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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의 명설교

    한 밤의 방랑자

    페이지 정보

    성경본문: 요 3:1-9 | 설교자: 유진 로우리

    본문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요3:1-9)\




    거리는 어두웠고 황량했습니다.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니고데모 역시 아무도 보이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거리에는 단 한 사람, 시내로 통하는 큰 길로 다니지 않고, 오솔길로만 다니는 한 사람, 어떤 사람도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면서 어둠에서 어둠으로 옮겨 다니는 고독한 한 사람만이 있었습니다.

    한 밤에 어둠에서 어둠으로 헤매면서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한 마을에서 친구와 함께 머무르고 있는 예수님께 무언가를 물으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제가 추측하자면 아마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인 그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순회 설교자를 보러가던 길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은 잠에서 깨어나서 니고데모를 만났을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밤에 찾아온 방랑자였습니다. \랍비여! 당신은 분명히 하나님께로서 왔습니다.\ 니고데모가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고는 당신이 행하는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이 말에 예수님이 대답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바로 이 부분에서 깊은 진리가 감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당신은 니고데모의 첫 인사말과 예수님의 그 대답이 동문서답같다고 느끼신 적이 없으십니까? 본문을 한 번 더 살펴봅시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왔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고는 당신이 행하는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어두운 밤에 진리를 구하는 방랑자, 그의 대답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예수님의 엉뚱해 보이는 대답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니고데모의 찬사에 예수님이 적어도 부드럽게 \그래, 고맙다\라고 반응할 것이라고 당신은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한 목사가 주일 아침에 교인으로부터 \목사님, 당신은 오늘 성령충만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고서는 당신이 설교했던 것처럼 설교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라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목사는 \그렇습니까? 대단히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하거나 적어도 \설교를 얼마나 쉽게 이해했느냐?\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 설교자는 \글쎄요, 대스모이네스에서 캔사스 시까지는 거의 이백 마일 거리입니다.\라고 대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진리를 얻기 위한 과정임에 분명하지만 도대체 니고데모의 말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사실상 첫 인사말과 그 대답은 이 말들이 처음에 보여진 것처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이었다면 우리가 이해했을지도 모릅니다.

    수 세기동안 규례들이 있어 왔고 그것에 의해서 예언자들은 판단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언자는 환상적인 계시를 체험해야만 했고 예언적인 선포를 해야 했습니다. 니고데모의 말은 예수님에 대해서 점수를 매긴 것이었고, 그는 예수님이야말로 A 점수를 받는 진정한 하나님의 예언자인 것을 결론적으로 확증지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간단합니다. \아니다. 너는 거기에서 여기로 이를 수가 없다!\

    니고데모는 그 이해의 범위를 넓히지 못했고 믿음의 결론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범주 안에서만 그 증거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개인적인 체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과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대해서 논쟁한 기억이 있습니까? 한 번 대답하면 또 다른 논쟁이 이어집니다. 이런 과정이 두세번씩 반복됩니다.

    어떤 주일학교 교사가 부활절 아침에 대해서 창의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반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후 그가 제일 처음으로 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이 질문에 반 아이 중 한 명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가서 말했을거라고 확신해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가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났습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왔습니다. 왜냐하면…\

    \아니다. 네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그 나라를 볼 수 조차 없다.\

    글쎄요, 불행하게도 니고데모는 시적인 감각이 없었나 봅니다. 그는 이 비유의 뜻을 알 수 없었고 문자주의적으로만 받아들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늙었습니다. 어떻게 늙은 사람이 어머니의 모태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이 부분을 프레드릭 부체너는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제 나이에는 차에 오르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모태에 들어 가라니요!\)

    예수님이 그 말 뜻을 설명하실 때 니고데모는 곤경에 빠졌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분다고 하자. 네가 그 바람이 어디에서 오며 또 어디로 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너는 바람의 소리는 들을 수 있다.\ 바람이 당신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에 니모데모가 대답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가련한 니모데모…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궁색한 대답은 아닙니다.

    \너는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저 자신은 이 구절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구절 모두를 어릴 때부터 아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족은 자주 할아버지 가족을 보기 위해서 서쪽 캔사스를 가로 지르는 여행을 했습니다. 저는 차 뒤쪽에서 차 밖을 응시하곤 했는데 사이드 창으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뿌옇게 흐렸습니다. 갑자기 힘내라는 메시지의 미얀마식 표지판이 이 흐릿함을 깨뜨렸습니다.

    그 때 우리는 아마추어의 작품인 듯한 넓다란 광고판들 중 하나를 보았고, 그 광고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이 말이 저에게는 억지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왜 그들은 자신의 일에나 신경을 쓰지 남의 일에 간섭을 하는 거지? \너희는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고?\

    저는 그 문제 때문에 이 구절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나타내는지 몇 년 후 제가 프레드에게 다시 달려갈 때까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프레드라는 이름은 그의 본명이 아니지만 그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프레드는 저의 가까운 친구 중의 한 명이지만 먼 곳에 떨어져 있습니다. 저는 그를 자주 볼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말을 할 때 상대방의 말이 끝나면 그 다음 말이 무엇인지 항상 알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입니다. 프레드 역시 목사입니다. 그는 내가 다녔던 신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아주 젊습니다. 나의 동생과 비교하면 너무 어리고 나의 아들에 비하면 너무 늙었습니다.

