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라린 아픔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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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린 아픔의 기도 [존 크레독]
성경본문 갈라디아서 1장 11절 ~ 24절
절기 설교일 2003-05-17
키워드 기도 설교대상 조회수 98
전문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쌔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갈1:11-24)\
제가 어떤 단어를 말하면 그 단어를 말하는 순간 여러분은 한 인물을 떠올리시고 그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생각하십시오. 제가 그 단어를 말하면 어떤 사람이 여러분의 마음에 떠오를 것입니다. 준비되셨습니까? 그 단어는 바로 \쓰라림\입니다. 여러분은 한 인물을 떠올리셨습니까? 저도 한 인물을 떠올렸습니다. 서부 오크라호마에 사는 한 농부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카드로 구입한 가솔린으로 굴러가고 있는 저당잡힌 트랙터를 타고서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그가 임대한 땅을 가로질러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쓰라림\입니다.
여러분은 또 어떤 인물을 떠올리십니까? 저는 마흔 일곱된 한 부인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녀는 씁쓸하고도 혼란스러운 얼굴 표정으로 장의사가 산 중턱에 설치한 녹색 천막 아래 앉아 있습니다. 그녀는 카드와 사방이 꽃으로 장식된 것으로 둘러싸여져 있습니다. 카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의를 표합니다.\ 이것이 \쓰라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물을 떠올리고 계십니까? 저는 작은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십 년 동안 지금의 이웃 사람들 속에서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곳에서 20년째 가게를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채소가게는 큰 이윤을 남기지 못하지만 가족 전체의 생계수단입니다. 그에게는 일종의 사업입니다. 지금 가게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는 앞치마를 허리에 두른 채 가게 현관문에 서서 길 건너편에서 슈퍼마켓 공사를 마무리짓고 있는 인부들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쓰라림\입니다.
저는 젊은 부부를 봅니다. 그들은 약 19세 쯤 되어 보입니다. 그들은 손가락이 하얗게 될 정도로 그들의 손을 꽉 진 채 공항 터미널에 서 있습니다. 부인은 임신 중입니다. 남편은 녹색의 군인제복을 입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서 서로를 응시할 뿐입니다. 안내방송이 울립니다. \샌프란시스코 행, 392번 비행기가 22번 출구, 노란색 홀에 이륙 준비 중입니다.\ 남편은 천천히 개찰구를 향해서 걸어갑니다. 아내는 그곳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이것이 \쓰라림\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사람을 생각합니까? 저는 목회자 부부가 목사관이라고 부르는 크래커 박스로 지은 집에 살고 있는 조그마한 도시의 한 젊은 목회자를 생각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어린아이와 그의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토요일 아침입니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그가 대답을 합니다. 현관에 선 젊은 목사 앞에는 그의 교회 위원회 회장이 서 있습니다. 교회 위원회 회장은 지방 은행장이었고 그 지역 주위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입니다. 그 사람의 손에는 작은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래되고 작은 흑백 텔레비전입니다. 그것은 긁힌 자국이 많고 텔레비전 조작기들 중 하나는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사람이 말합니다.
\제 아내와 제가 25인치 칼라 텔레비전을 새로 샀습니다. 그러나 텔레비전 가게 주인은 이 헌 텔레비전을 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혼잣말을 했죠. \그래, 우리가 이것을 목사님께 드리는 거야. 어쩌면 목사님 부부가 예정했던 것과는 달리 더 이상 머무르지 않게 될 이유가 될지도 몰라. 저희들은 이만큼 더 좋은 것을 그들을 위해서 할 수가 없어.\\
젊은 목사를 봅시다. 그는 웃으면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려고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십시오. 그의 얼굴은 쓰라림 그 자체입니다.
