순교하였습니다. 인생은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승군왕도 피치못할 것이니, 비록 성벽을 높이 쌓고 수위를 엄히 하여, 나는 새도 능히 들어가지 못하고 강한 원수도 습격치 못할 궁궐에도, 엄연히 달려들어 신성불가침이라는 지극히 높은 신체를 냉각케 하며, 고명한 의술도 불가활인데, 위생을 힘쓰며, 의학을 연구하여 약한 자를 건지며, 병환을 살리는 의사에게도 돌연히 달려들어, 조금도 비관이 없던 가정으로눈물을 쏟게 합니다. 무부걸아도 가히 대적치 못함이니, 전시를 당하여 천병만마라도 막을 무력과 이길 책략이 있거니와, 이 사망은 어느 때를 불문하고 항상 따라오는고로, 방어할 능력이 없습니다. 아! 참으로 두려운 이 사망이여, 인류치고 누가 이를 면하리요.
오호라 이 노예의 처지에서, 이 곹총의 자리에서, 전장의 도탄에서,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이가 누구인가. 공자인가, 석가인가, 소크라테스인가. 인간은 누구를 물론하고 여기서 건지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인생을 구원하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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