    지금, 프레드는 승자입니다. 그는 어떤 것이든지 누구에게나 팔 수 있었던 그런 종류의 사람입니다. 그는 젊은 회사 이사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지금 BMW를 타고, 차의 범퍼 스티커에는 \그것을 위해 전진하라\는 말을 새겼을 지도 모릅니다. 그는 항상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었고 항상 승리를 합니다.

    신학교를 마친 후 프레드는 감리교도들이 많은 주로 옮겨 갔습니다. 그는 바로 소도시로 옮겨갔고 단 몇 년만에 그 교회의 성도를 두배로 늘렸고 예산도 세 배로 늘렸습니다. 그의 가정을 제외하고난 부분에서 그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작은 걸음을 멀리 옮길 때까지 그의 첫 번째 부인이 어떻게 기다리곤 했는지를 기억합니다. 그녀는 저를 향해 비스듬히 서서 저에게 말합니다. \저는 당신이 프레드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압니다. 당신은 당신이 그가 좀 여유를 가지도록 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매 주에 반나절이라도 쉬게 해 줄 수는 없습니까? 그는 일밖에 모릅니다.\

    저는 물론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고 심지어 내가 그의 장례식을 치루어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지만 결국은 허사였습니다. 그의 집에서의 상황은 모든 것이 좋지 않게 흘러 갔고 결국 그의 아내는 이혼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의 이혼은 바로 세인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감독은 프레드를 돌보아줄 것을 결심했습니다. 감독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를 그가 전에 이루었던 그런 종류의 성공의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너무나 작은 회중이 있는 곳에 그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례비의 엄청난 감봉도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가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프레드는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습니다. 프레드와 그의 새로운 아내와 나. 우리 셋, 이렇게 셋이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예산은 이미 거의 두 배나 늘어났고 교인들은 두 배 이상 늘어난 상태였습니다. 큰 건물을 짓자는 캠패인을 벌일 계획 중에 있었습니다.

    그 때 프레드는 그가 얼마나 불행한지 저에게 말했습니다. 교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지도에 잘 따라 주었습니다.

    \나는 굉장히 불안하다네.\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있는 동안 프레드는 그가 잠시 보지 못한 사이에 다른 사람의 옷을 더럽혔고 그 자신이 사과를 구하기 위해서 나와 그의 새로운 아내를 남겨 두고 잠시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녀는 탁자에 비스듬히 기대어서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프레드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압니다.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가 책을 읽도록 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어쩌면 그것은 그의 첫째번 부인이 요구했던 것과 거의 꼭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더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그가 내적으로 무엇인가가 부족하다고 느꼈고 독서가 그것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식 면에서 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프레드는 아주 영리합니다. 그의 헌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헌신된 사람입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부족\이었습니다.

    제가 놓쳐 버린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깨달은 것은 점심을 먹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존재의 허무입니다. 음…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죄이기도 합니다. 죄-그가 행위로 하지 못한 어떤 종류의 죄가 아닌- 그의 진정한 존재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죄입니다.

    제가 그 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운전하던 중에 떠오른 인물이 바로 니고데모였습니다. 우연히도 프레드는 니모데모가 가졌던 문제와 정확하게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프레드의 문제를 니고데모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까? 당신은 예수님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 때 니고데모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그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늙은 사람이 어머니의 모태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제가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그것이 니고데모의 대답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나?\ 그것이 프레드의 대답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너는 거듭 나야만 한다고 예수님이 말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간단히 말해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가 아무리 헌신적이라 해도,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해도,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출생입니다. 출생은 언제나 다른 이에 의해서 주어지는 하나의 선물입니다.

    가련한 니고데모, 어둠에서 어둠을 헤매고 다니면서 그가 해야만 했던 것은 그 마지막 말씀을 정확하게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가련한 프레드, 그는 성공을 향해서 질주하면서 성공을 구했고 이 승리가 가정에 평강을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가련한 존 웨슬레,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구해왔던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그의 늙고 지친 말을 타고서 캠패인을 벌렸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렇게 필사적으로 추구해진 것들은 그들의 필사적인 노력과 공로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너는 거듭나야만 한다.\ 예수님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복음의 선물을 알려 주었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고 있다.
    너는 바람을 다스리지 못한다.
    너는 그것을 조작할 수도 없다.
    너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바람이 부는지 알 수 조차 없다.\

    바람이 임의로 붑니다. 당신은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빰을 스치는 바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물론 당신이 너무 빨리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턱을 세운 채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당신은 어떤 것도 들을 수 없고,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조차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해 볼까요?

    니고데모여, 그것을 포기하십시오. 그렇게 열심히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을 포기하십시오.
    프레드여! 그것을 포기하십시오. 성공이 당신이 구하는 것을 결코 채워줄 수 없습니다.
    샤론, 포기하십시오.
    알렌, 포기하십시오.
    마티나, 포기하십시오.
    제네, 포기하십시오.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 처럼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의 따스한 바람이 산들산들 붑니다. 바로 그것이 한 밤에 방황하는 모든 방랑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