또 다른 인물을 볼까요? 그의 이름은 다소의 사울, 사울입니다. 우리는 그를 바울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젊고 유능한 사람입니다. 그의 조상들의 전통들을 따르는 그 자신의 나라와 종교에 대해서 열심입니다. 동족에 대한 열심히 특출나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가 그 자신이 핍박할 자를 쫓아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예수의 추종자들, 기독교인이라 불리는 새로운 유대인들의 무리를 발견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처음에는 아무런 위험에 처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엣샌파, 열심당원과 같은 계열의 종교에 대해서 오랫동안 너그러웠고 오랫동안 관용을 베풀어 왔습니다. 그런데 왜 유대 기독교에는 관용을 베풀지 않는 것입니까? 유대 기독교인들이 성전과 회당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새로운 기독교인들 내에서도 다른 견해들이 제시되었습니다. 젊은 급진주의자들 부류는 기독교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스데반과 빌립과 다른 이들의 설교였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당신의 배경이 유대인인가? 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깜짝 놀랄만한 말이 젊은 사울의 귓가를 때립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야. 어떤 젊은 설교자도 학대와 바벨론 유수와 무거운 짐들을 짊어진 수천 년동안 하나님께 진실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어둠과 이교도들 사이에서 믿음의 촛불을 밝히기 위해서 몸부림 친 것들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 설교자가 의미하는 것들, 옷에다 음식물을 토해내는 것과 당신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들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아니야! 그것은 중요한 문제야!\
여러분이 부모님의 하나 뿐인 자식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런데 당신이 열일곱 살 되었을 때 부모님들은 당신을 위해서 열일곱 살 된 아이를 양자로 들였습니다. 둘 다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어느날 아버지가 아침 식사 시간에 말합니다.
\나는 변호사에게 서류를 작성하도록 했다. 나는 두명의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가족을 떠나려고 한다.\ 여러분이 이 아버지의 아들이라면 무엇을 느끼겠습니까?
\얘는 막 우리 집에 왔어요. 얘는 진짜 아들이라고 할 수 없어요. 제가 정원의 잔디를 깎고, 방을 청소하고 9학년을 통과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금요일 밤에 가족들 차에 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을 때, 그 때에 도대체 얘는 어디에 있었던 거죠? 그리고 저는 지금 열여덟 살이예요. 저는 갑자기 어디에서 왔는 지도 모르는 이 형제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얘가 나랑 꼭 같이 재산을 나눠 가진다구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느끼시겠습니까?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 아버지가 편견이 없는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젊은 사울이 어떻게 느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세대에 세대를 이어서 수천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해 온 민족에게 지금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하며 유대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이 낯선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사울이 어떻게 느꼈을지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당신의 가족과 민족의 모든 전통들이, 당신이 알아왔고 당신이 믿어왔던 그 모든 것들이, 그 테두리들이 지금 완전히 무너지려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했던 모든 순간, 소중히 지켜왔던 모든 믿음, 당신의 삶이 지향했던 모든 일들, 이 모든 것이 지금 그 의미가 없어지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그리고 지금 내가 믿고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고? 물론 그는 그것을 멈추기로 결정합니다. 그의 마음을 뒤덮고 있는 쓰라림의 어두운 구름이 폭풍으로 변해서 그 작은 교회를 덮치고, 그 집을 무너뜨리고 끝장을 내고 말 것입니다. 그의 조상들의 이름으로, 그의 민족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물론 그것은 정당합니다. 지금 왜 그는 이것을 합니까? 왜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세상의 모든 인류를 안으려는 이 선포를 그토록 쓰라려 하는 것입니까? 당신은 내가 믿는 것을 아십니까? 그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 그 자신과 전쟁 중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쓰라린 마음과 혼동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친구들이나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상자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는 그 자신이 불확실합니다. 그는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지금 박해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상처받은 짐승과 같이 다메섹에 가까운 모래사장 위에 누워서 그가 섬기는 하나님의 강력한 하나님의 바람을 기다리는 바로 그 확신에 차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가 섬기는 하나님이 그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의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분임을 압니다. 그는 알고 있습니다. 확실하게 그는 알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의 성경을 읽습니다. 다윗의 조상이 모압 여인이라고 부끄러움 없이 묘사된 놀라운 성경인 룻기를 읽습니다. 분명하게 하나님은 다른 민족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는 요나 자신이 사랑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된 다른 민족에 대한 사랑이야기인 요나서를 봅니다. 바울은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집의 놀라운 비전이 모든 민족에 흘러 내려가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성경 내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사울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의 문제는 당신과 제가 가끔씩 가졌던 것과 같은 문제입니다. 막연하게 무언가를 아는 것과 그것을 확실히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는 그것을 확실하게 알고 그는 그것을 확실하게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안다는 것과 정말로 아는 것 사이에서 발견되는 전쟁은 그 싸움이 치열합니다. 그것은 때때로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전쟁이라고 불려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겪는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입니다. 아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의 여행, 그 여행이 완전해질 때까지 우리는 큰 고통을 겪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당신은 이 경우같이 고통에 처한 누군가를 알고 있습니까? 그들이 싸우고 있는 그 쓰라린 고통은 그들이 바로 알고서 당하는 것입니까? 진리의 그 불가피한 승리를 멈추게 하려는 승산 없는 전쟁에 빠져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기독교적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는 단체나 한 개인에 대해서 비판과 증오와 폭력으로 이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당신이 알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입니까? 당신이 똑같은 분노로 분노를 대응하지 않으리라고 저는 낙관합니다. 우리가 선입관에는 선입관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 것처럼 그러한 반응들이 가치 없고 열매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몇 년 전에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또 다른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우리가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대해서 적대적으로 편견에 사로잡혀 그들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떨까요?
한 가지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한 가족이 월요일 오후 교외로 드라이브를 하고 있습니다. 기분 좋은 오후이고 그들은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즐겁게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두 명의 아이들이 아빠의 등을 치기 시작합니다.
\아빠, 아빠, 차를 멈춰요! 차를 멈추세요! 길 저쪽 편에 고양이가 걸어오고 있어요.\
\그래, 저쪽에서 고양이가 걸어오고 있구나! 하지만 우리는 지금 드라이브 중이야!\라고 아버지가 말합니다.
\하지만 아빠, 차를 세우고 고양이를 태워야 해요!\
\나는 차를 세우고 고양이를 태울 수 없어!\
\아빠! 아빠가 고양이를 태우지 않는다면 쟤는 죽고 말거예요.\
\글쎄, 그러면 고양이는 죽을 운명인거지 뭐. 우리 집에는 고양이를 키울 공간이 없어요. 우리 집은 이미 동물원이야. 더 이상의 동물은 안돼!\
\하지만 아빠, 우리가 고양이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조용히 좀 해라! 얘들아! 우리는 지금 즐거운 드라이브 중이야.\
\우리는 우리 아빠가 고양이가 죽게 내버려 둘만큼 그렇게 냉정하고 잔인한 아빠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마침내 아이들의 엄마가 남편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 말합니다.
\여보, 우리가 멈춰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차의 방향을 돌려서 고양이가 있는 지점으로 내려와서 길가에 내립니다.
\너희들은 차 안에 있어라! 내가 고양이를 살펴볼 거야.\ 그는 고양이를 집어들기 위해 갑니다. 그 불쌍한 동물은 뼈만 앙상하고 슬픈 눈동자를 하고 온 몸에는 벼룩이 가득합니다. 그가 고양이를 집어들기 위해서 내려갈 때, 고양이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거칠게 반항을 하면서 이빨을 갈고 손톱으로 할퀴려 합니다. 쉿! 그는 고양이 목 부분을 잡고서 차에 태우고서 말합니다. \만지지 마라! 고양이는 어쩌면 전염병에 걸렸을 수도 있어.\ 그들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고양이를 목욕시키고 고양이에게 우유를 줍니다. 우유를 주면서 아이들은 말합니다. \오늘 고양이를 집 안에서 재울 수 있을까요? 내일 창고에 있는 좋은 장소에 고양이 집을 정할께요.\
아버지가 대답합니다. \그래, 침실을 쓰도록 해라. 집이 온통 동물원이잖니?\
그들은 왕에게 어울리는 넓고 편안한 침대를 고양이에게 내어 줍니다. 몇 주가 지납니다. 그 아버지가 집 안으로 걸어 들어오던 어느 날, 다리에 어떤 뼈의 촉감이 느껴집니다. 아래를 살펴봅니다. 거기에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그는 고양이를 향해서 몸을 숙이고 아무도 보고 있지 않던 곳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고양이가 그의 손을 볼 때, 고양이의 손톱으로 상처를 내지도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고양이는 그의 등을 부벼대고 혀로 손을 핥습니다. 전에 그 고양이가 맞습니까? 바로 그 고양이가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길가에서 두려워 떨면서 상처받고 쉬 소리를 냈던 그 고양이가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뿐만 아니라 저도 무엇이 고양이를 그렇게 변하게 했는지 압니다.
오래지 않아 하나님께서 저와 저의 가족을 복 주시기 위해 그의 손을 펼치실 것입니다. 그 분이 손을 펼치실 때 저는 그 분의 손을 봅니다. 그것은 할퀸 자국 투성이입니다. 그같은 사랑의 손은 쓰라림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사랑의 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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